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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배려의 “낙안읍성 솥 바위”/ 김용수
2022-01-10 오전 6:37:54 참살이 mail yongsu530@hanmail.net


    김용수 편집국장



    설이 다가오고 있다. 벌써부터 설빔과 함께 설음식이 생각난다. 특히 나눔과 배려의 아름다운 풍속이 그려진다. 하지만 아파트문화가 비대해지면서 미풍양속이 사라지고 설날의 의미조차도 퇴색되어지고 있다.

    검은 호랑이해를 맞이한 금년 설에는 나눔과 배려의 상징인 “낙안읍성 솥 바위”를 찾아볼까 한다. 구전으로 내려온 ‘솥 바위’는 지금도 낙안읍성 서쪽동산에 자리하고 있다. 누르스름한 표피바위로 5미터 정도의 크기를 지닌 솥 바위의 전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낙안읍성의 솥 바위의 전설을 상기해볼까 한다. 다시 말해 솥 바위전설을 통해 사라져간 미풍양속을 되새기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낙안읍성 서쪽동산 언저리, 그 언저리에 이름 모를 바위전설, 그 전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낙안읍성 서내리 동네에 돌을 쌓는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부부는 날이면 날마다 돌을 줍고 모으며 담장을 쌓는 등 돌쌓기에 전념했다. 하루는 금전산 돌밭에서 필요한 돌을 주워 모으고 있는데 백발 할머니가 나타나서 말했다.

    “여보게, 젊은이!, 이 돌을 가져가서 물을 주고 키우게, 장차 긴요하게 쓰일 때가 있을 것이네” 라고 말하면서 솥을 닮은 돌멩이 하나를 건네주었다.

    부부는 하도 신기해서 그 돌멩이를 집안 뜰에 두고 지극정성으로 물을 주고 가꾸었었다. 날이 갈수록 솥을 닮은 돌멩이는 쑥쑥 자랐다. 해가 바뀌고 1년이 되던 날이었다. 또 다시 나타난 백발할머니는 말했다.

    “이제는 물을 붓고 불을 지펴보소, 그 돌솥에 물을 붓고 불을 때면서 소원을 빌어보소, 원하는 음식이 만들어질 것이네”라고 했다.

    부부는 백발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물을 붓고 불을 지피면서 하얀 쌀밥을 해달라고 빌었었다. 물이 끓고 김이 모락모락 났다. 얼마 후, 솥 바위는 하얀 쌀밥을 만들어 냈다. 또 다음날은 물을 붓고 불을 지피면서 고기국물을 만들어 달라고 빌었다. 역시 맛있는 고기국물이 만들어 졌다. 돌솥은 젊은 부부가 원하는 대로 음식을 만들어 냈다. 부부는 먹을 것이 해결되면서부터 건강과 함께 살림도 넉넉해 졌다. 따라서 동네 돌담은 물론 돌다리와 돌집 등 돌쌓기에 관련된 일 등은 부부가 해냈다.

    어느덧 부부에게 옥동자가 태어났다. 그 옥동자는 무럭무럭 자랐으며 힘이 장사였다. 동네사람들은 그 아이를 부를 때 돌쇠라고 불렀다. 돌쇠가 청년으로 성장했을 때, 돌솥이 윙윙하고 바람소리를 냈다.

    이상하게 생각한 부부는 돌솥에 물을 붓고 불을 지피며 백발할머니를 찾았다. 물이 끓고 김이 솟아나자 백발할머니가 나타났다.

    “백발할머니! 돌솥이 바람소리를 냅니다. 무슨 일일까요?”
    백발할머니는 말했다.

    “돌솥이 바람소리를 낼 때는 키워주라는 소리이고, 돌솥이 쩌렁쩌렁 울릴 때는 위험을 알리는 소리네, 이제부터 돌솥은 돌쇠가 주인이네. 돌쇠에게 물을 주고 가꾸게 하소. 지금부터 돌쇠에게 돌솥을 키워서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하소”라고 말했다.

    부부는 백발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돌쇠아들에게 솥 바위의 내력을 알려주었다. 돌쇠는 아침저녁으로 정성을 들여 물을 주었다. 지금까지 멈춰 있었던 돌솥은 쑥쑥 자라기 시작했다. 돌쇠가 짊어지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자랐었다.

    돌쇠는 대처를 다니면서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배를 채워주기에 바빴다. 어느 날이었다. 돌쇠를 사모한 처녀가 돌쇠에게 사랑을 고백해 왔다. 돌쇠도 그 처녀의 사랑고백을 받아들였다. 깨가 쏟아지는 나날이 지속되었다.

    사랑에 빠진 돌쇠는 돌솥을 등한시 했다. 돌솥을 서내리 동산에 방치해두고 주색잡기에 빠져버렸다. 돌쇠에게 병마가 찾아왔다. 쇠약할 때로 쇠약해진 돌쇠는 죽음의 문턱에 들어섰다. 순간 방치해 둔 돌솥이 쩌렁쩌렁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왜구가 쳐들어오고 돌쇠는 죽었다. 부부는 아들의 죽음과 돌솥의 울음을 알기 위해 쑥대밭에 버려진 돌솥을 찾았다. 방치된 돌솥은 큰 바위로 변해있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솥 바위로 변해 있었다. 아무리 빌어도 백발할머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부부는 솥 바위에 물을 붓고 불을 지피면서 돌쇠의 잘못과 자신들의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까를 물었다. 하지만 백발할머니는 나타나지 않고 음성으로만 들려왔다.

    “이제 돌솥의 신비로움은 사라졌다. 솥 바위를 움직일 수 없으며 들고 다닐 수도 없다. 솥 바위가 돌솥으로 되돌아오기까지는 도덕경이 필요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나눔을 베풀어야 하고 미풍양속을 지켜야만 한다.”

    구전으로 내려온 이야기지만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요즘처럼 각박한 사회 속에서 낙안읍성 ‘솥 바위이야기와 장군죽의 이야기’는 현대인에게 경종이 되지 않을까 싶다. 권력과 금욕으로 비대해진 몸통을 제자리로 돌린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현실이다. 솥 바위이야기처럼 나눔과 사랑 그리고 미풍양속을 되살려야 할 것 같다.  
              

     






    <저작권자©참살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22-01-10 06:37 송고
    나눔과 배려의 “낙안읍성 솥 바위”/ 김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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