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편집국장

순천만 겨울바람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수와 고흥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버물어진 순천만의 겨울바람은 알싸하다. 먹이의 사슬고리가 엮여있고 문화적, 역사적 생활양식이 서려 있는 생활광장일지도 모른다. 특히 서울과 부산 그리고 대구와 광주 등 도시민들의 애환이 녹아있는 삶의 안식처가 아닐까 싶다.

철새들이 날아들고 겨울 손님들이 찾아드는 순천만에 겨울바람이 불고 있다. 아마도 의, 식, 주를 해결하려는 삶의 경쟁이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생물의 먹이 활동부터 큰고니, 흑두루미를 비롯해 수많은 철새들의 먹이활동 등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철새들의 겨울 서식지로 이름난 순천만! 그곳에는 또 다른 습지복원을 만들고 다양한 철새와 물새들이 모여드는 보금자리를 조성하고 있다. 올해 내륙에 조성된 연꽃 복원습지는 순천 문학관 600m 부근에 있다. 국가유산청 국비 지원을 받아 농경지 25,000㎡에 연 3,300 뿌리를 심어 큰고니 먹이원으로 조성됐다.

철새들의 군무와 갯벌, 그리고 갈밭이 어우러진 순천만의 겨울은 극히 아름답다. 하지만 겨울바람은 냉차고 매콤하다. 매콤한 냄새를 풍기면서 잔혹한 역사를 더듬게 한다. 쓰라린 역사의 뒤안길을 두 번 다시 겪지 않으려는 지역민들의 가슴은 크게 요동치고 있다. 여순반란사건을 겪은 지역민들이기에 더욱 긴장되고 있다. 여순 사건을 한때는 '여순 반란'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여수와 순천의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아니다. 단지 두 도시에 주둔하고 있던 군대가 일으킨 사건이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공식 명칭에서는 여순반란이라는 단어가 삭제됐다. 다른 명칭으로는 '여수 14연대 반란사건'이다. 왜냐하면 여수에 주둔하던 군부대의 병력이 주축이 돼 일어난 반란이기 때문이다.

지난 3일,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됐다. 지역민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고 아픔의 상처가 되살아났다. 더욱이 광주항쟁을 겪은 지역민들은 안절부절 속에 지난 계엄령을 상기시켰다. 밤을 지새우며 뜬 눈으로 지켜보아야 했던 지역민들은 애간장이 탔다. 누구를 위한 계엄령인가? 생각조차 하기 싫다는 지역민들의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무엇보다도 순천만 겨울바람이 몰고 온 광주 이야기는 긴장과 함께 깊은 상처를 헤집게 했다. “1980년의 봄” 5.18의 광주항쟁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당시의 계엄군 활동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광주 시민들은 물론 그 일대 지역민들이 겪었던 광주항쟁은 지울 수 없는 비극을 초래했다.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실과 함께 오명의 역사를 남기게 됐었다.

“소년이 온다”를 집필한 한강 작가는 지난 7일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여덟 살에 쓴 자신의 '사랑이란 어디 있나'의 시 구절로 시작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사랑이란 무얼까?/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어린 가슴속에 자리한 ‘사랑’이라는 낱말이 오늘의 노벨문학상으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는 ‘소년이 온다’의 집필 과정을 밝히면서 ‘과거가 현재 돕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다’고 했다. 광주 출신인 한강은 지난해 1월,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에 담긴 유년 시절 일기장 사이에서 이 시를 발견했다고 한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작품이 언제나 '사랑'을 향해 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2021년 가을까지,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란 두 질문이 나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왔다"며 "하지만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고,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움이었다"고 말했다.

광주 망월동 묘지를 다녀온 뒤 한강은 "정면으로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을 다루는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했다. 한강은 "900여 명의 증언을 모은 책을 구해 한 달에 걸쳐 매일 9시간씩 읽어 완독했다"며 "이후 장소와 시간대를 넓혀 인간들이 전 세계에 걸쳐 긴 역사에 걸쳐 반복해온 학살들에 대한 책을 읽었다"고 말했다.

순천만 겨울바람은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송수권 시인의 ‘흑룡만리’라는 대서사시다. 제주 4.3 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흑룡만리에서 송 시인은 “기록이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되고 햇빛에 바래어 지면 역사가 된다고 했다. 한반도의 남국에서 유일하게 창조된 한라 여신들이 빚어낸 신화의 땅에서 벌어진 4·3은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가. 제주에 와서 신화와 역사가 혼돈되어 현실의 캄캄한 동굴 속에서 분리되고 깨어나는 것을 보면 나는 두려워진다.”고 했다.

분단의 아픔과 그 상처의 흔적을 좇아 대서사시를 쓰고 있던 송 시인은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러나 달궁아리랑과 빨치산에 이어 세 번째로 집필했던 대서사시 ‘흑룡만리’는 살아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국민들의 아픔과 사랑이었다.

제주 4·3 사건이란 무엇인가? 제주 4·3 사건이란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중항쟁 사건을 말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을 하고 미군정 시대에 재등장한 친일세력들이 그들만의 남한 단독정부를 세우고자 했을 때, 남조선노동당은 그것을 격렬하게 반대를 했던것이다. 친미, 또는 친일 잔존 세력들과 공산주의자들의 그 격렬했던 사상과 이념 투쟁 사이에서, 그 어느 노선도 아니며, 아무것도 모르는 제주도민 3만여 명이 무자비하게 대량 학살되었던 사건이다.

송수권 시인은 순천만 갈밭 길과 갯벌 밭을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 짱둥어와 망둥이 낚시를 비롯해 낙지 탕탕이가 생각날 것이다. 그는 항시 순천만을 산책하면서 필자를 대동했었다. 그 것은 바로 순천만의 아름다움과 역사성, 문화성을 집필해 훌륭한 작품을 써보라는 뜻이었다.

이처럼 순천만 겨울바람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필자 역시도 순천만 겨울바람을 쐬면서 잡다한 상념을 글로 옮기고 있다. 평화와 사랑의 무대가 펼쳐지는 순천만! 갈밭과 갯벌은 영원한 사랑의 보금자리로 간직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