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누가 봐도 욕심이 나지 않을 성 싶다. 시내와 외떨어진 것하며 벽돌집이지만 함석을 덧대어 이어진 지붕하며 오래된 샷시 문짝하며… 집이 지니지 말아야 할 악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문의 풍경을 묘사하면 취약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가까운 친척 한 분이 다녀간 적이 있는데 그 분의 입을 빌자면 “웬만하면 집단속을 하고 살아 야제, 어디 쓰겄는가” 였다. 가까운 사이긴 하지만 남의 집 이야기를 하는 것은 결례라는 것을 알고 있음직한 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으니 상태가 어느 정도 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스무 해째 이 집에서 기대어 살고 있다. 나는 따로 떨어진 서재에서 작품구상도 하고 작품을 쓰기도 하는데 어쩌면 나에겐 안성맞춤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나는 깊은 밤, 잠에서 개어날 때가 많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나의 방은 그 자연의 소리들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깊은 밤 예상치도 않은 시간에 비오는 소리를 들어보라! 그리고 대숲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를 들어보라! 나는 농촌에서 자란 탓인지 그 소리를 들으면 깊은 사유의 공간에 빠져들곤 한다. 더구나 지붕이 없는 베란다에는 달님이 찾아와 내 세재를 엿보곤 한다. 그러니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달님을 맞아 밤이 이슥해지도록 놀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밖에서 뭘 하느냐고 지청구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내가 이 집으로 오게 된 경위는 좀 남다르다. 내가 퇴직할 때만해도 금리가 괜찮았고 투자처도 많았다. 나는 연금이라는 좋은 제도가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액 일시금으로 찾았다. 당시엔 좋은 투자처가 많아 잘만 굴리면 퇴직금의 갑절이나 되는 돈을 손에 쥘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투자를 시작하고 나서 약 5년 동안은 꿈이 현실이 되는 이변(?)이 일어나곤 했다. 나와 같이 투자한 사람들도 투자처의 전략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나는 거기까지로 만족했어야 했다. 더 큰 수익을 챙기려다가 더 큰 손실을 챙기고 말았으니까. 더 큰 손실을 챙기는 정도가 아니라 쫄딱 망해 버렸으니까. 투자처의 부실한 경영이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
  그 결과 나는 살고 있는 집마저 잃고 거리로 나앉게 되었는데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마침 법원에 다니는 이웃사람이 경매로 싼 집을 살 수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나는 그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당장 거처할 곳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비상금을 털어 그 집을 매입하여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처음 이사를 하였을 때는 “유령의 집”이나 다름이 없었다. 전 주인이 살지 않고 비워두었던 듯 거실이며 현관에 먼지투성이였으며 꺼져있는 방바닥에 금간 유리창엔 뽀얀 안개 같은 것이 끼어 있었다. 우선 불편한 것만 고치고 치우고 정리를 하느라 한 달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다.
  등을 붙이고 일 개월, 이 개월, 삼 개월을 살다보니 점차 불편함을 해소되고 그와 반대로 처음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좋은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선 도시의 주택은 조망권이 확보되지 않은 것이 문제인데 이 집만은 그러지 않았다. 베란다를 통하여 건너다 볼 수 있는 야산의 풍경이 좋았고 항시 귀 바퀴를 떠나지 않은 바람소리가 좋았고 지루한 여름이 지나가고 나면 가을을 재촉하는 소슬한 빗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아무도 모르게 달려드는 바람소리, 빗소리, 그리고 간간이 들려오는 새소리… 이러한 자연의 소리들이 어찌 정겹지 않겠는가. 나에게는 감성을 일깨워 주는 메시지가 되어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촉진제가 되었다. 내가 자연에 관한 글을 많이 쓴 것도 그러한 힘에 기인한 바가 적지 않았으리라.
  옛날 선비들은 벼슬과 재물을 밝히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의 삶은 청빈했으며 설령 벼슬을 살았다 해도 재물보기를 돌같이 하였으니 청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십 년을 경영하여 초가 삼 간 마련하니
  나 한 칸 달 한 칸 청풍 한 칸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들러두고 보리라

  이 글은 면앙정 송순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송순은 중종14년에 별시문과에 급제한 이래 홍문관 직제학, 사간원, 대사간을 거쳐 그의 나이 77세 때 한성부윤, 의정부 춘추감사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무려 50년간이나 벼슬살이를 한 것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4대사화가 일어나는 등 혼란한 시기였으나 그는 단 한 번의 귀양살이를 했을 정도로 관운이 좋았다. 하지만 재물을 알지 못했던 그는 위에서 인용한 초가 삼 칸과 면앙정이라는 정자를 남겼을 뿐이니 그의 청빈이 어느 정도였던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송순 외에도 맹사성, 황희 같은 분들도 벼슬살이를 했지만 재물과는 거리가 멀어 집은커녕 끼니를 걱정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신세를 한탄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시를 짓고 율조를 읊는 유유자적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나의 청빈을 어떤가? “부를 쫒다가 추락한 사람”이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나는 감히 출신성분부터가 그 분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현대판 청백리가 되어버린 듯한 착각에 빠져 있으니 어찌 우습지 아니한가. 더구나 그가 기거하는 집과 그가 모자처럼 쓰고 다니는 사회적 지위로 그 사람의 경중을 계량하고 있는 차제에 무슨 썩어빠진 소리냐고 할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내 분복에 만족하고 있다. 부는 나와는 처음부터 인연이 없었던 것 같고 관운도 없어 미관말직으로 마칠 수 있었으나 그마저도 다행이 아닌가 싶다.
   내일 모레면 음력 대보름이 다가오고 있다. 벌써부터 내 마음이 기대감으로 부풀어 오르고 있다. 보름이 되면 어김없이 맷방석만한 달님이 베란다를 통하여 내 서재까지 내방할 것이기 때문이다. 재작년에도 그러했고 작년에도 그러했으니 금년에도 그러할 것이다. 나는 그날 달님을 맞이하면 부득불 한 잔 나누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