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편집국장
달큼하면서도 싸한 향이 코를 자극한다. 인삼에 함유된 사포닌향인 듯싶다. 순천낙안 전통주에서 물씬 풍겨오는 향과 맛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여유일 것이다. 특히나 더덕과 찹쌀을 원료로 한 사삼주(沙蔘酒)를 마시는 애주가들은 그 여유로움에 빠져든다고 한다. 아마도 낙안평야의 여유가 전통주에 녹아들었지 않았는가 싶다.
“한 잔을 마시면 금전산이 다가오고, 두 잔을 마시면 낙안읍성 초가지붕이 인사를 한다. 석 잔을 마시면 성곽이 똬리를 틀고, 넉 잔을 마시면 돌담길이 굽어온다. 다섯 잔을 들이키면 동헌마루가 흔들거리고, 여섯 잔을 들이키면 객사마당이 춤을 춘다. 일곱 잔을 들이키면 고수가 북을 치고, 여덟 잔을 들이키면 명창이 소리를 한다. 아홉 잔을 들고나면 근심걱정 사라지고, 열 잔을 들고나면 여유가 생겨난다.” 이같이 낙안전통주의 맛과 멋은 흥과 가락이 어우러져 여유까지 동반하고 있다.
겨울비가 내리는 날이다. 애주가들은 이런 날일수록 낙안막걸리를 떠올린다. 그들은 우리네 농주인 낙안막걸리를 마음 놓고 마셔댄다. 낙안의 기질이 담겨있고 낙안평야의 여유가 담겨있는 막걸리는 애주가들의 활력소나 다름없다. 따라서 사삼주는 사삼주대로, 막걸리는 막걸리대로 낙안평야의 여유를 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낙안막걸리는 가장 오래된 우리의 전통술로 조상들의 삶과 애환이 담겨있는 농주(農酒)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일을 하다가 목이 마르거나 배가 출출할 때 그냥 그대로 논밭에서 둘러 마시는 술이기에 더욱 사랑스럽다. 그래서 농사일을 돕는 술이 아닐까 싶다. 전통주의 숨은 뜻은 발효와 숙성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여유를 담는다. 더욱이 막걸리는 사람에게 유익한 효소 균은 물론 각종 영양분을 담고 있는 기호식품이다. 제조과정에서도 낙안막걸리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협동심이 배있다. 또 토굴 속에서 발효를 시키고 숙성을 시키면서 맛과 멋이 버물어지고 여유를 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순천시 낙안면 신전리“화목양조장”은 토굴 양조장이다. 낙안막걸리는 쌀과 누룩 이외에 그 무엇도 첨가하지 않은 무첨가 막걸리다. 막걸리의 대표주자로 도시의 막걸리와는 다르게 맛이 달지 않고 기교가 섞여있지 않다. 게다가 고유의 맛과 향이 그대로 살아있는 게 특징이다.
무엇보다도 낙안의 사삼주는 우리나라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전통주다. 그 사삼주의 내력을 살펴볼까 한다.
사삼주는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낙안민속마을 인근 낙안민속양조장에서 빚어내는 전통주다. 이 술은 달콤한 향이 코를 자극함은 물론 마시면 약간 씁쓰레한 게 입안을 개운하게 한다. 그 원인은 찹쌀과 더덕을 원료로 숙성하는 과정에서 독특한 향이 우러나고 더덕의 씁쓰레한 맛이 술에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낙안인근의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더덕은 사포닌성분이 다량으로 함유돼 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사람들은 낙안의 더덕을 인삼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긴다. 人蔘의 형태와 성분이 비슷하게 들어있는 더덕, 그 더덕 중에서도 낙안더덕으로 빚은 사삼주는 여유를 담고 있다.
더덕(사삼)은 인삼의 효능인 강장은 물론, 거담이나 위장을 튼튼히 해주는 약리성분을 갖고 있어 호흡기가 약하거나 위장이나 간이 부실한 사람에게 치료제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낙안의 사삼주는 정부로부터 전통 민속주로 지정받아 본격 시판한 것은 1990년이라고 한다.
사삼주를 만들고 있는 박씨에 따르면 지난 88년부터 낙안민속마을에 걸맞은 전통주를 개발하기 위해 관련 문헌을 뒤져 시제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순천대학교 김용두 교수팀에 의뢰, 충분한 시험과정을 거쳤으며, 지봉 이수광이 펴낸 승평(옛 순천지명)지에 낙안사삼주의 맛과 향취에 대한 사료를 참고했다고 한다.
고을 원님들이 즐겨 마셨다는 낙안 사삼주는 깔끔하면서도 뒷맛이 개운하다. 주로 순천의 양반과 풍류객들이 기품 있는 사삼주를 가양주로 빚어 마셨다고 한다. 현재 낙안에서 만들어지는 사삼주는 박씨의 부인 허효현씨의 손끝에서 나온다. 허씨의 사삼주 제조 비법은 알맞은 환경과 기온이다. 적당한 온도로 숙성시키고 알맞은 환경에서 발효시켜야 여유가 담긴 사삼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게다가 순천 낙안 사삼주는 땅이 비옥하기로 이름난 낙안 들녘에서 재배한 토종찹쌀과 질 좋은 더덕 그리고 청정지하수가 어우러진 전통주다.
토굴 속에서 빚어지고 발효와 숙성과정을 거친 낙안막걸리는 그 자체가 여유다. 게다가 낙안만이 지니고 있는 더덕과 청정지하수 그리고 각종재료는 여백과 여유를 담고 있는 마음의 효소다. 술을 빚는 사람도, 술을 마시는 사람도, 모두가 느긋하게 여백을 즐긴다. 아니다. 쉼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휴식을 취하게 하고, 바쁘게 움직이는 현대인들에게 여유를 갖게 하는 전통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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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6 14:04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