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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이 사랑이라’는 성경구절이 조간신문속의 교회홍보물로 자리매김이 되고 있는지 오래다. 신문기사와 함께 눈에 익어버린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에 빠지고, 사랑에 눈멀고, 사랑을 고백하고, 사랑 때문에 울고, 사랑 때문에 웃고, 신은 인간을 사랑하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스승은 제자를 사랑하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고, 미술을 사랑하고, 문학을 사랑하고, 순수를 사랑하고, 남녀가 사랑하고……,
  그렇다. 나는 식전 아침부터 사랑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신문 속에는 1면부터 세계는 지금 다문화 공동체시대, 서울 핵정상회의에 남북 간의 화해, 국가와 국민과의 화합, 나라사랑 가족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글쓰기 대회 등 온통 사랑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말하는 경비아저씨와의 아침 인사를 주고받는 것을 시작으로 정보지보다 더 많은 사랑이라는 말을 부닥치는 어깨마다 접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없이 거죽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이라서, 아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할 겨를이 없이 내 안에 갇혀 사는 사람이라서, 그동안 단 한 번도 누구를 사랑해본 적이 없어서, 오늘도 사랑 때문에 철저하게 고통을 받고 있다. 
   늦은 밤 학교 문을 나선 나는 집으로 가지 않고 구의동에 위치해 있는 교회에 발을 들여놓는다. 반갑게 맞이한 목사님이 치유간증문을 써 달라고 부탁을 한다. 읽어보니, 귀하의 간증을 익명으로 하여 강의용으로 책자나 세미나에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예. 아니오. 지금의 느낌은 어떠한지 치유 받기전과 치유 받은 후의 차이를 써 주십시오. 어떤 부분을 치유 받았는지 써 주십시오. 치유 받고 나서의 결과와 결심을 써 주십시오. 다음에 치유 받고 싶은 부분을 써 주십시오. 등이다.
  고린도전서 13장을 살펴보면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는 구절이 있다. 젖도 떼지 못한, 걸음마도 걷지 못한, 하나님의 존재가치도 모르는 내가 무슨 자격으로 치유 간증문이라는 글을 쓸 수 있을지 난감하다. 하지만 햇볕 한 올 새어 들어오지 않은 지하에 위치하고 있는 열악한 환경의 교회에서 가끔씩 영혼을 갈고 닦는 신세를 지고 있으니 목사님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이 교회의 목사님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겨울이다. 해외선교지도사인 어느 선생님께서 한국어지도사 과정에 동참할 물질적, 정신적인 적임자를 찾았으니 만나 뵈어야 한다는 전화 저쪽의 들뜬 음성을 듣고 만나 뵌 분이다. 처음 교회를 찾았을 때는 대 실망이었다. 정신적인 것은 모르겠지만 오히려 내가 물질의 도움을 주어야 하는 입장에 놓여있어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한국어를 세계 으뜸어로 만들어 지구촌 문맹을 퇴치한다.’는 표어를 내걸어 놓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내가 갑자기 당황했던 것은 순간이었다.
  보일러 기능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교회에서 장시간 내가 걸어갈 길을 찾는다는 것은 참으로 고역이었다. 걸쩍지근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는 나를 붙들고 기도가 시작된 것은 그때였다. 나와 함께 온 선생님과 목사님은 오직 우리나라의 말하기, 글쓰기 교육을 위해 외롭고 지친 길을 걸어오면서, 깨지고, 터지고, 상처 입은 영혼을 위해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아니다. 저녁에 시작한 기도가 새벽이 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그 험난한 가시밭길을 20여년 혼자 외롭게 걸어온 나를 위해 울면서 기도해준 그들을 따라 나도 마음을 풀어놓고 울 수밖에 없었다.
  그 기도의 내용 중에는 자신을 위한 일신상의 문제는 단 한마디도 없었다. 오직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내가 교육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애닮은 마음, 자신들이 함께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교육으로 글로벌시대에 어떻게 동참해야하는지에 대하여 하나님께 여쭈어 보는 물음이었다. 또한 우리 가족의 행복에 대한 간절함이었다. 그 마음을 읽은 내가 두문불출(杜門不出-집에만 있고 바깥출입을 아니 함)하고 있는 남편을 위해 그들을 집으로 모시고 간 것은 당연지사였다.
  느닷없이 집으로 들이닥친 목사님을 남편은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가뜩이나 신경이 예민한 남편은 시도 때도 없이 초인종을 울려대며 ‘예수 믿으세요’ 라는 말에 질려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교육에 일조를 한답시고 가족 모두를 희생물로 만들어 놓고도 반성을 하지 못하고 설치는 나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은 남편이었다. 마누라 때문에 피해의식이 많은 남편의 마음을 여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목사님은 개의치 않고 남편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함께 기도를 하자는 남편은 거절을 했다. 하지만 집으로 찾아오신 손님의 정서를 끝내 뿌리치지 못했다. 하나님 이 가정에 당신이 함께 해 주시옵소서 등의 기도를 마쳤을 때, 남편은 당신들이 내 마음을 아느냐고 심하게 몰아붙이면서 내 마누라는 오직 교육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섬뜩하고 날카로운 말을 비수처럼 날렸다.
  그랬다. 나는 남편의 말대로 나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였다. 오직 교육밖에 모르는 나는 남편의 건강을 해친 장본인이었다. 아니었다. 나는 오직 아이들밖에, 남편밖에 모르는 바보천치였다.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교육을 벗 삼아, 울퉁불퉁 한 날들을 오래 참으며 오직 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양심가책의 상징인 주홍글씨로 가슴에 두 번 세 번 새겨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