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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표지판의 역사/ 김용수
2021-06-07 오전 6:10:38 참살이 mail yongsu530@hanmail.net


    김용수  편집국장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교육현장으로 활용하기 위한 “여순사건” 표지판이 세워졌다. 73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반목의 역사를 바로 알리려는 노력들이 돋보이고 있다. 국민들은 물론 대다수의 지역민들은 “여순사건”의 진실을 모르고 있다. 좌익과 우익,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개념조차도 모르는 지역민들이다.

    실제로 그날의 사건을 모르는 지역민들은 ‘여순반란사건’을 여수, 순천사람들이 일으킨 반란사건으로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지역민들의 죽음과 피해상황이 밝혀지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정치권의 사람들은 ‘여순사건’의 본질에 관해서는 무관심했을 뿐 아니라 진상파악조차 꺼려했었다. 그들은 자신의 정치활동에 지장을 초래할 문제점들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안했었다. 피해와 결과에 대한 사실적 이해는커녕 왜곡된 내용으로 반목의 역사가 흘러도 이를 바로 알리려는 노력은 없었다.
    지난 3일이었다. 전남 순천지역에 산재한 '여순사건' 관련지에 표지판을 세워 역사현장을 기억하기 위한 표지판 제막식을 가졌었다. 이날 제막식에는 순천시, 순천시의회, 주민자치협의회, 순천교육지원청, 여순사건 해설사 및 강사단과 유족회, 민관협의회 등 각 기관과 단체대표 등 30여명이 참석했었다.
    표지판은 2019년 9곳, 2020년 7곳, 2021년 9곳 등 총 25곳에 세워졌다. 표지판의 내용은 그 시대를 겪은 지역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실태조사와 사료를 찾아 연구된 자료에 의해 정리했고 한글판과 영어판으로 기록됐다.순천대학교, 북초등학교, 남초등학교, 성동초등학교, 매산중학교 앞 학교와 동천, 신한은행 사거리, 옛 동순천역 등 도심지역 10곳, 낙안 신전마을, 해룡 도롱마을, 서면 구랑실재, 주암면 접치재, 월등면 양지맷골, 상사 우산보 등 외곽지역 15곳이다.순천시와 여순10, 19민관협의회는 '여수, 순천10, 19사건'(여순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의 6월 국회에서 통과되기를 기원하며 이번 제막식을 개최했었다.
    허 석 순천시장은 "특별법이 조속히 제정돼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뤄지고 상생과 평화의 미래공동체를 여는 역사로 조명되기를 바라는 뜻을 담아 표지판을 세우게 됐다"며 "표지판을 통해 후세들이 비극의 역사를 깨우치고, 해원(解冤)의 역사를 지향하는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제는 해원의 역사가 시자됐는지도 모른다. 지역민들의 사고가 열려있고 ‘여순사건’ 당사자들이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순사건’을 겪었던 당사자들은 지금까지도 순수성을 잃지 않고 그날의 참상을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면서 눈물을 흘렸고 ‘손가락 총’의 무서움도 뒤늦게나마 증언했었다.
    실제로 순천시 낙안면 신전마을의 비화는 잊을 수 없는 참상이 아닐 수 없다. 선량한 양민들이 아무런 죄도 없이 손가락 총에 쓰러져 갔다. 특히 마을사람들 전체가 학살당하고 시신까지 알아볼 수 없도록 불살라졌었던 역사의 현장이었다. 아마도 ‘여순사건’ 당시, 손가락 총은 무시무시한 무기였는지도 모른다.

    지난 6일이었다. 현충일을 맞은 신전마을 당산나무는 지금도 그날의 악몽을 간직한 채, 세월의 무상함을 전해주고 있다. 마을의 수호신마냥 묵묵히 버티고 서있는 당산나무는 말이 없다. 하지만 그날의 악몽을 되새김질한 이웃주민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 현재는 폐교가 되어 사유지가 됐지만 당시의 낙안북초등학교를 다녔던 아이들은 벌써 백발이 되어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실 이 노인들은 당시의 상황을 조금 조금씩 보고 듣고 구전으로 전해주는 산증인이나 다름없다. 이들의 이야기는 한결같았다. 이들은 당시의 신전마을현장을 말이나 글로써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아수라장도 그런 아수라장이 없었고, 참혹한 광경이었다고 전한다.  게다가 당시의 현장을 뒤늦게 보고 느꼈던 어린마음에는 무서움과 공포만이 도사렸으며, 두 번 다시 생각하기조차 싫다고 했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굴러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하는 신전마을 ㅇㅇ씨는 전한다. 그는 낙안면의 대표적인 집단학살 장소는 문홍주의 손가락 총에 학살됐다고 말이다.

    아무튼 ‘여순사건’ 표지판이 세워지고 제막식을 가졌다는 의미는 크다. 지금부터서라도 ‘여순사건’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를 차분하게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진실은 규명돼야 한다.

    <저작권자©참살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21-06-07 06:10 송고
    “여순사건” 표지판의 역사/ 김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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