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수 편집국장
순천송광사 천자암의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복장유물은 당시의 효심과 불교조각사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특히 380여 년 전의 조선사회의 효심과 조선후기 불교조각사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자료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 13일이었다. 필자는 조계산 자락에 자리한 천자암을 찾았다. 순천시내에서 현지까지는 상당한 거리였다. 눈이 쌓인 조계산길의 위험이 도사렸다. 하지만 문화재가 발견됐다는 희소식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천자암에 도착한 후, 곧바로 법웅 스님을 만났었다. 그는 전화내용과 일관된 설명을 했다. 어떻게 하면 이 소중한 문화재를 보존하고 활용할 것인가? 를 깊이 있는 생각과 연구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렇다. 천연기념물 제88호 쌍향수가 자라고 있고, 천자암의 주불인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그 속에서 나온 복장유물은 우리역사의 귀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복장유물에서 나온 조성발원문과 자초복자에 싸인 후령통, 그리고 ‘대방광불화엄경소’ 권50이 발견됐다는 것은 매우 소중한 문화재가 아닐 수 없다.
조성발원문은 백지문서로 1640년 8월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전라도 낙안군에 거주하는 박명길 등이 시주 한 것으로 밝혀져 당시의 사회상을 엿 볼 수 있었다. 즉, 어머니의 극락환생을 위해 극락교주 아미타불을 제작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당시 증명은 선택이고, 공양주는 인해이며, 불상을 제작한 화원은 석삼과 학한이다는 방증을 할 수 있는 사료였다.
천자암 법당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특징을 살펴볼까 한다. 법당건립 이전부터 주불로 봉안됐던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법당건립 후, 좌우에 관음과 지장보살이 같이 봉안됐다.
나무로 된 몸체와 무릎을 붙인 접목식으로, 신체에 비해 얼굴은 크다. 또 어깨는 좁은 편이며 얼굴을 앞으로 살짝 내민 채 숙여서 자세가 구부정하다. 왼쪽으로 약간 틀어진 머리에는 소라 모양의 나발이 촘촘하고 경계가 구분되지 않는 육계가 솟아있으며, 반원형의 중앙계주와 머리정수리에 상부가 둥근 원통형의 낮은 정상계주가 있다.
얼굴에는 가늘게 뜬 긴 눈, 콧대가 높고 긴 코 미소를 머금은 작은 입과 목에 삼도를 표현해 전형적인 조선후기 불상양식을 따르고 있다.
착의 형식은 양 어깨에 대의를 통견으로 입고, 오른쪽 어깨를 덮은 대의 자락이 팔꿈치와 복부를 지나 왼 쪽 어깨로 넘어간다. 또 반대쪽 대의도 왼쪽 어깨를 완전히 덮고 수직으로 내려와 복부에 오른쪽 어깨에서 내려온 대의자락 안으로 겹친 후, 나머지 대의자락이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늘어져 있다.
하반신은 덮은 대의자락이 팔자 형으로 넓게 펼쳐지고 좌우로 세 가닥의 주름이 펼쳐져 있다. 등에는 앞에서 넘어온 대의자락이 엉덩이까지 길게 늘어지고,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로 넓게 펼쳐진 대의자락이 사선을 그리며 접혀있다. 왼쪽 팔뚝을 따라 넓은 대의자락이 늘어져 끝부분이 인자형으로 펼쳐져 있다. 가슴을 덮은 승각기는 대각선으로 간략히 접혀 있다. 수인은 양손을 모두 무릎 위에 엄지와 중지를 둥글게 맞댄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양손은 따로 만들어 손목에 끼워 넣었다. 불신과 바닥은 별개의 나무로 붙이고 상단이 넓고 하단이 좁은 바닥 중앙 밑에 복장구가 뚫려 있다. 따라서 불상 내에서는 조성발원문, 불교경전과 자초복자에 싸인 후령통이 발견됐었다.
“대방광불화엄경소”는 송나라의 정원(1011~ 1088) 기존의 주석서를 편찬해 120권으로 엮은 것이다. 이 불서는 고려 때 대각국사 의천의 요청으로 수입한 2,900여 장의 판본이 국내에서 유통된 이후,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에 왕실주도로 판각했다. 게다가 송광사에서는 1634~ 1635년에 전질을 간행했고, 그 가운데 권50이 불상 내에서 발견된 것이다. 마지막 쪽에 간기가 남아있어 1634년에 성현, 각성, 희옥, 경은 등이 송광사에서 간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사료가 될 수 있는 자료들이 발견되어 당시의 사회성은 불심과 함께 지극한 효심이 담겨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불심과 효심이 짙은 조선시대의 사회성에서 변화된 오늘날의 사회성까지도 알아 볼 수 있는 척도가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도 1640년 송광사 천자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머리와 몸이 왼쪽으로 살짝 틀어진 상태로, 타원형 얼굴에 엄숙한 상호, 두껍고 간결한 옷 주름을 강조한 법의, 신체비례 등이 17세기 중반 불상들과 비슷하다. 특히 상호, 착의나 주름의 표현, 두 손을 모두 무릎에 두고 결한 수인, 낮고 넓은 무릎에 짧은 상반신 등이 학한이 제작한 선암사 운수암 목조관음보살좌상과 유사하다. 따라서 천자암 목조여래좌상은 1640년대 응원과 인균계보의 조각승이 만든 불상양식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가치가 있다.
어쩌면 이번에 발견된 천자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17세기 중엽에 활약한 응원과 인균의 계보에 속한 조각승 석삼의 활동과 불상양식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기년명 불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조선후기 불교조각사 연구의 기준 작으로 활용할 수 있어 도 유형문화재로 지정,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
최선일 문화재청 문화재 감정위원과 전문가들은 이번 “천자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복장유물은 당시의 불심과 효심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사료임에 틀림없다.”며 “체계적인 보존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천연기념물 제88호인 쌍향수가 있는 순천 송광사 산내 천자암은 우리지역의 살아있는 역사책이 아닐 수 없다. 법당에서 발견된 주불과 복장유물은 물론 각종 문화재가 현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한전, 산신각, 법왕루, 요사 등 문화재 등이 수두룩하다.
아무튼 불심과 효심이 젖어든 조계산자락에 위치한 천자암을 가꾸는데 최선을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천연기념물 제88호인 쌍향수는 물론이고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복장유물 등 각종 문화재를 관람하려는 관광수요가 증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갖고 가꾸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저작권자©참살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21-01-18 09:17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