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이 밤을 불러 달이 떠도
  고독에 떨고 있는 가시나무새
  어둠이 안개처럼 흐르는 밤에
  환상의 나래 펴네
 
  패티김의 애조 띈 가락의 노래를 들으면서 가시나무새가 어떤 새인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역시 예상한 대로 현실의 새가 아닌 전설의 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전설이 매우 특이했다. 가시나무새는 일생에 딱 한번 운다는 것도 그렇고 가시에 찔려죽는 순간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운다는 것도 그러했다. 그러니까 가시나무새의 울음은 삶과 바꾸어 그 대가로 얻은 울음인 것이다.
  이 얼마나 극적이고 아름다운 죽음인가! 나는 가시나무새의 전설을 읽으면서 최선을 다하여 최상으로 살다간 사람들의 생애를 떠올려 보았다.
 
  미국이 낳은 현대무용가 이사도라던컨의 정열적인 삶과 극적인 죽음은 충분히 가시나무새의 전설에 버금갈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1877년 아버지 조셉던컨과 어머니 메리도라 사이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행복하지 못했고 정규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오클랜드 시의 공립도서관에서 체계적인 독서를 통해서 놀라운 지식을 쌓을 수가 있었다.
  던컨은 한때 발레를 배웠으나 동작상의 제약이 너무 많은 발레는 체질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그만두고 자신만의 독특한 무용을 개발하면서 현대무용의 대표주자로 이름을 얻게 되었다. 무대 위에서 던컨은 슈즈를 벗어던진 채 춤을 추기를 좋아했는데 그로인하여 ‘맨발의 댄서’로 알려지기도 했다.
  “춤이란 단순히 춤추는 동작이 아니라 춤추는 사람의 정신과 사상의 표현이다. 만약 춤이 예술로서의 생명력을 얻지 못한다면 고대의 먼지 속에 넣어두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던컨은 「나의 예술과 사랑」에서 이런 말을 했다. 그녀의 애정행각도 독특하다. 40세의 던컨은 17세의 연하 러시아 시인과 결혼했으나 신경쇠약, 간질, 알콜중독에 시달렸던 그와의 결혼은 불행하게 끝났다. 러시아로 돌아간 그녀의 남편이 피로 쓴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기 때문이다.
  그 후 이사도라던컨은 프랑스 니스에서 지냈다. 이젠 한물간 무용수로 쓸쓸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어느 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한 청년의 권유로 스포츠카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게 되었는데 스카프가 자동차바퀴에 말려들어가는 바람에 목이 졸려 던컨은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게된 것이다. 비록 그녀는 긴 숄과 자동차바퀴의 합작품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온 몸으로 보여준 예술의 혼은 무용계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나는 이 시간 전혜린의 짧았던 생애도 떠올려 본다. 그녀는 1934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아버지 전봉덕의 1남 7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법률가인 아버지의 권유로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였으나 재학 중 전공을 독문학으로 바꾸어 독일로 유학의 길을 떠난다.
  그녀가 독일의 유학 중 체류한 곳은 슈바빙거리였다. 슈버빙거리는 라이너마리아 릴케가 시를 쓰고 간단스키가 그림을 그리고 토마스만이 자주 거닐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 곳에 살면서 전혜린이 배워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무엇에도 거치적거릴 것이 없는 ‘불구속의 자유’가 아니었을까?
  독일에서 신문물과 자유를 만끽하고 돌아온 전혜린은 학교도 해방구가 되지 못했다. 순수한 영혼으로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곤 어디에도 없었다. 친구도 없었던 그녀는 발길 닿는 대로 어디라도 가야만 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명동백작’의 주 무대인 <은성>이었다. 그곳에는 내로라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전혜린은 당연히 신데렐라로 행세했지만 그 누구도 거북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엔 독일 유학생이 전무하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들과 자연스럽게 합석한 전혜린은 술이건 담배건 사양하지 않았다. 분위기에 따라 적당하게 즐길 줄도 알았으니 프리마돈나 1호쯤 되지 않았나 싶다.
  그녀가 자주 입에 올렸던 단어는 ‘권태와 광기’였다. 마치 미친 사람처럼 치열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 그러나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권태로운 일상이었다. 그 둘의 한 가운데서 전혜린은 절망하고 또 절망했다.
  “격정적으로 산다는 것, 지치도록 일하고 노력하고 뜨겁게 산다는 것, 많이 사랑하고 산다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전혜린은 그의 에세이 「이 모든 괴로움 또다시」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그녀는 수면제를 먹어야 잠들 수 있었고 하루에 커피 15잔을 마셔야 할 만큼 그녀의 심장은 약해져 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가슴에 자리 잡은 ‘절대로 평범해서는 안 된다‘는 명제가 결혼해서 아이 낳고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사는 삶이 구속 아닌 구속으로 작용되지 않았나 싶다.
  그녀는 1965년 1월 10일 영면에 들어갔다.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각계각층의 물결이 쇄도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떠나갔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죽음이 되어버린 아아 전혜린!
 
  한국화단에 한 획을 그은 작가로 평가 받았던 최욱경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미대를 나온 후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가 크랜브룩 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김기창, 김흥수 화백에게서 그림을 배웠고 대담하고 화려한 색과 분망한 필치로 여성의 정체성을 녹여낸 독창적 작업세계를 구축했다. 인물의 터치에 있어서 갸름한 얼굴에 비해 몸이나 상체를 투박하게 처리해 외양과 내면의 정신세계, 동양과 서양, 빛과 어둠, 사랑과 증오 등 대립되는 양극의 두 세계를 포착하려 했다. 콜라주와 텍스트 등이 다양하게 삽입된 작품들은 당시 유행했던 탑아트, 추상미술 등 미술사조와 시사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또 먹으로 그린 그림이나 붓글씨가 곁들여진 작품에서는 단순한 정체성, 고민의 차원이 아닌 한국적인 것에서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하려했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한국 색채 추상의 선구자로 평가받은 최욱경은 살아 있을 당시엔 평단으로부터 외면 받은 불행한 화가였다. 그녀는 그러한 그늘을 지우려했음인지 과음하는 날이 많았다. 술에 취하면 그녀는 일인극의 연기자처럼 떠들어댔다.
  “혼자 가는 길은 외로운 거야. 길동무가 없으니까 말이야…”
  그러나 그녀의 말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혼자 내뱉는 넋두리에 불과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불꽃처럼 살아온 최욱경은 1985년 7월 과음 후,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렇듯 인생과 예술의 정점에 달해 있던 이들의 죽음은 큰 손실로 기억되고 있다. 이사도라던컨의 자유분방한 무용과 전혜린의 말릴 수 없는 지성의 몸부림과 최욱경의 첨단을 가는 붓질이 오늘까지 숙연하게 기억되는 이유이다. 나는 이제 당신들의 생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당신들이 남기고 간 예술과 죽음에 대해서만 말해보려 한다.
  당신들은 전설의 새처럼 둥지를 떠난 순간부터 가시나무를 찾아다니다가 길고 날카로운 가시에 몸을 날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장 아름다운 울음을 운 사람들이다. 춤과 문학과 미술의 연인이 되어 영원한 프리마돈나로 남으시라! 지상이 아닌 천상에서 자유의 혼이 되어 날으시라! 나는 앞서 부른 패티김의 노래를 마저 들으면서 이 글을 끝내려고 한다.

  그대 곁에 가고파도 날을 수 없는 이 몸을
  그대는 모르리라 가시나무새 전설을
  가시나무새 가시나무 새 날을 수 없네
  날을 수 없네 서글픈 가시나무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