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응등그러진 무르팍 세워/붉은 노을 한 지게 지고 일어섰다”는 정홍순 시인의 시어가 생각난다.
순천만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은 고달픈 하루를 짊어진 채로 붉게 붉게 타는지도 모른다. 서러움도 괴로움도 고달픔도 아니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다 껴안은 채 곱게 물들이고 있다. 아마도 모든 삶을 섞고 버물어서 노을로 승화시키고 있는 성 싶다.
그래서 일까? 사람들은 순천만정원에 들어서면 스마트폰으로 저녁노을을 촬영해서 짤막한 문장과 함께 지인들에게 보내는 모습이 비일비재하다. 더욱이 순천만정원에서는 깨알 같은 글씨로 자신이 느낀 감정을 예쁜 엽서에다 옮겨 써서 보내는 옛 정서를 되살리기도 한다.
남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순천시는 이제 도시가 아니라 순천만정원이다. 30여 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은 지구촌의 정원에서 옛 정서를 만끽할 뿐 아니라 힐링문화에 익숙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세월호 참사로 인해 심리적 트라우마가 극심한 상황에서 순천만정원을 산책한다는 것은 자신의 건강은 물론 국민적 건강에서도 좋은 건강법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자면 국민의 정신적 치유를 돕는 것은 생태체험학습 공간으로 이미 명소로 알려진 순천만정원일 것이다. 즉, 동천과 봉화산 둘레길, 순천만을 비롯해 낙안읍성, 송광사, 선암사 등 자연정원과 역사정원, 문화정원으로 형성된 도시가 순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순천만과 순천만정원을 연결하는 길이 4.6㎞에 국내 처음으로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소형경전철 스카이큐브 40대를 운행하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간들을 체험할 수 있는 힐링정원으로 가꾸어지고 있다.
또 여름철에는 동천 수상자전거, 물 버섯 물놀이, 물총놀이 등 물을 테마로 체험꺼리를 준비하고, 친환경 화분 만들기, 정원영화제, 동물 및 곤충 전시회 등 생태체험 프로그램을 늘려 관람객들이 더위를 쫓으면서 즐기도록 할 계획이다.
이처럼 노을가득 짊어진 순천만은 생태체험을 할 수 있고 힐링문화를 즐길 수 있는 휴식공간이 마련 돼 있다.
상기해 보면 조선시대 때 동천변에 자리한 순천의 환선정의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해 누각의 향취를 풀어 낼 정도로 외부 인사들이 많이 다녀가는 장소로 손꼽혔었다.
현재 환선정이 위치한 곳은 죽도봉으로 순천 시가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어서 시민들의 산책과 휴식처이며, 녹음이 우거진 동산은 흡사 외롭게 둥둥 떠 있는 섬같이 생겼다. 약 4백 년 전만 하더라도 전죽(箭竹)이 숲을 이루어 화살을 생산 전쟁병기로 사용했던 것을 근거로 죽도(竹島)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누각은 정면 5칸에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정내에 해서체의 대서 '환선정'이라는 현판이 눈길을 붙잡는다.
잠시, 조선중기 학자이자 정치가인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이 순천부사로 재직할 시, 환선정에서 읊은 시를 전해볼까 한다.
둑 버들은 사람 맞아 춤추고 / 숲 꾀꼬리는 객(客) 반겨 노래하네 / 비 개이고 산은 활기찬데 / 바람 따뜻하니 풀은 싹이 돋는구나.
볕으로 드니 시(詩) 속 그림이요 / 샘물 소리는 악보(樂譜) 밖 거문고 가락인가 / 길은 멀어 아득한데 /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岸柳迎人舞 林鶯和客吟 雨晴山活態 風暖草生心 景入詩中畵 泉鳴譜外琴 路長行不盡 西日破遙岑
이뿐 아니다. 이곳에서 가사(歌辭)에서는 제1인자로 꼽히며 장진주사(將進酒辭)를 지으며 술을 즐겨했던 송강 정철(1536년~1593년)도 술을 부르며 시를 읊었다고 한다.
한 잔 물이 만리선을 용납키 어렵듯이 / 지금 사람이 어찌 옛 어짐과 같으리요.
겹겹이 성의 고목은 삼추의 후요/ 큰 들의 한가한 구름은 낙조의 앞이네
수많은 선비들의 이곳에 머물면 절로 시를 읊었다고 한다. 그것은 오늘날 선비들이 순천 땅에 여유라는 단어를 심어두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여유는 명예나 부가 아님을 우리들의 선비들은 체험하고 후세들에게 남기고 간 것이다.
아무튼 순천만에는 인생여정을 노래하듯 저녁노을이 붉게 타고 있다. 일몰 속에 비쳐진 황홀경에서 또 다른 힐링문화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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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3 22:30 송고
2014-05-23 23:57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