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이면 대밭으로 날아드는 비둘기

산꿩이 서로 올라타 휘어진 달빛에

뒷문 병풍 속으로 기어든 장끼가

까투리 꺼벙이 이끌고 열여덟 매 긴 꼬리

부젓가락처럼 불씨 흔들며

공단이불에 대가리 박은 화로가 식어갔다

섣달그믐 밤

하루네 헤쳐 먹은 모이주머니에

빨간 찔레열매 마른꼬투리 졸라매고

눈썹 세는 세밑 뒤적거리며

노래 한 수 뿌려놓았다

“꿩 꿩 장서방 뭐 먹고 산가

아들 낳고 딸 낳고 뭐 먹고 산가

아들 집서 콩 한 섬 딸네 집서 팥 한 섬

그작저작 사네”*

백제 주저앉히고 하루에 쌀 여섯 말,

술 여섯 말, 꿩 열 마리 먹어치운 김춘추

식탁아래 슬슬 기어가는

우각(羽角)의 그림자가 끄덕끄덕 우는 밤

날개 푸덕이며 뒤채는 대밭에

눈은 한질이나 내리고

소나무가지 딱딱 부러지는 소리

농기깃대 매구자리 동구 밖에 묻혀있는데

저드래 큰 고랑 삼동 긴긴날

둥근 날개 너는 어찌 할거나

등적색 고인가슴 너는 어찌 살거나

*호남일대의 전래동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