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괄편집_박인화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가 없다. 숙명이든 운명이든 만나야 한다. 만남 중에서도 기념비를 세울 정도로 영원무궁토록 잊지 못할 가치가 있는 기념비적(紀念碑的)만남이 있어야 한다. 비록 소설이지만 이문열이 쓴 <금시조>는 만남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이황의 학통을 이어받은 영남의 후예 석담과 그의 제자 고죽은 소설속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애증과 갈증을 겸비한 선비정신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금시조>는 퇴계 이황의 영남학통을 이어받아서 스승이 된 석담과 그 제자의 만남이다. 죽음을 앞둔 서예가 고죽은 유년의 회상에 잠긴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개가하자 숙부의 집에서 자란다. 열 살 되던 해 숙부는 상하이로 망명을 떠나면서 석담 선생의 집에 고죽을 맡긴다. 하지만 석담은 고죽을 한사코 제자로 삼으려 하지 않는다. 가까스로 사제관계를 맺지만 둘 사이에는 숙명의 거리가 있다. 고죽은 스승에 대한 애증의 갈등 속에서 견디고 견디다가 스물일곱째 되는 해에 집을 나선다. 대문 밖에서 학문을 익힌 고죽은 약간의 성취감에 들떠 돌아오지만 스승의 반응은 빙월(氷月)처럼 차갑다. 2년 뒤에야 겨우 용서를 받고 제자가 된다. 하지만,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난 스승과 제자는 예(藝)와 도(道)에 관하여 논쟁이 뜨겁다.
두 번째는 공자와 노자의 만남이다. 공자는 BC 551년에 중국 산동성에서 출생했다. 춘추 말기 사람으로 주나라의 봉건질서가 쇠퇴하여 사회적 혼란이 심해지자, 선과 행의 근원이 된 인(仁)을 기본이념으로 삼았다. 그는 인을 구성하는 여러 덕목 중에서 사랑을 으뜸으로 가르쳤다. 사랑은 부모에게 미치면 효가 되고, 형제에게 미치면 우(友)가 되며, 남의 부모에게 미치면 제가 되고, 나라에 미치면 충이 된다고 가르쳤고, 부모와 연장자를 공손하게 모시는 효제(孝悌)를 실천하라고 했다. 47세가 된 공자는 30년 연상인 노자를 만나러 주(周)나라로 향했다. 그들은 <금시조>에서처럼 예와 도를 논했다. 현실 세계에서 도를 건설하려 한 공자와 무위(無爲)의 도를 주창한 두 사람의 논쟁은 정중하면서도 치열했다.
세 번째는 퇴계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만남이다. 1558년 58세의 퇴계를 32세의 고봉이 찾아가 사상적 도전장을 내밀었다. 만물의 존재가 이(理)와 기(氣) 두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퇴계 이황과 만물의 존재는 이와 기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 고봉 기대승이었다. 둘은 퇴계가 타계할 때까지 13년간 우주 만물의 근원이 된 태극(太極)과 성리학의 철학적 개념인 사단칠정(四端七情)론을 두고 120여 통의 서신을 주고받으며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 "고봉 기대승이 삼가 절하고 적습니다. 바른 자세의 선비가 무엇입니까?”하고 편지를 띄우면 ”퇴계 이황은 머리 숙여 답변합니다. 자신을 깨끗이 하며 옳은 일만 하면 됩니다.” 하고 답변을 했다.
그들이 주고 받은 여러 편지 중에서도 퇴계 이황이 답변한 가장 인상깊은 구절은 ”지난번에 올린 글에서 거북한 곳이 있다고 하셨으니 이미 옳지 못한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학자가 도리를 강론할 때에는 구차하게 남의 의견에 뇌동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입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깨우쳐 주시길 바란 것이지, 제 개인적인 생각을 내세워 남의 허물을 들춰내고 배척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라고 고봉에게 전한 부분이다.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은 25년이라는 나이차를 뛰어넘어 스승과 제자처럼 주고받은 사연들을 <퇴계고봉왕복서(退溪高峯往復書)>등으로 엮어 후진양성에 힘썼다.
영남의 성리학을 주도한 퇴계 이황과 호남의 성리학을 주도한 고봉 기대승은 성리학으로 쌍벽을 이루는 대가들이다. 공자와 노자는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은 세계를 움직인 중용의 고수들이다. <금시조>는 도와 예를 논쟁한 스승과 제자를 내세워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우리는 누구를 만나야 정중하면서도 치열한 기념비적 논쟁을 하며, 자자손손 선비정신을 되물려줄 수 있을까?

공자와 노자

석담과 고죽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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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30 12:53 송고
2013-07-30 17:49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