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쟁아! 언제 
얼굴 보여줄래?

서울의 체감온도가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엄동설한에 
깨댕이 친구한테서 전자편지가 날아왔다
나는 군불을 때서 따끈따끈한
아랫목보다 더 따신 마음을 읽자마자
‘지난번에 만났던 그곳으로 와’
하고 빠른 답장을 보내놓고
약속된 장소로 걸음을 재촉한다
만나면 입부터 즐겁게 해주려고
가게 쪽으로 급한 걸음을 옮기는데
흰 눈을 뒤집어쓴 동장군이 난데없이
앞장을 서더니 과일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배를 고르려는데 거뭇거뭇 멍이 들어있다
사과를 고르려는데 군데군데 문드러져 있다
나는 조개입속에서 진주를 캐내듯
심미안으로 세세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동장군이 귀엣말로 사람이나 과일이나
상처가 많아야 깊은 맛이 난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마빡이 반질반질하게 잘 생긴
단감이 오늘따라 정머리가 없어 보이며 적막하다
초록 잎에 매달렸던 겨울딸기도
잎사귀가 없어서인지 보기에 민망하다
비바람과 폭풍우에 시달리면서
희노애락애오욕으로 울면서 솟구쳤을까?
천지간 우레같이 사무치고 사무친
사과는 석가의 경전이고
배는 성자의 유골이고
 
모든 과일은 꽃이 진 자리마다
열반에 들어간 사리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