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시인

빗발이 굵다. 여름을 재촉하는 빗줄기라서 세차게 뿌리는가 보다. 이런 날이면 어디론가 떠나고픈 마음이 일렁인다.

빗물이 모여드는 계곡에서부터 먼 바다에 이르기까지, 빗방울여행을 떠나고 싶다. 샛강을 만나면 그 동안의 안부를 묻고 큰 강에 휩쓸리면 고난의 부대낌을 몸소 느끼며 바다로 가는 삶을 찾는다.
 

섬진강으로 갈까? 채석강으로 갈까? 그곳 강변에는 어린 날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돋아나고 글별로 뜬 송수권 시인이 생각난다.

평전, 송수권 시인, 그는 작은 거인이었다. 평소 낚시와 끽연을 즐기며 글밭을 일궜던 정직한 시인이었다. 왜소한 체격으로 대자연의 품에 안겨서 지리산과 한라산을 메치는가 하면 섬진강과 채석강의 아름다움을 詩로 승화시켰었다.

벌써 20여년이 지났다. 필자는 인천에 거주하고 있는 송준용 시인과 함께 채석강에서 시를 쓰고 있는 송수권 시인의 집을 찾았다. 그는 채석강에 빠져드는 낙조의 아름다움을 그리기 위해 수년간 그곳에서 은둔했었다. 그때 쓴 시가‘수저통에 비치는 노을’이었다.

그는 무척 사람을 좋아했다. 하지만 자신의 글밭을 가꾸는데 불필요한 사람은 싫어했다. 특히 사람 내음이 풍기지 않는 사람은 만나지 안 했다. 그는 예인들을 사랑했다. 하지만 가난을 떨치지 못한 예인의 길은 싫어했다. 술과 잡기를 싫어해서인지, 오로지 책읽기와 글쓰기에 전념했던 문학선비였다.
 

기계치라서 운전과 컴퓨터는 멀리했으며, 글씨는 악필이었다. 출판사에서 원고를 읽을라치면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타고난 필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부모로부터 전수받은 유일한 유전인자인데 고칠 수 없나보네’하면서 껄껄 웃었던 생전의 모습이 아롱거린다.

이후 그는 섬진강을 노래하려고 지리산 자락으로 글밭을 옮겼었다. 어초장이라는 글 집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섬진강을 누볐었다. 어머니 품처럼 아늑한 섬진강의 온화함과 모래톱에 얽힌 사연을 주워 모아 시로 노래했었다. 그는 지리산을 메치는 시인으로 호가 세석평전이다.

그가 그곳에서 썼던‘지리산 뻐꾹새’라는 시를 읽노라면 지리산을 메치고 남해바다를 끌어올려 세석평전을 가꾸었던 작은 거인임을 방증한다. 게다가 그곳에서 쓴 ‘달궁 아리랑’과 ‘빨치산’은 그 누구도 흉내를 낼 수 없는 판소리가락으로 노래한 대서사시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의 시는 고독한 삶을 예고했고 생사를 넘나드는  삶을 그렸던 것 같다. 현대인들에게 펼쳐지고 있는 고독한 삶과 죽음을 표출한‘혼자 먹는 밥’이라는 작품도 그 당시에 발표했었다. 필자 역시 그에 대한 답 시로‘깨진 접시 하나’를 발표했었다.

“혼자 먹는 밥”

혼자 먹는 밥은 쓸쓸하다

숟가락 하나

놋젓가락 둘

그 불빛 속

딸그락거리는 소리

그릇 씻어 엎다 보니

무덤과 밥그릇이 닮아 있다

우리 生(생)에서 몇 번이나 이 빈 그릇

엎었다

되집을 수 있을까

창문으로 얼비쳐 드는 저 그믐달

방금 깨진 접시 하나 (송수권의 혼자 먹는 밥 전문)

“깨진 접시 하나”

이 봐!

시월 보름이래.

저~ 달 조금 봐봐!

지난 그믐 밤

송 시인이 깨뜨린

접시조각 하나가

하늘 떠다니다가

어둠 먹고 자라서

보름달이 되었다나?

먹 거울 바라보고 미소 띠며

시월바다에 뜨고 있잖아

야윈 얼굴

다소곳이 내밀고

후미진 밤바다 떠돌잖아

비바람 몰아치고 먹구름 낄수록

바닷물 마시고 어둠 곱씹은

깨진 접시하나

검푸른 시월바다

보름달로 뜨고 있나봐 (필자의 깨진 접시 하나 전문)

언제나 송시인은 홀로 있기를 좋아했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어느 틀에 갇혀서 사는 것보다는 영혼과 육체가 자유로울 수 있는 방외지사였다. 그래서 가정을 떠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가장 아닌 가장이었다. 돈도 명예도 뒷전이었다. 오로지 글밭을 일구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는 순천대학교에 근무하면서도 가정을 떠난 기러기 가장이었다. 그의 생활지론은 사람은 태어날 때도 혼자이고 죽을 때도 혼자다면서 혼자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야한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적적했는지, 필자를 불러 놓고서 꼭 친형처럼 말했다.

“용수야! 나는 너를 친누이(형제를 일컬음))처럼 생각한다. 이제부터 사적으로는 형이라 부르고 자주 만나서 정담을 나누자.”라고 말했다. 나 역시 친형이 없는 터라“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었다.

그날 이후 송시인과 필자는 친형제간보다도 더 가까워 졌으며, 송 시인의 삶과 필자의 삶이 닮았던 지난 삶들을 글밭으로 옮기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더욱이 글을 쓰기위해서는 많은 여행을 해야 했다. 즉, 대처를 다니면서 보고 느낀 체험을 자신의 감정에다 접목시키는 작업이기에 여행은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운전기사가 된 필자는 어느 곳이든 송 시인이 가자는 곳으로 움직였다. 서울로, 제주도로, 강원도로, 경상도로 아니 전국방방곡곡을 돌아다녔었다. 그 무렵이었다. 송 시인은 평소에 필자와 알고 지내는 지인의 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 곳은 다름 아닌‘돼지엄마’로 널리 알려진 김수자 수필가의 집이었다.
 

그 때의 아름아름한 기억을 더듬어 볼까 한다. 봄꽃이 피어나는 이른 봄이었다. 김수자 수필가는 송 시인과 필자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알고 송시인과의 만남자리를 제의했었다.

참으로 묘한 인연의 한 토막은 시작됐다. 필자는 송 시인 앞에서 의도적으로 김 작가를 운운했었다. 송 시인은 필자의 그 의중을 알아차렸었는지,“돼지엄마”라는 수필집을 접했다. 그리고 말했다.“용수야! 김수자가 글을 참 잘 쓴다. 보기 드문 산문집이다. 군계일학이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했다. 그 말끝에 필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그처럼 좋은 작품들이기에 김수자 씨의 수필집(돼지엄마)이 범우사에서 발행됐지 않았을까요. 범우사에서 수필집을 발행하려면 자사의 엄정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던데요. 그래서 상당히 까다롭다던데요.”라고 말을 했다. 게다가 필자는 “순천지역사회에서도 남편을 도와 돼지농장을 경영하는 억센 돼지엄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라고 피력했다.

그러한 연유로 송시인은“돼지엄마"를 만나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송 시인의 의중을 간파한 필자는 곧바로 김 작가의 돼지농장을 찾게 되었다. 그곳에서 만남과 인연은 문학을 연계한 우정으로 까지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됐다.

순천시 서면 금평 마을 김수자씨의 자택. 돼지엄마의 글방에서의 문학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벽에 걸린 시화에서부터 서각작품에 얽힌 사연과 글방의 이름 등은 꼬리와 꼬리를 물었던 기억들로 다시금 새롭다.

그날 이후, 가끔씩 우리는 문학기행 내지는 문학행사장을 다녔었다. 구례, 하동을 비롯해 화순과 담양 그리고 곳곳으로 문학기행의 오누이형제로 어울렸었다. 서로를 아끼고 위하는 사이가 되어 때로는 인생살이의 희비극도 털어놓았었다. 진정함이 묻어나는 인문학을 논하기도 했었다.

송 시인이 떠나버린 지금, 모든 것이 추억갈피로 접어지고 있다. 수많은 밤을 하얗게 새면서 어설픈 삶을 논했었던 시간꾸러미들이 풀어지고 있다.

어쩌면 그는 빗물여행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섬진강과 채석강을 두루 살피며, 지리산을 오르고 있을 것이다. 아니 호남의 정신을 강과 산으로 옮겨 또 다른 글밭을 가꾸고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