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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順天樂安” 골의 우물의 정서 / 김용수
2021-06-14 오전 5:13:45 참살이 mail yongsu530@hanmail.net


    김용수  편집국장




    즐겁고 편안한 고을, 전남 “順天樂安”은 우물의 정서가 깃들어 있는 듯하다. 인간의 생명수 이면서 근원이 되고 있는 샘물의 역사는 깊다. 어쩌면 우리는 샘물과 우물의 고귀함도 모르고 그 정서까지 잊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전남 순천낙안 골의 우물의 정서는 부모형제의 정을 비롯한 고향의 정을 심어주는 정서를 지니고 있다.

    사람과 물의 함수관계는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물의 귀중함을 잊고 살아간다. 가까운 예로 갈증해소는 물론 씻기와 요리 같은 기본적인 생활은 필수다. 또 농업과 목축 등의 생산 활동에 있어서도 물은 필수다. 따라서 우물의 역사는 많은 신화를 간직하기도 했다.

    우물은 대다수가 마을과 도시의 중심지에 있다. 아마도 공동생활의 근거지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담소하는 소통의 장소가 아니었을까 싶다. 더욱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마음 샘까지도 길어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지난 주였다. 유형익 낙안면장을 만났다. 그는 낙안고을의 협동정신과 선비정신은 우물정서에서부터 기인됐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근무하고 있는 낙안면의 복지시설의 이모저모를 밝히면서 3가지의 하고픈 일을 피력했다. 첫째는 ‘마을 회’를 만들어서 활성화를 해야 하고 둘째는 각 마을의 우물 가꾸기며, 셋째는 마을민박시설과 연결되는 관광안내도라고 했다.

    사실, 그는 주민들의 갈등과 반목된 마음을 뭉치게 하고, 협동심을 길러 옛 명성과 도약된  낙안비상을 바라고 있었다. 특히 우물정서에서 비롯된 소통문화를 이어받아 나눔과 배려 등 선비정신의 고고함을 알려주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예부터 우리조상들은 집을 지을 때 식수확보가 용이한가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그 후 우물을 파고, 그 주변에 집을 지었다. 우물은 각 가정마다 갖추는 경우도 있고, 여러 가구가 공동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시대 태종은 도성에 가뭄이 들어 물이 부족해진 백성들이 매우 고생을 하자, 도성 안 5가구마다 우물 하나씩을 공동으로 파도록 명령했다. 이 때 도성 안에 많은 우물이 생겨나 사람들의 생활이 편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곳곳에 지하수가 있어 우물을 만들기는 쉬웠다. 경복궁 안에는 본래 24개의 우물이 있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우물이 마르거나 없어서 식수 확보가 어려운 경우에는 마을을 옮기기도 했다. 1421년 경상도 관찰사가 기장현(機張縣)에 우물물이 없으니, 현청 관아를 박곡리로 옮기고자 한다고 임금에게 청하였다. 관아가 있는 마을이나 성(城)에 샘이나 우물이 없으면, 관아와 주민을 옮기겠다는 상소는 [조선왕조실록]에 자주 등장한다. 이처럼 마을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식수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시정(市井)’이란 말이 있다. 우물을 뜻하는 ‘정(井)’과 시장을 뜻하는 ‘시(市)’가 결합된 단어다. 즉, “인가(人家)가 모인 거리,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란 의미를 갖는다. 공동우물을 이용하기 위해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서 우물이 마을의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이곳은 사람이 모인 만큼, 물물교환과 교역이 시작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우물물은 모든 것을 씻겨주는 정화 작용도 한다. 외지에서 가져온 교역 품이 마을에 들어올 때 정화의식, 또는 세정(洗淨)의 과정을 거쳤던 전통 때문에 시정이란 말이 생겼다는 견해도 있다.

    게다가 우물가는 아낙네들이 물을 긷 거나 빨래를 하고, 지나가는 나그네가 아낙네에게 물 한 바가지를 청해 마시고 가는 곳이기도 했다. 우물이 있는 곳은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이자, 마을의 중심지로 소통장소였다.
     
    그렇다. 우물은 생명, 정화(淨化), 부활(復活), 농경(農耕), 왕권(王權) 등의 상징성을 가진 곳이다. 무엇보다도 마을의 중심공간이다. 언제나 깨끗하게 가꾸어야 한다. 성스러운 곳으로 오염시켜서도 안 된다.

    예부터 우물은 사람들이 만나서 물자를 교환하고, 정보를 주고받는 마을 생활의 중심공간이었다. 공동우물의 물을 함께 마시는 사람들끼리는 두레패를 결성해 공동노동을 하며 지내기도 했다.

    아무튼 전남 “순천낙안의 우물정서”는 한마디로 소통문화다. 옛 사람들의 삶의 근간이 되는 흙 한줌과 나무 한 그루 그리고 돌멩이 하나, 샘 하나 조차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대자연을 존중하고 조상의 얼을 기려야 한다. 어쩌면 기복신앙은 개인의 부귀영화보다 공동체의 번영과 가족의 무병장수와 성공을 비는 염원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저작권자©참살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21-06-14 05:1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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