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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슬부슬 봄비가 내리고 있다/도심거리는 차량행렬로 질퍽거리고/한그루 해당화는/길모퉁이서 비를 맞는다/중국소설의 주인공처럼/자식을 위해 대도가 되고/자식을 위해 목숨을 바친/순수하고 숭고한 부성애가/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채로/지난밤 이브자리가 그립다/희미한 기억이 되살아나고/잊혀져가는 부성애가 싹트는/비 내리는 도심거리/지금 그곳에는/따라다녔던 그림자도 없고/닭장 속 같은 아파트 숲만이/빼앗겨버린 하늘뜨락 그리며/해당화 한그루 비를 맞고 있다(필자의 비맞은 해당화 전문)

家長의 하루는 고달프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사이가 없다.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 돈을 벌기위한 하루가 길기만 하다. 파김치처럼 축 처진 어깨를 애써 펴 보이며 밤늦게 귀가 해 야 하는 가장의 인생, 과연 숙명적일까? 많은 생각이 뒤 따른다.

가장은 언제나 힘이 넘친 집안의 대들보다. 날이면 날마다 식구들 앞에서 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힘 있는 가장이어야 한다. 그래야 온 집안이 걱정거리가 없고 건강한 가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가장이 되면 온갖 근심걱정을 하면서도 집안에서 만큼은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스럽게 행동 한다.

家長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한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꾸려 가는 사람이라고 풀이 했다. 즉, 분가를 하면서 가장의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된다. 명색이 가장이 되어 가지고 무작정 일손을 놓고 무책임하게 가정을 이끌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의 길은 험난하고 슬프다. 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돈 버는 일부터 시작해서 생계를 꾸려나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해결한다는 것은 험난하다. 또한 외롭고 슬프다. 가장은 아슬아슬한 인생의 절벽 길을 타고 있는 숙명적길을 가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한 예로 가장인 기러기 아빠의 애틋한 사연을 열거해 본다.

“살인적인 사교육비와 경쟁 위주의 교육 풍토에서 자녀들을 구하겠다”며 많은 부모들이 ‘조기유학’을, 자발적 ‘이산가족’의 길을 택합니다. 가족은 함께 있을 때 진정한 가족 아닌가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부부는 더더욱 그럴 테고요. 오지 않은 자녀의 미래를 위해 부모의 현재 삶을 저당 잡히는 건 온당한 걸까요? 혹시 자식 교육은 핑계고, 소원해진 부부관계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기 위해 떠나고 계신 건 아닌가요? 라는 하소연이다.

실제로 김호(가명·50)씨가 아침 회의를 끝마치고 자리에 앉았을 때, 미국에서 조기유학 중인 큰아들 나라(가명·17)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사춘기에 접어든 뒤로 아빠랑 말 섞는 것도 귀찮아하던 녀석이 어쩐 일로 전화를 다 했나 싶었는데, 뜬금없이 제 엄마 얘기다. “왜, 엄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니?” 수화기 너머 아들이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머뭇거리는 게 느껴졌다.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다. ‘운전 중이다’ ‘전화 신호가 잘 안 잡힌다’며 자주 전화를 끊었던 아내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김씨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아들에게 물었다. “엄마 옆에 있니?” 미국은 지금 밤 9시, 당연히 집에 있어야 할 아내는 부재중이었다. “친구 만난다고 나가서 여태 안 들어왔어.”

그제야 입을 연 아들이 김씨의 질문에 하나둘 조심스럽게 답을 하기 시작했다. 띄엄띄엄, 아들이 한 말들을 이어붙이면, 아내는 “최근 밤늦게까지 외출이 잦고” 만나는 사람 중엔 “남자들도 꽤 있으며” 그중에는 아들도 “3번 가량 함께 만난 사람”도 있다는 얘기였다. 곧 아내가 바람이 났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기러기 엄마들의 불륜이 흔하디흔한 얘기였지만 ‘내 일이 될 줄이야’. 눈앞이 아득해졌다.

어린애였던 아이들은 이제 청소년이 됐다. 한국에 나왔다가도 개학 준비다 뭐다 해서 금세 미국으로 돌아갔다. 아이들에겐 미국 집이 ‘우리 집’이었다. 이젠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으면 좋으련만 약속했던 기간이 지났는데도 아내는 귀국을 ‘거부’하고 있다. “대학 들어갈 때까지만…”이란다. “내 생각은 안 해주나?” 답답하고 섭섭해도 “애들을 위해서”라는데 더 할 말이 없다. “가장의 숙명”이라고 생각하며 이때껏 참아왔다.

기러기아빠의 하소연처럼 현 사회는 비참하고 냉혹하게 흘러가고 있다. 아마도 대다수의 가장은 쓸쓸하고 슬픈 숙명적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