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양심 시인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시간이 존재한다. 주관적인시간(절대적인 시간)과 객관적인(상대적인 시간)이다. 성서에서 말하는 절대적인 시간은 신(神)의 시간으로 카이로스이고 상대적인 시간은 인간의 시간으로 크로노스라고 한다. 우리에게 100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시간을 살아야 할까?

고대그리스의 우화작가인 ‘이솝우화’에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하는 이야기가 있다. 토끼와 거북이는 언덕위의 소나무에 누가 먼저 도착할 것인지 경주를 한다. 걸음이 느린 거북이와 달리 발이 빠른 토끼는 곧장 산기슭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한다. 뒤를 돌아보니 느림보 거북이가 멀리서 엉금엉금 기어오고 있다. 토끼는 안심하고 낮잠에 빠진다. 그 사이 한발자국 두 발자국 걸음을 옮긴 거북이는 잠자는 토끼를 앞지른다. 잠에서 깨어난 토끼가 앞서가는 거북이를 발견하고는 서둘러 뛰어가지만 이미 거북이는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는 내용이다.

‘이솝우화’의 ‘토끼와 거북이’이야기는 초등학교 1학년 국어책에 나와 있다. 우리는 천편일률적으로 꾸준히 노력하는 자가 승리한다는 교훈이 담겨있다고 학교에서 배웠다. 토끼는 게으른 사람, 거북이는 성실한 사람이라고, 이미 상대적인 시간에 답을 정해놓고 공부를 가르친 것이다. 하지만 토끼는 지상동물이고 거북이는 수중동물이라는 것을, 왜 토끼에게 유리한 지상에서 달리기 시합을 주선하게 되었는지, 불공평게임의 시작이 인생이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비록 이야기지만 거리게임이 아닌 시간게임에서 역전승으로 전세가 뒤바뀌는 기회, 그 절대적인 시간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이수현은 1974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무역학과에 입학한 이수현은 1999년 휴학하고 일본 도쿄 아카몽카이 일본어학교에 입학했다. 2001년 1월 26일 오후 7시 15분경 아르바이트 후 귀가하던 이수현은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취객이 반대편 선로에 추락한 것을 목격하고 구조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때마침 선로로 들어오는 열차를 피하지 못하고 취객을 같이 구조하던 일본인 사진작가 세키네 시로[關根史郞]와 함께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일본 신오쿠보역에 가면, 숭고한 정신과 용감한 행동을 기리는 이수현의 명판이 새겨져 있다. 그 명판은 시간의 길이가 아닌, 순간을 영혼으로 살다간 이수현의 절대적인 시간, 주관적인 시간의 가치가 우리들 가슴마다에서 빛나고 있다.

안부수는 경상도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징용으로 끌려가 일본탄광에서 일했다. 안부수 아버지는 도망치다가 붙들려서 맞아 죽어가던 탄광동료가, 또한 갱도가 무너졌을 때 흙더미에 깔려서 죽어가던 탄광동료도 “내 유골을 고향땅에 묻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던 그 눈빛이 눈에 밟혀서, 간절하게 부탁했던 말이 귀에 쟁쟁해서 날마다 괴롭다고 가족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안부수 아버지는 갓 돌이 지난 막내아들이 크거든 일본에 가서 흙더미에 묻힌 유골들을 파다가 고향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겨놓고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유언을 실천하기 위해, 일본은 물론 세계 각국의 강제동원 희생자 현장을 찾아다니며, 유해를 발굴하고 모국으로 봉환하는 일을 수십 년 동안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안부수는 (사)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이 되어 우리 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

그랬다. 36년 동안이나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였고, 전쟁이후 60년대 초반의 국민소득은 70불이었다. 지금은 국민소득이 2~3만불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한해의 자살자는 15,000여명이고 자살자 유가족은 십오만 명으로 늘어나고 있다. OECD국가 중 자살 1위국인 우리나라는 유명연예인, 성공한 기업인, 고위공무원, 명문 고등학생, 인류대학생, 전직대통령 등의 자살과 모방 자살, 생활고에 시달린 자살까지 의미 없는 죽음들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시간은 두 가지이다. 돈과 명예와 권력을 얼마나 가졌는지 비교 대립하는 객관적인 시간(상대적인 시간)과 아무런 조건이나 제약이 붙지 않은 주관적인 시간(절대적인 시간)이다. 우리는 마음먹기에 따라서 살신성인(殺身成仁)을 할 수 있고, 억울하게 죽은 유골을 찾아내어 고향땅에 안치해줄 수도 있다. 우리는 얼마든지 시간을 늘리고 줄여가면서 영혼의 안식과 영혼의 평안이 깃든 우주의 큰 수레바퀴를 돌리는 일에, 촌음(寸陰)을 아껴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