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 모든 사물을 지배하면서 살아간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무생물에서부터 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물을 관장하면서 직간접적인 정을 맺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가슴 속으로 생각하는 마음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두뇌를 지녔기 때문인 것이다.

특히 인간의 삶 속에서 정이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비근한 예로 길가에 나뒹구는 하찮은 돌멩이라도 자주 보면서 귀이 여기면 정이 붙는다. 반면 값비싼 보석이라도 눈밖에 두고 관심을 갖지 않으면 정이 들지 않는다.

옛말에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 진다’고 했다. 어떤 사물이든지, 자주 보고 서로가 부대끼면서 살아갈 때 정은 든다고 했다.

무엇이 정이고 무엇이 삶이더냐를 굳이 따질 필요도 없다. 삶과 정은 우리 인간사에서 떼 자도 뗄 수없는 부득불 관계를 지녔다. 곧 삶이 정이고, 정이 삶으로, 정과 삶을 반죽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여정이기 때문이다.

문득, 전남 보성군 노동면 명봉리에서 태어난 문정희 시인의 시 한 편이 떠오른다. 인용해 볼까 한다.

빛은 해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그대 손을 잡으면

거기 따스한 체온이 있듯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사랑의 빛을 안다

마음속에 하늘이 있고

마음속에 해보다 더 눈부시고 따스한 사랑이 있어

어둡고 추운 골목에는

밤마다 어김없이 등불이 피어난다.(체온의 시 전문)

참으로 정과 삶이 잘 버물어진 사랑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사람의 내면에는 언제나 온유한 정이 꿈틀대고 있다. 이 시에서 사랑을 정으로 바꾸어 보자. 우리의 일상적인 그리고 생활하는 감정으로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어둠속의 빛” “추움 속의 따사로움”이라고 할까? 그 사랑이 마음속에 깃들어 있을 때, 그것들을 정이라고 부르는데 길들어져 왔다 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정은 마음의 훈기이며 빛이다. 밝음이다. 인간의 인간다움은 곧 사람냄새가 나는 그 자체로 정이 꿈틀대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마음의 따사로움과 밝음이 곧 한국인의 정이고 정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일까? 한국인 정의 상징 내지는 기호로 삼을 만한 모두가 정의 속성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따스한 손길, 훈훈한 입김, 다사로운 가슴, 뜨거운 피 등 인체 또는 인간 생리의 일부다. 또 구들막, 아랫목, 아궁이, 화로, 모닥불, 숯불 등의 열관리 기구나 열은 적절한 정의 상징물이다.

이 밖에도 따뜻한 정의 상징물인 국이나 찌개 등의 먹거리와 잠자리 그리고 솜누비와 같은 옷치장 등이 있다. 게다가 후각으로는 황토 흙 내음, 메주 뜨는 내음, 저녁밥 짓는 연기의 불 내음, 술 익는 내음, 두엄 익는 냄새 등이다.

그런가 하면 청각으로는 여치나 귀뚜라미 소리, 개울물 소리, 문풍지 소리, 까치의 울음, 참새의 지절거림 등도 한 몫을 거들고 있다.

이처럼 한국적인 풍토가 지닌 물정(物情), 곧 사물의 정이라고 부를 만한 성질의 것들이기에 우리의 고향, 그 고샅이며 고향집 그리고 안방, 들도 정을 위한 공간상징이다. 어쩌면 이 모든 상징들은 한국인과 정의 교감을 나누어 온 것들이다.

을미년이 가고 병신년이 왔다. 날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정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자. 우리의 끈적끈적한 정을 곳곳에 맺으면서 사람 내음 풍기면서 살아가자. 그렇다고 감언이설로 난무한 정치판에 정을 맺고 싶진 않다. 한국의 위정자들의 정은 그들대로 따로 있을 것이다. 국민과 국가는 안중에도 없는 한국판 위정자들은 정과 삶에 대한 것은 동떨어진 이야기로 들릴 것으로 믿는다.

혹, 감정을 내포할 수 있는 충동적인 정일 수도 있다. 의외의 행동, 순간적이고 발작적인 행동까지도 유발할 수 있다. 그런 행동이 정의 표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에 떠밀리지 말아야 한다. 그 감정에 치우쳐서 폭발한다거나 사고를 유발해서도 안 된다. 정은 감정일 수도 있는 만큼, 의식일 수도 있다. 그러한 감정에 휘말리지 말고 정서적이고 윤리관이 깃든 정을 맺어보자. 아무튼 정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