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여한 삶과 시

                                                                          송 수 권(시인, 한국풍류문화연구소장)

김용수 시인의 삶은 시 그 자체로 드러나는 여여함이다. 더함도 덜함도 과포장도 없이 꾸밈없는 언어가 시세계를 이룬다. 팔공산에서 시작되는 섬진강이 다미샘의 물 뿌리에서 남해의 난바다에 이르러 여러 작은 섬을 밀어 올리듯이 그의 굴곡진 삶은 강물 같은 서사(narrative)를 이룬다.

때로는 뎅이굴 같아서 거칠고 투박한 언어가 질척일 때 있지만 그 뎅이굴을 까고 들어가면 알굴이나 모래 곰삭은 진굴젓 같아서 오래도록 미네랄의 미향이 가시지 않는다. 이는 그의 시가 편형식주의의 겉멋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편내용의 삶의 무게에 철학성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작업도 점수의 기법이 아닌 돈수의 기법이며 술이(述而)가 아닌 생이(生而)의 기법이다. 그의 삶 자체가 생득적으로 여류(如流)와 같은 삶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로 승화한 어머니 강은

지리산 씻어 내린 눈물이다

산자락 구석구석 헤집고

강바닥 높낮이를 더듬어

염창마을 지나 널따란 백사장 만들고

하동포구 굽이쳐 난바다로 흐른다

비바람몰이 개구리들이

가 기 구 게 고... 하 히 후 헤 호...

금빛 모래톱 켤 때는

여인의 강, 춤을 추다가

어머니 강, 노래를 부른다

평사리 뜨락

나물캐던 누이가

꽃물결에 맞선지도 이미 오래

강바람에 기댄지도 벌써 옛날

그래도 어머니 강은 여인의 미덕 잃지 않고

불어터진 젖무덤을 치마끈으로 칭칭 동여맨다

물장구치다 들킨 강바람도

머리맡을 쓰다듬는 강줄기도

후미진 망덕포구 강바닥에 다다르면

어머니 가슴팍에 아름아름 새겨지는

손바닥 같은 섬진강 벚굴 밭에서

한 눈 파는 세월 강에 붙들린다

멈춤도 쉼도 모르는 어머니 강은

가끔씩 무지개다리 만들고

바다로

하늘로

물길 따라 흘러간다

-「어머니 강」전문

누구나 읽어 쉽게 알 수 있듯이 노자의 6장 곡신불사(谷神不死)의 만물유생(萬物有生)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는 모성에 근원을 둔 아니마의 강이며‘하늘로 승화한 어머니 강’은 인간이란 단역의 길을 벗어난 우주의 포괄적 어머니가 된 강으로 그 치마폭으로 만물을 길러 먹이는 강이다. 노자에 의하면 이 어머니는 현빈(玄牝) 마마라 할 수 있다. 노자에서 핵심문장을 취할 수 있다면‘아름답구나, 현빈의 아랫물(자궁)이여! (是渭玄牝之門)’가 될 것이고 이 자궁에서 흐르는 물은‘천지의 뿌리(是渭天地根)’가 될 것이며 쓰고 써도 마르지 않은‘마중물’같은 생명의 근원이 될 것이다. 이는 곧 노자의 철학이 그렇듯이‘에로스의 미학’으로 이 세상 천지만물은 서로 호응하고 조화롭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두에 떠올리는 「어머니 강」은 그의 인생론적 비의가 될 것이며 그의 시세계를 단박에 꿰뚫는 키워드가 된다. 물의 순환법칙은 높은데서 낮은 데로 흘러 온갖 더러운 것을 다 받아주기도 하지만 가장 낮은 데서 높은 하늘로 올라가 한 방울의 빗물이 되어 우주를 적시기도 한다. 노자에선 이를 두고 거선지(居善地)라 한다. 즉 물은 가장 낮은 데 처하기를 좋아한다.

움막에 밤비가 내린다

있어달라는 이슬비도

가달라는 가랑비도 아닌

한가위를 앞둔 보슬비가 내린다

움막의 적막을 깨는 빗소리는

상처 난 가슴을 후벼 파면서

잔잔해진 마음 한구석을 출렁인다

살을 섞은 사람도

피를 나눈 사람도

연을 맺은 사람도

모두가 자기만의 삶 속에 묻혀 있는 밤

움막에 내리는 밤비만이

정에 허기진 사람을 붙잡고

갈증 난 풋정에서

애교 띤 애정까지

하나 둘 끄집어서 밤비에 젖게 하고

움막의 옛정을

밤비 타고 내리게 한다

밤비는 움막을 적시다가

황진이가 띄운 신발 배를 타고

정에 굶주린 옛정을 적시고서야

밑바닥에 고여 있는 미운 정을

또다시 섞는다

멀고도 가까운 사람

식어버린 속정을 지핀다

-「움막에 내리는 밤비」전문

비애의 정서를 주조음으로 깔고 있다.「움막에 내리는 밤비」를 두고 구체적인 사건은 제시하지 않고 있지만 그 비는 한가위를 앞둔 보슬비로서 매우 촉촉하게 감성을 적시고 있는 비라는 사실에는 틀림없다.‘천하대지가 다 내 집인데 따로 등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그의 아포리아처럼 호언장담은 결코 객기가 아니라 그의 본성에서 우러나온 말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의 움막은 지금도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산 속에 있다. 손수 지은 집으로서 시내에서 지친 신간은 한 몸 나가 쉴만한 공간인 셈이다.

한가위를 앞두고 백결선생의 부인 방아 찧는 소리 같은 비애스러운 감정은 그의 시 전반에 흐르는 정조(情操) 이기도 하다. 젊어선 신병(身病)을 짊어지고 산 속에 들어가 삶의 지혜를 깨치고 나온 후 여러 언론사를 들락날락하면서도 70이 되도록 집 한 칸 마련 못한 그의 삶은 운수행각 그대로일 듯하다.

두레박 삶

참 많이도 살았다

-「두레박의 삶」1연

그러면서도 그는 한 번도 한스러워 하거나 좌절하거나 하는 아픔을 토로한 적 없다. 이 세월이 얼마인가? 그러면서도 곧잘 풍류를 논한다.

한가위 달이 뜨는 낙안성에는

들뜬 마음의 여인네들이

성곽을 밟다가

그네를 타다가

달마중을 나가고 있다

한가위 보름달은

오봉산 등허리를

슬슬 기어오르고

낙안성 동네어귀 쳐다보고

은행나무 뜨락에서 숨바꼭질한다

-「한가위 달이 뜨는 낙안성」1, 2연

순천에 있는 낙안성은 안동 하회마을처럼 주요무형문화재로 손꼽히는 동네다. 200여 호 집들을 둘러친 십리의 성곽은 지금도 여전해서 연중행사로 성돌밟기 놀이가 행해지고 있다. 추석 무렵을 지나면 지붕에 이엉을 얹는 모습이나 남도음식축제 등이 벌어진다. 한때 그는 이 낙안성의 민속분위기에 젖어 시청에서 관리하는 집을 빌어 시내까지 출퇴근한 적도 있었다. 낙안읍성에 달이 뜨면 그 환한 달밤엔 어떤 모습들이 전개되는 걸까?

술래가 된 달님이는

붉디붉은 얼굴로

당산나무 뒤로 숨고

은행나무 돛대 가로 숨고

동네 샘 옆으로 숨은

철수. 영희 바둑이를 찾다가

낙안성 돌담에 부닥치다가

연못 속에 숨어있는 잉어 떼 내몰고

연잎에 졸고 있는 청개구리 찾는다

한가위 달이 뜨는 낙안성에는

하얗고도 새하얀 달빛 망을 쓴

낮도깨비들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한가위 달이 뜨는 낙안성」3, 4, 5연

당산나무 그늘로 술래가 되어 숨는 달, 수백 년 된 은행나무 고목 밑 우물터에도 빠진 달, 동네 아이들이 나와 바둑이와 함께 하는 술래놀이, 심지어는 연못 속에 숨어있는 잉어 떼도 가만히 못 있고 연잎 위의 청개구리 푸른 몸빛깔마저 비춰내는 고풍한 달밤이 곧 성(城)안의 달밤이다. 참으로 풍류스러운 멋이 출렁대는 성안의 풍경이다. 이런 풍경 하나가 아직도 우리 국토의 끝자락 어디에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가장 한국적인 풍경이다.

‘하늘에는 맑은 바람, 땅에는 흐르는 물, 그 사이에 사람이 들어가면 풍류인’이라는 국토의 청결성과 인성의 쇄락함은 이 시대 삶의 대처방안이 될 수밖에 없다. 도처의 저러한 풍경을 누비고 다니는 그의 시들은 이 시대를 구원하는 힐링(healing)의 전범이 될 수도 있으리라. 힐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시로서 마음을 움직이고 몸을 일으켜 질식된 영혼을 다시 깨워내는 회생의 치료법이다. 따라서 시인은 사제와 동격으로 언어로써 영성을 깨우는 자라 할 수 있다. 고백적인 언어, 주술적인 언어야말로 주술사의 치유언어로서 시인만이 지닌 약방문이라 할 수 있다.

鳴鳳驛에 새하얀 함박눈이 내린다

뜻 모를 물음표가 뇌리에 스치면서

느낌표를 연발했던 그 시간들이

하얀 눈발에 파묻히다가 그리움을 몰고 온다

마냥 어디론가 떠나려 했던 철부지로

텅 빈 대합실을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삐쭉하게 내민 두 갈래 철로를 바라본다

나목으로 버티고 선 벚나무 아랫도리가 시리도록

시골 부녀 정을 갈라놓으려는 플렛홈이 울고 있다

이별도 좋다

별리도 좋다

큰 꿈 따라 떠나보내는 딸 손을 쥐어 잡은

아버지 등에는 때 묻은 봉다리 보따리들이

아버지 키보다도 높게 높다랗게 쌓여져 있다

새가 우는 겨울간이역 플렛홈에는

늙은 역무원의 깃발에 철마 울움이 퍼져나고

아쉬운 이별을 서두르는 부녀속정이 끈적댄다

-「새가 우는 역」전문

아직도 존재하는 간이역, 그 명봉(鳴鳳)역에 새가 운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새 소리고 슬픈 그러면서도 따뜻한 그림이다. 오늘을 사는 불모지 현대성의 잔인함은 이 그림마저 지우려고 한다.

명봉역에 새하얀 함박눈이 내린다

이 한 구절만으로도 우리 국토의 산하를 흔들어 깨운다. 치밀한 감각묘사와 주술성이 결합된 절편이다.

그의 생애 어느 한 구비를 돌아보면 병든 몸을 이끌고 산으로 가기 전 명봉역에 근무했던 철도원이란 걸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지금은 이 시대를 후려치는 칼럼니스트요 논설위원으로서 신문사를 들쭉날쭉하지만 그 이전에 그는 어쩔 수 없는 시인이요, 방하착(放下着)을 하고 사는 달관된 스님 같은 사람이다. 벽암록 18칙인가 어디에 무영수(無影樹)라는 나무가 나온다. 그를 보면 꼭 그림자 없는 나무 생각이 난다. 누이가 여행사를 하기 때문에 어느 날 전화를 하면 그는 이국땅 어딘가를 헤매이고 있다. 그러다가 돌아와 또 기자생활에 열심이다.

얼마나 목이 탔을까?

왜 이리도 말랐을까?

멀리서 바라보이는 저 물바다

가까이 가면 사라져버린 신기루다

사막의 요술이다

인디언의 꿈이다

모하비사막에서 피어난 그 꿈

피를 뿌리고 뼈를 부수는 역사였다

탐욕이 뭔지도 모르는

인디언들의 울부짖음이 들린다

아부 아푸우

하얀 꽃송이처럼 피어나 하얀 꿈만을 꾸었던

인디언의 노래가 흐른다

인도 인도우

빼앗겨 버린 땅

그 땅위에 피어난 라스베가스

죽음을 부르는 인디언들의 넋이다

밤에 피어난 도시

불빛타고 도는 환락의 도시

큰 물방울이 작은 물방울을 따먹는 도시

신기루 도시

-「신기루 도시」전문

또한 그의 시들은 이처럼 반문명적 패러다임을 지향하는 시들이다. 1년에 한 번씩은 외국여행을 즐겨하는 풍류적 기질은 위의 시에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현대문명의 마천루 같은 도시 라스베이거스는 환락의 끝으로 묘사된다. 특히 그의 반골기질은 이 영화산업의 첨단 도시의 생명이 인디언을 사냥하고 세운 반휴머니즘의 피를 뿌린 결과론에 반성적 또는 회의의 물음을 제기한다. 한 손에 성경을 들고 한 손에 권총을 들고 개척한 서부 개척사는 마카로니 웨스트라는 영화에 우리들 혼을 마비시켰던 중독성의 감기 같은 것이기도 했다.

‘한 손에 콜라병을 들고 한 손에 마를린 먼로의 사진을 들고 포탄 속을 뛰면서도 우리는 죽어도 행복하다’는 그 정글법칙을 수행한 미국의 청년들은 과연 행복했던 것일까?

그래서 자크 아탈리 같은 미래학자는 지난 세기를 악마의 세기라고 지칭하며 오늘의 삶을 디지털 유목민의 새로운 세기의 패러다임의 삶을 제시한다. 자본주의 목마름은 환상방황(環狀彷徨)의 파가베스와 같은 허상의 도시를 생산할 뿐이다. 그것을 시인은 원형이미지인 불과 물을 대칭적으로 사용해 인간성회복이라는 큰 명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봐!

시월 보름이래.

저~ 달 조금 봐봐!

지난 그믐 밤

송 시인이 깨뜨린

접시조각 하나가

하늘 떠다니다가

어둠 먹고 자라서

보름달이 되었다나?

먹 거울 바라보고 미소 띠며

시월바다에 뜨고 있잖아

야윈 얼굴

다소곳이 내밀고

후미진 밤바다 떠돌잖아

비바람 몰아치고 먹구름 낄수록

바닷물 마시고 어둠 곱씹은

깨진 접시하나

검푸른 시월바다

보름달로 뜨고 있나봐

-「깨진 접시」전문

참 청승맞다. 그가 손수 지은 산속 움막집 빗소리가 이번엔 보름달로 떴다. 좀 뭣하지만 그와 같은 시내에서 십유여년을 비비고 살았던 까닭에 자연스럽게 내가 쓴 시 「혼자 먹는 밥」이 인용되어 우정을 더한 것 같다. ‘밥그릇 씻어 엎다보니/무덤과 밥그릇이 닮아 있다/이 빈 그릇들 우리 생애서 몇 번이나 엎었다 되집을 수 있을까//창문으로 얼비쳐드는 저 그믐달/방금 깨진 접시 하나’ 이는 내가 쓴 시「혼자 먹는 밥」의 2, 3연이다. 그의 삶과 나의 삶을 살강에 씻어 엎은 다면 무척 ‘닮은꼴’이다.

영양괘각(羚羊挂角) 같은 삶을 살면서도 무문(無門)의 풍류인은 못되어도 숲 속에 들어가 발을 씻는 거즐풍류(擧楖風流)의 반풍수쟁이 흉내는 내고 살았을 듯하다. 결단코 우리 삶은 그림자 없이 서 있는 빼빼마른 그 추운 나무는 아니기 때문이다.

언젠가 느꼈지

홀로 가는 산문 길에 동반자는 없다는 것을

언젠가 알겠지

인생길 가다보면 무덤과 밥그릇이 같다는 것을

-「언젠가」5, 8연

위 시는 그의 「아포리즘」으로서 시집의 속갈피에 각을 떠 숨겨둔 깨달음의 의미부여가 되는 시편들이다. 그렇다.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山門으로 들어가는 그 길이 무덤과 밥그릇이 같다는 한길임을 온전히 깨닫고 갈 날도 멀지 않았으리라. 혹독한 이 겨울 내 건강이 우선해지면 여자만의 어느 바닷가 움막집에 들어가 뎅이굴을 까며 같이 후루룩 소리 한 번 내고 싶구나. 시가 뭣이랴, 건강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