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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수 편집국장
12월 초입이다. 눈이 내릴 것만 같다. 이런 날은 순천만 습지를 둘러보면서 옛이야기를 더듬어 보는 것도 좋을 성 싶다.
하얀 눈발이 몰아치는 날이었다, 순천시내 중앙동 옆 골목길거리에서 군밤과 군고마를 굽고 있는 아저씨의 따뜻한 말씨가 생각난다. “선생님! 이렇게 눈이 내리는데 어디를 가십니까? 허기와 추위를 달랠 겸 군고구마 하나 드시고 가십시오. 그리고 눈 내리는 날은 빠른 귀가를 해야 사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습니다.”라고 말하던 군고구마 아저씨의 따뜻한 말이 새삼스레 그리워진다.
당시, 필자와 고 송수권 시인은 호형호제의 관계로 글을 쓰는 작업에 몰두했었다. 순천대학교 문창과 강의를 마친 송 교수는 필자에게 순천만 갈밭구경을 가자는 제의를 해왔다. 전화를 받은 즉시 승용차시동을 걸고 순대 문창과 송 교수 연구실을 찾았다. 송 교수는 바바리를 걸쳐 입고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필자가 도착하자 곧바로 중앙동에서 군고구마를 굽고 있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아마도 추운 겨울에는 군고구마와 군밤이 최고의 군것질이 아니었나 싶다.
순간, 농부의 삶과 서민들의 삶이 펼쳐졌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겨울나기를 해야 하는 그들의 삶은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이 더 많을 것이다.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면서도 가정의 안위를 지키려는 가장의 고뇌시간은 처절했다. 특히 직장이 없거나 직장에서 밀려난 가장들의 삶은 죽기보다도 힘든 삶을 펼쳐야 했다. 가족들의 끼니걱정은 물론 전기세와 수도세 등 각종 밀린 세금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뒤늦게 알았던 사실이지만 중앙동 군고구마장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송 교수는 말했다. 하루는 군고구마장수의 초등학생 딸아이가 꽁꽁 언 손을 호호불면서 “아빠! 집에 전기가 끊겼어요. 엄마가 피를 토해요. 병원에 가야한데요. 엄마가 죽을 것만 같아요. 빨리 집에 갑시다.”라고 울먹이는 딸아이를 보았다고 말이다.
그랬다. 군고구마장수는 직장에서 밀려난 이후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 힘을 쏟았다. 하지만 세상살이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별의별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었지만 가족의 안위를 지키기엔 역부족이었다. 마지막으로 택한 가족생계유지의 길은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군고구마장수였다. 그것 역시 녹록치 않았었다. 그래도 올 겨울만은 겨울만은 넘겨야지, 굳은 결심으로 하루하루를 땜질하고 있었다.
그러한 사연을 알고 난후, 송 교수와 필자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로 그곳을 찾았었다. 갈 때 마다 훈김이 모락모락 솟아나고 따스한 말씨를 주고받았었다.
“선생님!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것 좀 드셔보세요. 방금 구운 토란과 감자입니다. 식으면 맛이 없어요. 추운 날씨에는 따뜻한 게 최고예요.”군고구마 아저씨의 말씨는 온화하면서도 낮았었다.
사실 그는 우리가 그곳을 찾는 날만을 기다린듯했다. 군고구마와 군밤을 팔기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마음을 헤아려 주었기 때문이다. 가족의 안부를 물으면서 험난한 현 사회를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점들을 주고받았기에 더욱 그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그와 우리사이는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그는 아내가 폐병으로 사망한 후, 어린 딸을 데리고 순천을 떠났다. 강원도가 고향인 그는 처갓집이 있는 전라도 순천 땅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려 했지만 그것마저도 접어야 했다.
한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은 아쉬움이 남는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송년의 밤은 더욱 그립고 아쉬움이 앞선다. 미처 하지 못한 일들을 챙겨보고, 새롭게 맞이할 신년의 계획을 세워보지만 마음먹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우리네 삶인 것 같다.
이러한 마음들이 움직이고 있었을까? 순천의 12월은 성금과 함께 이웃사랑이 꽃을 피우고 있다. 이정은 순천홍보대사가 해마다 보내온 성금을 비롯해 곳곳에서 보내온 성금들이 소외이웃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순천만 갈밭을 쓰는 갈목비마냥 서민의 삶을 어루만지며 쓸어 담고 달래주는 위정자는 없을까? 아프고 쓰라린 서민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위정자는 없을까?
갈목비가 갈밭을 쓸고 있다
순천만 해수로 따라 널브러진
이야기조각 쓸어 담은 갈목비
열세편의 절절한 돗자리노래가
솔 섬을 휘돌아 용산을 깨운다
시의 표준어는 전라도 사투리고
시의 운율은 판소리 가락이라며
투덜대고 한숨짓던 샛강 같은 푸념들이
역겨운 향토색깔로 서울거리 활보하던 날
먹물번진 손가락 총, 수없이 맞았었던 그날
장목비 마다하고 갈목비 붙잡았던 세석평전
먹구름 한 점 늘였다 당겼다 하늘 바라보고
갈대밭 갯길 쓸었다 담았다 허허로움 달랬다
평사야
시가 뭣이더냐
함께하지 못한 시간이 내내 아쉽다
갈밭 쓰는 갈목비마냥
세석의 돈오돈수로 육자배기를 쓸어라
평전의 두루마기로 판소리가락을 쓸어라
(필자의 “갈밭 쓰는 갈목비”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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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4 07:31 송고
2019-12-04 07:48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