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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 지금은 사랑할 때
오양심 시인 / 이놈아, 너 이렇게 예뻐도 되는 거냐?
2011-09-26 오후 12:50:17 참살이 mail yongsu5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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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도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는 속담이 있다. 조선 순조 때 김매순이 한양의 연중행사를 기록한 내용 그대로 오늘은 2011년 9월 12일 추석날이다. 가을하늘은 마음껏 높고 푸르다. 먼발치에서 익어간 곡식들은 지긋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만물이 풍성한 이 좋은 계절에 추석을 맞이한 우리 집은 행복하다.
      남편은 오랜 동안 뇌경색과 당뇨합병증이라는 병마와 싸우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갓 백일을 넘긴 손자와 서로 눈을 맞추고 행복한 옹알이를 주고받고 있다. 어린아이의 해맑은 미소를 바라보며 ‘이놈아, 너 이렇게 예뻐도 되는 거냐?’하며 연신 허어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나도 모처럼 가장이고 생활인이라는 쇠사슬에서 벗어나 신선이 되어 하늘을 날아가고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부엌에서 풍겨져 나오는 깨꼬소롬한 음식냄새로 우리 집은 지금 야단법석이 나 있다.
      그렇다. 추석하면 떠오르는 것이 가족이고, 고향이고, 올게심니이다. 그때 아버지는 직장에 다니셨기 때문에 모든 노동의 몫은 머슴들과 어머니 차지였다. 어머니는 추석이 돌아오면 잘 익은 벼이삭 한 짐을 베어다가 마당에 풀어 놓았다. 그 중에 한 줌은 짚으로 묶어 문설주에 걸어두셨다. 이듬해에도 풍년이 들게 해달라는 기원의 뜻이었다. 또한 어머니는 손바닥만 한 나무판자를 빗처럼 깎고 빗살 사이로 벼이삭을 넣고 알곡을 훑는 홀태에 벼이삭을 끼우고 잡아 당겨서 볏 톨을 떨어내셨다. 털어낸 벼를 솥에 넣고 쪄서 말려두었다가 절구통에 찧었다. 그 찐쌀을 어머니 몰래 훔쳐서 바지 주머니에 넣고 골목을 쏘다니면서 한 주먹씩 입에 넣고 씹으면 달짝지근한 맛이 기가 막혔다. 그 쌀로 지은 밥은 추석날 아침 어김없이 차례 상에 올려졌다.
      두 번째로 인상 깊은 것은 송편을 만드는 일이었다. 송편을 만들기 전에 우선 솔잎을 따는 일은 아이들의 몫이었다. 나는 사랑하는 동생 희순이, 인섭이, 창섭이를 데리고 동네 뒷산으로 올라가서 솔잎을 땄다. 원숭이띠로 태어난 나는 두 손바닥에 침을 뱉어놓고 나무위로 올라가면 원숭이보다 더 나무를 잘 탔다. 내가 나무에 올라가서 솔가지를 아래로 떨어뜨리면 동생들은 와아! 박수를 치며 솔잎을 따서 대바구니에 담았다. 향기가 짙은 솔잎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는 올케와 언니와 함께 송편을 만들 쌀가루를 익반죽하고 계셨다. 가루를 익반죽할 때 쑥이나 송기를 찧어 넣으면 파란색의 쑥 송편이 되었다. 붉은 색은송기송편이 되었다. 노란호박과 파란연잎, 붉은 오미자, 흰 삘기 등은 오방색 송편을 만들기 위해 마련된 재료였다.
      반죽하기가 끝나면 온 식구가 마당에 멍석을 깔고 송편을 빚었다. 반죽을 엄지 한 마디 크기로 떼어 동그랗게 만든 다음 가운데 구멍을 파고 햇녹두, 청태콩, 동부, 깨, 밤, 대추, 고구마, 곶감, 계피가루 같은 것을 소로 넣어 입술모양으로 빚었다. 동생들이 빚은 송편은 큰놈, 작은놈, 찌그러진 놈, 생기다가 만 놈 등 생긴 꼴이 천태만상이었다. 송편을 빚는 것이 아니라 배꼽을 잡고 방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웃음을 빚었다. 송편을 찔 때에는 시루에 넣어 켜마다 솔잎을 깔았다. 시루에서 쪄낸 송편을 먹는 것이 아니라, 김이 올라 시루에서 새어나온 송편의 냄새부터 맛있게 먹었다.
      추석날 절대 빠지지 않는 음식은 홍어무침이다. 어머니는 추석이 돌아오면 집에서 사십 리나 되는 여수 공판장에서 홍어를 사오셨다. 홍어는 막걸리와 식초에 담가놓고 손으로 주물러서 잡냄새를 제거했다. 무는 채 썰어 소금에 절였다. 텃밭에서 갓 따온 붉은 고추와 입안이 화한 잼피 열매와 마늘, 소금 등을 절구통에 으득으득 갈아서 양념을 만들었다. 소금에 절여 놓았던 무는 물기를 꼭 짜고 소금, 설탕, 식초를 넣고 무쳐 놓으면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잔치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음식이 홍어이다 보니 찜이나, 무침은 제사상에 반드시 오르는 제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내가 태어난 전라남도 여천군에 소속된 신산마을은 산과 바다와 들판이 인접해 있어 먹을거리가 풍성했다. 음식문화도 발달한 지역이어서 병어나 낙지, 꼬막 같은 어패류도 제사상에 단골로 오르는 제물이었다.
      특히 추석날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영을 텄다. 동네 반장이
      “동네 사람들, 오늘은 추석명절을 위해 신산 앞바다에서 바지락 영을 트니 바다에 나가서 마음껏 바지락을 캐십시오. 바지락을 많이 캔 사람은 조합에서 수매합니다.”
      마이크로 외치면 동네 아낙들이 바다에 나가 호미로 바지락을 캤다. 똑 같은 시간에 바지락을 캐도 개인의 능력에 따라 캐는 량이 달랐다. 그때는 토란국을 빼 놓을 수가 없었는데, 바다에서 직접 캔 바지락으로 다시마를 섞어서 끓인 토란국은 가슴 속까지 시원하고 맛있었다. 또한 화양적으로는 버섯향기가 유난히 좋은 송이버섯과 햇 도라지, 쇠고기를 길게 채 썰어 갖은 양념을 하여 볶아 꼬챙이에 끼웠다. 누름적은 여러 가지 재료에 밀가루나 달걀을 묻혀 지졌다. 닭은 살이 올라 가장 맛있게 생긴 암탉을 잡아 닭찜을 했다. 밤을 꿀에 개어 붙이는 율 단자도 만들어 차례 상에 올렸다. 밤 대신 토란을 사용한 토란단자를 올리기도 했다. 특히 가을에는 버섯향기가 좋아 고명으로 송이버섯을 많이 사용했다. 술과 조기, 햇무, 햇과일을 차례 상에 올려 조상님께 바치고 온 집안 식구가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그렇다. 추석은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수직과 수평의 합일이다. 나름대로의 삶을 개척하고 있던 큰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고, 이제 갓 백일을 넘긴 아이를 데리고 섬김과 나눔의 공동체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작은 아들이 며느리와 함께 대문을 들어선 것이다. 부엌에서는 날이 저물도록 음식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다. 부침개를 부치면서 오곡백과가 무르익은 이 좋은 결실의 계절에 아들들과 며느리와 함께 풍년가를 부르며 모처럼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병중에 있는 남편이 손녀를 품에 안고 
      ‘이놈아, 너 이렇게 예뻐도 되는 거냐?’ 물기가 배어있는 내리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나의 내면에서 잠자고 있던 정신적인 의식이 날개를 달고 그 옛날 고향집으로 한걸음에 달려간 것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해서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형제들과 만나고 싶어서이다. 삼십년 전 영을 튼 그 바다와 어머니가 못 견디게 그리워서이다.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 삶을 생활화하면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같은 날이 계속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행복할까?

    어릴 때 고향 마을에서는/ 반장이 마이크에 대고/ 오늘은 신산 앞바다에서 영을 틉니다 라고 하면/ 아낙네들이 물때에 맞추어 바다로 나간다/ 나도 무리들 속에 섞여 바지락을  줍는다/ 바구니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동안 / 썰물이 올라오면 엄니는 모래밭까지 허둥지둥 마중을 나온다/ 달님 별님 부르면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리 둘째딸이
    바지락을 캤다!고 목청을 높이신다/ 설 흔 해 전 엄니 돌아가신 그 바다에서/ 나는 영을 잘못 트고 있는데/ 엄니는 지금도 바다를 건너오신다//

     

    * 영을 트다-바다에 나가 조개를 잡는다는 남도 방언

    <저작권자©참살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09-26 12:5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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