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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사월이 가고 있다. 푸른 오월에는 順天 길(道)을 걸어야 한다. 봉화산 둘레 길에서부터 조계산 둘레 길까지 수많은 순천 길을 걷노라면 버림과 비움의 철학을 느낄 수 있다.

다수의 사람들은 두 갈래 길에 들어서면 주춤거리며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에 망설여진다. 그것은 자신이 가야할 길이 이쪽 길인지, 저쪽 길인지, 분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덕길에 접어들면 힘들다는 생각이 먼저 들면서 가능한 한 그 길을 피하려 한다. 특히 험난한 길을 가다보면 별의별 생각과 함께 돌아서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돌아 설 수 없는 현실에서 진퇴양단일 때가 부지기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평탄하고 반듯한 길만을 걸을 수는 없다. 구릉지고 진흙투성이 길도 가야한다. 울퉁불퉁하고 굽어진 길도 가야한다. 아니 땅길도 물길도 하늘길도 가야한다. 그것이 인생길이다.

중년에 접어들면 젊음을 앞세운 지난날을 생각하고 현실을 망각할 때가 많다. 힘이 솟고 넘쳐나는 청춘기를 회상하면서 필요이상의 용기를 내세울 때가 많다. 하지만 마음뿐인걸 어찌하랴! 몸은 말을 듣지 않고 마음만 청춘인 것을 어떡하랴! 필자역시 젊은 날의 힘을 과시할 때가 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가득할 때면 순천 길을 걸어야 한다. 더욱이 온 산천이 연두 빛을 발하는 푸르른 오월에 순천길을 걷노라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순천 길에는 졸졸졸 시나브로 흐르는 계곡물과 냇물의 장단에 맞춰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 삶의 무게가 저절로 가벼워지는 산책길을 걸을 수 있다. 한발 한발 걸으며 복잡한 일상을 내려놓을 수 있다. 편백나무 숲길을 걸으며 묵언과 심호흡을 할 수 있다. 눈 감고 고요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청빈한 침묵의 시간 속을 거닐어 볼 수 있다.  

더욱이 조계산 계류가 굽이치는 송광사 계곡에는 돌로 만든 무지 개다리 위에 청량각(淸凉閣)이 있다.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가라는 의미일까? 맑은 물과 청량한 바람이 항시 불고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순천의 둘레길, 순례길, 올레 길 등을 걸어야 한다. 그 길섶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하면서 걷노라면 지난 추억들이 새하얗게 덮쳐오고 내일의 삶이 펼쳐질 것이다. 

푸른 오월, 순천길을 걸으면서 욕심껏 살아왔던 인생지게를 벗어봄이 어쩔까 싶다.

송광사 불일암에서 무소유를 펴냈던 법정스님과 순천의 동심을 노래했던 정채봉 작가의 혼이 깃든 순천 길에는 오늘도 푸르름이 짙어가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 숲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선암사 길은 초입부터 명상 숲이다. 수백 년 된 아름드리 수목들이 울창하게 들어서 있고 맑은 계곡물이 깔깔대며 흐른다. 마사토와 황토로 다져진 비포장도로가 약 2 키로 미터에 달해 힐링 길로 유명하다.

이뿐 아니다. 순천만 갈대밭길에는 청갈대가 쭈빗쭈빗 솟구쳐 올라 보는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쏟아놓게 한다. 게다가 비비새를 비롯한 수많은 새떼들이 지저귀며 날아드는 광경은 대장관이다.

푸르른 오월, 봉화산 둘레길을 비롯해 순천만 갈대밭길, 조계산 둘레길, 순례길, 올레길 등 수많은 순천길을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