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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온 길 너머 두랭이 길에서/ 김용수
2021-08-23 오전 9:29:28 참살이 mail yongsu530@hanmail.net


    김용수  편집국장




    여자만과 순천만을 잇는 와온 길과 두랭이 길은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곳이다. 붉게 타오르는 노을빛과 시시각각 변하는 노을풍광은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일까? 이곳 해넘이를 즐겨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특히 건강을 중요시하는 요즘, 두랭이 길은 산책의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연인과 걸을 때는 연인들의 장소로, 나약해진 사람들이 걸을 때는 힐링의 장소로, 가족과 함께 걸을 때는 나들이 장소로, 탈바꿈한 “두랭이 데크길”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도 충분하다.

     

    2키로 미터에 달하는 “두랭이 데크 길”, 그 길은 순천만과 여자만이 한 눈에 들어온다. 금빛 찬란한 갯벌 밭의 진풍경은 지친일상을 달래주는 삶의 터다. 또 그 바다위로 옹기종기 떠있는 꼬막 배는 어촌풍경을 여실하게 그려주는 한 폭의 그림이다. 게다가 넘실대는 파도와 바닷바람은 온갖 시름을 사라지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이밖에도 겁의 세월을 씻겨 내린 갯바위의 속살은 먼먼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파도에 씻기고 닳고 닳은 갯바위표피는 매끄럽게 드러나 있으며 기암괴석을 연상케 한다. 


    먼저 ‘두랭이 데크 길’을 조성한 여수시에 감사함을 전한다. 한국의 나폴리로 불리는 여수시의 장점을 자랑하듯 ‘두랭이 데크 길’은 정겨운 길로 거듭나고 있다. 아니, 자연경관을 그대로 살린 관광 상품이 되고 있다. 어쩌면 아름다운경관을 떠나 정감이 솟아나는 바닷가산책길이나 다름없다. 부모, 형제, 친지와 친구 그리고 고향의 정을 가득담은 솥단지길이다.


    ‘와온과 두랭이’ 지명부터가 특이하면서 정겨움을 준다. 즉, 와온은 누우면 따뜻한 곳으로 고향을 연상케 한다. 게다가 두랭이는 도롱이의 전라도 방언으로 짚이나 띠 따위를 엮어 만든 옛 우비의 하나로 우산처럼 보호막을 형성한다.


    벌써 옛날인가 싶다. 4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당시의 ‘두랭이’ 어촌생활상을 그려본다. 큰길에서 마을길로 접어든 도로는 비포장 자갈길로 겨우 소달구지가 다닐 수 있었던 도로였다. 이곳을 찾아가려면 순천에서 여수로 가는 중간지점 하사종점에서 내려 1시간이상을 걸어가야 했다. 운이 좋으면 소달구지를 얻어 타고 두랭이 바닷길을 갈 수 있었다. 두랭이 마을과 소댕이 마을은 어민들이 모여 사는 조그마한 어촌이었다. 


    당시 필자는 수석에 미쳐있었다. 배낭을 짊어지고 와온 바닷가에서 두랭이, 소댕이 바닷가를 샅샅이 훑고 뒤졌었다. 탐석을 하는 동안에는 배가 고픈지, 고된지도 몰랐었다. 어느 날인가는 비금 석(엇갈림 석)을 탐석한 후, 급작스럽게 허기와 피로가 몰려왔었다. 꼬르륵 소리가 요동을 칠 때서야 배고픔과 지쳤음을 느꼈었다.


    그러나 시장기를 달랠 수 있는 가게나 점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어촌인 두랭이 마을뿐이었다. 노을이 곱게 물들고 있는 두랭이 마을은 저녁밥을 짓는 굴뚝연기가 몽글몽글 솟아나고 있었다. 염치를 무릅쓰고 밥 구걸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기진맥진한 필자는 한마디 말도 건네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두랭이 마을 바닷가외딴집이었다. 4남매를 둔 40대 부부가 쓰러진 필자를 구해준 것이다. 부부는 생면부지의 필자를 따스함과 사랑으로 감싸 주었었다. 바다추위와 배고픔을 해결해 주었던 것이다.


    부부는 말했다. 이곳 두랭이 마을은 교통이 불편한 오지로써 갯것과 고기잡이를 하면서 살아간다고 말이다. 당시만 해도 어패류의 값이 저렴할 시대였다. 쌀밥을 먹는 집은 마을전체를 두고 한두 집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두랭이 마을사람들은 손님접대를 정성껏 하는 편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자신들은 보리밥을 먹을 지라도 손님에게는 쌀밥을 대접했었다.   


    이후, 필자는 그날의 인연으로 두랭이 바닷가를 줄곧 찾았었다. 40대 부부는 물론 마을사람들은 필자를 반겼었고 필자역시 그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많았었다. 꼬막, 바지락, 고동, 게를 잡다가 문절이 낚시까지 어촌생활에 빠졌었다.


    무엇보다도 일몰시간이면 서쪽하늘에 펼쳐지는 낙조가 일품이었다. 여자만과 순천만의 갯벌을 금빛으로 물들이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대형화선지로 돌변한 서쪽하늘은 대자연이 그려내는 만물상이었다. 웅장하면서도 변화무쌍했었다. 주황빛과 붉은 빛을 휘저으면서 별의별 형상을 그려냈으며 천지창조를 하는 듯했다.


    이곳 이장을 맡고 있는 백형욱 교수의 변을 들어본다. 그는 이곳에서 태어난 어민의 아들이다. 단 한 번도 두랭이를 잊어본 적이 없다는 백 교수는 여자만과 순천만의 풍광을 자랑한다. 청정바다환경과 저녁노을의 변화무쌍함을 곧잘 이야기 한다. 더욱이 노랭이 앞바다에서 생산된 어패류로 만든 음식을 자랑삼아 말한다.


    잠시, 여자만과 순천만의 ‘갯노을’ 길을 살펴볼까 한다. 갯벌과 낙조가 펼치는 금빛향연이라 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여수와 순천을 등지고 펼쳐지는 해안선은 빼어난 경관이다. 풍부한 갯벌과 일등급의 청정해역을 유지하고 있어 각종해류와 어류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다. 따라서 각종 철새들이 겨울나기를 하는 천혜의 해양환경을 지닌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17번 국도를 따라 오다가 지방도 863호로 들어서야한다. 여수시 율촌면, 소라면을 통과해서 오는 길이 있고, 순천시 해룡면을 통과해서 오는 길이 있다. 깔끔하고 정겨운 해안풍경으로 마음에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와온 길 너머 두랭이 길은
    우리 누이 단잠소리 들리고
    두랭이 길 건너 와온 길은
    우리 엄마 한숨소리 저문다


    아무도 모른다
    누구도 모른다
    그날의 그 사연을

    노을 붉게 타는 저녁
    두랭이 길에서 만난아낙네
    참살이로 다져진 아가씨다


    게, 고동, 꼬막, 바지락 잡는 처녀
    아니 아니다 노을빛 쫒는 소녀
    가녀린 순정을 앗아가 버렸던
    와온 길 너머 두랭이 길을
    지을 수 없고 잊을 수 없다


    황혼 빛 스며드는 두랭이 길
    누이가 걸어가는 단풍 길
    엄마가 걸어왔던 빙판길
    순천만 잇는 여자만 길
    인정을 잇는 참살이 길
    정담길이고 고향길이다
    (필자의 “와온 길 너머 두랭이 길”전문)

    <저작권자©참살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21-08-23 09:25 송고 2021-08-23 09:29 편집
    와온 길 너머 두랭이 길에서/ 김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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