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편집국장
낙안읍성을 축조하고 왜구를 물리친 잊혀져간 영웅, 김빈길 장군을 알고 있는지요? 낙안팔경의 망해당기를 노래한 김빈길 장군을 아시는지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낙안의 임경업 장군은 알고 있어도 김빈길 장군은 모르고 있다. 특히 금강모종, 백이청풍, 보람명월, 옥산취죽영, 징산숙로 평지부사, 단교어화, 원포귀범의 낙안팔경은 알고 있어도 이를 한시로 지은 김빈길 장군은 모르고 있는 듯하다.
잠시, 낙안읍성과 연관된 낙안지역의 이야기를 해볼까 싶다. 예부터 낙안지역은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금전산, 백이산, 고동산, 오봉산, 제산산, 존재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지고 넓은 낙안평야가 펼쳐져 있는 곳이다. 더군다나 순천만과 고흥만의 해안과 접하고 있어 수산물과 농산물이 흔한 지역으로 물질문화가 풍성한 지역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 때는 낙안 군으로도 행정구역이 편재됐었는지도 모른다. 조선 중기의 역사에는 낙안 군으로 편재돼 있었다. 임경업 장군이 군수로 활동하면서 지금의 낙안읍성이 석성으로 축조됐었다고 한다. 그 업적으로 임경업 장군의 비가 읍성 내에 세워져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그 이전으로 거스른다면 원초적인 토성을 쌓았던 김빈길 장군의 업적이 단연코 서술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빈길 장군의 업적과 공헌은 사라지고 잊혀 져 가고 있다. 분명코 역사적인 인물임에는 틀림없는데도 그를 조명하는 역사학자나 후손들의 역할이 희미했었기 때문이다. 뒤늦게나마 후손들과 식자층들의 입김들이 모아져 김빈길 장군의 동상이 세워지고 창극 등이 펼쳐지게 됐다.
양혜공 김빈길 장군의 업적과 공헌을 살펴보자. 그는 태조(太祖) 때의 무인으로 낙안(樂安) 출신이다. 성품이 충직했으며 근검했다. 1394년(태조 3) 전라수군첨절제사로 있을 때 만호 김윤검, 김문발 등과 함께 왜적의 배 3척을 섬멸하는 등의 공적을 세웠다. 그러나 같은 해 투항해 온 왜인이 도망간 일로 인해 최운해, 이구철, 김영렬 등과 함께 국문을 당하였는데 이때 우정승 김사형과 의성군 남은이 그 죄를 감해 주기를 청하여 얼마 후 유배되고, 모두 수군에 다시 편입됐다.
이후, 1397년 왜구와 맞서기 위해 현재의 낙안읍성을 흙으로 쌓았다. 1405년(태종 5)에 전라도수군도절제사가 되었을 때에는 도내의 요해처에다 만호를 두고, 병선을 나누어 정박시켰다. 또 여러 섬에 둔전을 설치하고 군비를 비축하게 하여 주는 것만을 바라는 폐단을 없앴다. 게다가 그는 평소 아랫사람을 대함에도 한 치의 소홀함도 없었다.
그가 수군절제사로 있을 때다. 항상 사졸들과 더불어 감고(甘苦)를 같이했다. 또 도적을 쫓아 행선할 때에도 분연히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아 군사들이 모두 사력을 다하였으므로 가는 곳마다 승리했다. 상을 받으면 항상 군사의 공이 있는 자에게 나누어 주었으므로 비록 외진 백성들이라도 그의 은혜를 입었다.
이 밖에도 그는 문필에 전념했었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관직을 버리고 백이산 부근에 망해당이라는 정사를 짓고 노후를 보내면서 낙안군 지역의 아름다움을 노래했었다. 낙안팔경인 망해당기를 직접 지은 장본인이다. 지금까지 내려오는 가장 유명한 한시다.
김빈길 장군의 고향은 낙안면 옥산마을이다. 부근의 생가나 백이산 자락의 정자인 망해당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고작 낙안향교내 충민사의 영정 한 장이 전부였다. 특히, 그가 쌓았던 낙안읍성 내에도 김빈길 장군과 관련해 흔한 비석조차 없다는 것은 안타깝다. 김빈길 장군은 낙안군의 중시조나 마찬가지며, 낙안읍성을 최초로 쌓은 인물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마침내 동내리 상가지역 내에 동상이 세워졌다.
지난 주였다. 조옥현 문화원장은 순천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탐방하고자 지인들과 함께 낙안을 찾았었다. 그는 순천지역의 문화유산을 탐방하는 정책을 수립하면서 낙안군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책자발간계획까지 세웠었다. 특히 그는 정유재란역사와 낙안읍성역사흔적을 찾는 탐방계획을 수립하고 해룡면 신성포구와 낙안면 낙안읍성을 자주 찾는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화가 김만옥, 서남수, 서예가 김정열, 문필가 송석종씨 등 예인들로 구성된 지인들과 함께 순천역사탐방지를 순회하고 있다. 그들은 순천지역의 문화재를 계승, 보존하는데 앞장서고 있으며 예술로써도 역사문화를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매천 김만옥 화가는 지난 2015년부터 6년 동안 삼국시대부터 현대까지 순천의 역사와 인물을 소재로 작업을 해왔다. 그동안 작업한 작품만 1000여 점에 달하고 있다. 특히 그는“지역의 역사를 책으로만 공부했지만, 과거 속의 그날을 재현하고 싶은 욕망으로 작업을 해왔다”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를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그는 순천의 연혁과 고을사의 뿌리, 임진왜란 7년 전쟁과 순천사람들, 충, 효,예, 흥학의 순천, 충열 구국항쟁의 순천인 등을 그림으로 선보이고 있다.
게다가 서정,김정열 서예가는“자신의 선조인 김빈길 장군의 업적과 공헌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며“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김빈길 장군의 업적을 들춰서 재조명해야 한다.”고 했다.
아무튼 낙안읍성의 근본인 토성을 쌓고 왜구를 물리쳐 백성들의 환심을 산, 김빈길 장군의 얼을 기려야 한다. 특히 낙안팔경을 한시로 노래한 문필가로서의 김빈길 장군의 정신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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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4 09:10 송고
2023-04-24 09:13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