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수 편집국장
남바다 붉새가 뜨고 있다
옥문을 나선 백의종군 길
서럽고 슬픈 마음 비할 데 없다
정으로 권한 술
차마 사양할 수 없고
억지로 마신 술
취기어린 붉새로 떴다
난중일기서
“하늘도 캄캄했다”는 심정
“대낮의 해조차 색깔이 변했구나”의 통곡
남바다 곳곳을 찢고 찢는 울부짖음이었다
어머니 잃고 막내아들 면까지 잃은
이순신의 실성은 통곡 또 통곡이다
떠날 수 없는 남쪽바다서
목숨을 던졌던 이 충무공
그 유해를 83일간 모셨던 고금도 월송대
풀도 자라지 않고 장부의 가슴 도려낸다
푸른 달빛이 뿌리는 정유재란
묻혔던 역사 들추고 들춰
그날의 조각난 사연들이
남바다 붉새로 뜨고 있다
남바다 붉새 뜨거든
임진왜란 떠올리고
정유재란 각인하며
난중일기 되새긴다
(남바다 붉새1)
뒤로 넘긴 역사 423년
조선수군본영 고금도는
붉디붉은 붉새가 떴다
덕동 우물 벌컥벌컥 들이키며
휴우우우 숨 고르는 난민들은
수 닭 홰치는 소리
벽파소리를 듣는다
산위에 올라 붉새 바라보며
붉새, 복새, 뿔새 불살, 불근살
그 뜻 그 믿음 되뇌고 읊조린다
충무공의 “약무호남 시무국가”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그 말
남바다 붉새가 물어물어 나르고
왜놈들 간장 비튼 한산대첩은
지구촌 해전사에 한 획 그었고
울돌목 물길 꿰찬 명량대첩은
왜놈들 수장시킨 고뇌의 바다로
조, 일, 명 3국이 교전한 순천왜교성 전투는
유정, 진린의 뇌물 꾀임 수에 통분의 바다로
“한 놈도 살려 보낼 수 없다”고 외치며
왜놈들 퇴각로 차단했던 노량대첩은
충무공이 전사한 죽음의 바다다
남바다 붉새 뜨거든
임진왜란 떠올리고
정유재란 기억하며
난중일기 되새기길
(남바다 붉새2)
* 붉새 / 노을
필자의 “남바다 붉새1,2” 전문을 게재해 본다. 두 편의 시는 (사)정유재란역사연구회 유적지탐방 길에서 보고 느낀 소감을 승화시켰다. 호국의 달, 유월을 보내면서 필자가 쓴 “남바다 붉새”를 다시 한 번 새겨 볼까싶다. 시국이 어수선할수록 생각나는 애국지사의 숨결을 찾아 그 숭고한 넋을 기리고픈 마음이다. 특히 남쪽바다와 순천도호부에 인연이 많았던 이순신장군의 충성심과 효심은 잊을 수 없다. 따라서 (사)정유재란역사연구회는 알려지지 않은 정사와 야사를 들춰내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당시 순천도호부와 연관된 정유재란지방사는 임진왜란에 묻혀서 자세한 역사가 기록되지 않았었다. 정유재란당시, 순천도호부에서 이순신장군과 민초들의 활동상을 다시금 펼쳐볼까 한다.
무엇보다도 정유재란역사연구회가 발족돼 10주년을 맞이했다. 초대 이사장인 임동규 회장에서 제2대 이학균 회장으로 옮겨온 지금, 정유재란역사연구회는 많은 발전을 해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 속에서 잊혀져가고 잃어버렸던 지방사를 들춰내는 작업은 쉽지 않았었다. 하지만 임동규 전임 회장과 이학균 회장을 비롯해 회원들의 활동으로 적잖은 지방사(정유재란역사)를 만들게 됐다. 높이 평가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실지로 정유재란에 얽힌 지방사를 만든다는 것은 여러모로 힘든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겁 없이 뛰어들었던 지난시간들이 아쉬움과 함께 그립기만 하단다. 그들은 정유재란에 관한 학술연구는 물론 유적지탐사와 학술세미나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수많은 행사를 거듭했었다.
그 결과 (사)정유재란역사연구회의 약자인 “정사연”이라는 인식과 함께 순천도호부에서 치러졌었던 3국의 전쟁사를 알게 됐었다. 특히 이순신장군과 민초들의 활동상을 찾아냈었다. 지금의 순천시 해룡면에 속해 있는 검단산성과 신성포구 그리고 왜성에서 일어났었던 사건들을 하나하나 들춰냈었다. 그 속에는 이름 없는 민초들의 행적도 엿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순천도호부 출신으로 이순신 장군을 숭배하면서 그를 따랐었다.
또 정유재란 당시, 조선, 일본, 중국의 3개국이 치열하게 싸웠었던 왜교성 전투를 비롯해 명량해전과 노량해전의 활약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됐었다. 권율 장군과 유정, 고니시 그리고 진린과 이순신 장군의 지략 등 많은 것이 내포돼 있었다.
게다가 순천도호부의 5관 5포의 중요성과 활약상도 알게 됐었다. 다시 말해 이순신이 거느린 5관은 순천, 보성, 광양, 낙안, 흥양이며, 5포는 방답(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사도(고흥군 영남면 금사리), 발포(고흥군 도화면 발포리), 여도(고흥군 점암면 여호리), 녹도(고흥군 도양읍 봉암리)였다.
특히 전라좌수영의 흥양(고흥의 옛이름)은 전라좌수영 5관5포 중 1관 4포가 포진했던 군사요충지였다. 1관(흥양현)은 바다와 잇닿는 육지 행정구역이고, 4포는 전라좌수영 본영을 바다 쪽에서 지키는 사도진, 여도진, 발포진, 녹도진이다. 4포를 막지 못하면 적의 수군이 육군 병력을 싣고 들어오거나 병참을 공급하게 된 지역이다. 따라서 흥양 지역민들의 활동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4포의 중요성도 알게 됐었다.
또 충무공의 지략에는 인사등용과 함께 경영철학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이순신을 무인으로만 평가하는 건 그의 진면목 가운데 일부만을 본 것이다. 그는 문무겸전의 전략가였을 뿐 아니라, 트렌드를 읽고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과 위기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승리를 거머쥘 줄 아는 진정한 지략가였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인사 전략가였으며, 옳은 것을 위해 자신을 던져 넣는 희생과 섬김의 리더십도 갖추었다.
어쩌면 분열과 혼란의 시대에 우리가 본받고 배워야 할 진정한 지도자가 바로 이순신이 아닐까 싶다. (사)정유재란역사연구회의 진모습도 훌륭한 지도자의 그림자를 밟아 그 뜻을 헤아리고 본받는 활동상을 펼치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의 숭고함을 기려야 한다. 아니다. 그들의 후손들에게도 국가적인보상과 함께 국민들의 배려가 뛰 따라야 한다.
필자 역시 순국선열들의 넋을 기리며 후손들의 난맥상을 피력해보고 싶다. “남바다 붉새”를 쓰기까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깊이 있는 역사관을 몰랐었다. 뒤늦게나마 정유재란역사연구에 동참해 지금의 글을 쓰고 있다. 먼 훗날 왜곡된 역사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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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30 06:45 송고
2025-06-30 06:45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