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편집국장

세월비가 내리는 설악은 만추의 흔적이다. 오색단풍이 물들어 산야 모두가 황금빛과 붉은 빛을 토하고 있다. 익어가는 청춘을 즐기는 사람들, 그들의 백두대간탐방기와 느낌을 나열하고 싶다.

그들은 지난 26일부터 캠핑카(카운티)여행을 떠났다. 만추의 삶을 그려보고 단풍의 아름다움과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정원의 도시 순천을 떠난 그들은 남해안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지난시간을 회상했다. 각 지방의 음식이야기부터 풍습까지 시간가는 줄 몰랐다. 어쩌면 우정시간을 비롯한 부부간의 수다를 떨고 있는지도 모른다.

느림의 철학을 느끼고 있는 세 부부는 60년 지기다. 중학교 1학년 때 만나 칠순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다툼이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한 짙은 우정으로 지금까지 필연으로 이어온 돈독한 친구사이다. 특히 그들은 상급학교진학과 선택과마저도 동일했다. 아니다. 사회 모임까지도 함께한 60년 지기다.

우정이 깊어서인지 부인들 사이도 돈독하다. 언니와 동생으로 호칭하고 그 속에서 묻어나오는 속정은 자매의 정보다도 짙다. 사실 남자들의 우정관계도 내조자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단절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세 부부사이는 끈적끈적한 속정을 주고받는다.

그들은 27일 오후 5시, 설악대포 항에 도착했다. 일출봉 횟집에서 스페샬 회에다 한 잔의 술을 마셨다. 즐겁고 상쾌한 기분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서도 설악이야기와 삶의 애환이야기는 끊어지지 않았었다.

새날이 밝았다. 어제 밤부터 내린 비가 그치지 않는다. 미시령 옛길을 넘어야하는 그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마음먹고 나선 백두대간 탐방을 멈출 순 없었다. 강행군을 했다.

“와! 오머! 저기좀 봐봐! ”초입부터 김탄사다. 붉은 빛을 토하는 단풍잎과 황금물결을 이루는 활엽수림이 장관이다.

미시령 정상에서 휴식을 취한 후, 백담사로 향했다. 한계령 비좁은 산길을  따라 오르내리는 백담사 길은 험난했다. 약 7키로 구간인데도 오가는 차량이 비켜갈 수 없는 편도다. 차량교행장소도 몇 군데 뿐이다.

험난한 백담계곡은 청아했다. 기암괴석 사이로 맑은 물이 구비쳐 흘렀다. 더욱이 수많은 세월로 닳고 닳은 몽돌과 조약돌들이 돌밭을 이루고 있었다. 일부 탐방객들은 돌밭에서 돌탑을 쌓는데 열중이다.

무엇보다도 만해의 시 “님의 침묵”이 새겨진 시비는 민족애를 상기시켰다. 계곡 옆에 세워진 시비에서 분노를 삭히며 당시의 상처를 헤아려 보았었다. 특히 시인이면서 독립 운동가였던 한용운의 생애를 더듬어 보고 일제 강점기를 떠올려도 보았다. 일제의 잔악무도했었던 역사를 지울 수는 없는지? 민족애는 다시금 끓어오르고 힘을 잃은 민족사를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역시 한계령은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기풍 있는 암벽과 산세의 흐름은 범상했다. 한반도 남쪽에서는 백두대간의 첫 번째 설악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세월비가 내리는 설악은 우정의 끈을 더욱 조여 맸다. 더욱이 연소 우림 평사의 아내들은 자신보다도 남을 위한 생활에 익숙한 편이다. 덕담과 함께 베푸는 일상은 미, 사, 고다.(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입에 달고 사는 지도 모른다. 게다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도 커, 늘 사랑이 가득하다.

어쩌면 우리들의 일상에서 미, 사, 고와 함께 남을 배려하는 삶을 영위한다면 밝은 사회를 조성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그들의 삶은 배려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싶다. 자신들의 편리함보다 상대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황혼은 세월비 내리는 설악에서 곱디곱게 물들고 있다. 오색단풍으로 물든 설악의 풍경과 붉게 물든 저녁노을마냥 붉게 타고 있는 것이다.

세월비 속에서도
설악산은 붉게 타고 있다

카운티에 몸을 맡긴
연소 우림 평사 부부는

미시령을 넘다가

감탄사를 연발로 쏘고 있다

조금 늦었다는 말
지금도 왕성하다는 말
그 말 엿 들었는지

늦가을 찬비는 슬쩍슬쩍
타는 불길을 끄고 있다

소방수다

소방수가 필요 없는데

이보오!
가을 찬비님!
그냥 타게 두게나
아직은
우리의 젊음도 타고
설악도 타고 있으니
기척 없이 오고가는

세월비는 멈춰 주게나

(필자의 ‘세월비 내리는 설악’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