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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9월 14일 수요일 맑음
            
 어제까지만 해도 추석이어서 잡채다 갈비에다 송편에다 아유~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터질 뻔했다. 하지만 오늘은 효도 방학으로 추석 연휴에다가 하루 더 쉴 수 있는 날이다. 그래서 특별한 일을 해야 하는 날인만큼 얼마 남지 않은 봉사 시간을 채울 겸 추석날 먹은 것들 소화도 시킬 겸 하여튼 겸사겸사 해서 혼자서 효사랑 병원에 가 할머니들을 뵈었다.
 이 병원은 총 3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인데, 내가 듣기로는 1층과 2층에는 일반 어르신들을 모셔두고 있고 3층에는 치매나 치매기가 있는 어르신들을 한데 모셔두는 곳이라고 들었다. 내가 1학년 때 여기 병원으로 봉사 올 때 1층과 2층만 봉사를 했었다. 그런데 같이 간 친구들 중 3층에 갔다 온 친구는 정말 악몽이었다며 할머니께서 막 욕도 하시고 가끔씩 당황스런 행동을 보이셔서 얼마나 힘든지 몰랐다며 나에게 울고불고 아주 난리가 아니었다. 1,2층의 할머니들께서는 오히려 젊은 사람이 힘든 일을 뭣하러 하냐고 하시며 쉬엄쉬엄하고 할머니들과 놀다가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3층의 할머니들께서는 1,2층에 계신 할머니들과는 차원이 다름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 내가 3층에 가게 되었다. 예전에 얼핏 들은 3층 할머니들 이야기 때문인지 사회복지사께서 “3층은 안 해봤지? 그럼 3층도 한 번 경험 해 봐야겠네.”라고 말씀하실 때, 얼마나 다리가 후들후들 거렸는지 모른다. 봉사하는 방법부터가 다른 3층 할머니들께 봉사하려고 가는데 가까운 거리이니 걸어서 올라가도 될 텐데, 굳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셨다. 그래서 나는 ‘사회복지사께서 무릎이 안 좋으신가?’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보니까 다 이유가 있었다. 3층으로 가는 길이 엘리베이터로 가는 방법밖에 없었던 것이다. 누구나 나오기 힘들어 보이는 철장으로 된 문에는 도어락이 설치되어 있고 간호사실과 복도 사이에는 허벅지 높이의 조그만 한 문이 설치 되어있다. 입구부터 남달랐던 3층의 모습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내가 처음에 했던 일은 걸레질이었다. 걸레질이라고 해봐야 침대와 책상, 창틀, 난간 등을 닦는 것이었는데, 걸레질을 하면서 정말 난감했던 일이 벌어졌다. 앞에서 내가 언급했듯이, 욕을 하시는 할머니께서도 계셨지만, 갑자기 복도 한가운데서 옷을 벗으시거나,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하시거나, 용변을 만지시는 헤프닝을 내가 겪고야만 것이다. 당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머리가 하얘졌다. 간호사께서는 내가 당황한 걸 아신 것인지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시면서 할머니들께 그러지 말라고 당부하시고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셨다. (아마도 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일은 처음 겪는 난 너무나도 난감했다.
 그러한 헤프닝이 일어나서 이마엔 벌써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지만 내게 뭔가를 깨우치는 계기가 된 일도 있었다. 어느 병실에 들어가서 걸레질을 하는데, 참 인상이 선하신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그 할머니의 침대를 닦는데, 갑자기 내 손을 잡으시며 “고맙다. 정말 고맙다. 추석연휴에 여기에 봉사 와서 참으로 고맙다. 우리 자식들도 날 보러 오지 않았는데. 너라도 와서 다행이다. 네가 오니까 우리 손녀가 생각난다. 네가 꼭 우리 손녀 닮았어. 우리 손녀도 이렇게 귀엽고 야무지게 생겼는데 지금은 다 커서 어디서 무얼 하는지 몰라.”라고 하셨다. 그리고서는 내가 손녀딸과 닮았다며 주섬주섬 옷 속에서 꺼내시어 아껴두셨던 사탕을 나에게 건네셨다. 어쩌면 손녀딸에게 주었을지도 모르는 사탕을 내가 받게 되었다. 이 말로 나는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옛적부터 우리 민족은 노인을 공경하고 우대하며 살아왔다. 조선시대 유교 도덕 사상에서 기본이 되는 삼강오륜의 장유유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또한 3대가 한데 어우러져 사는 확대 가족 형태가 대부분이었던 조선시대는 연세가 가장 많으신 분이 가정의 으뜸이 되어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하나의 준칙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경로사상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요양시설에 맡겨지는 노인들과 독거노인들의 수가 증가한다는 보도 자료를 들을 때에 그 사실이 분명하다. 또한 전에 매스컴에서 큰 이슈가 되었던 ‘지하철 막말녀’사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지하철 어르신께 해서는 안 될 말을 해서 화제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사건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현대 시대의 노인들은 공경하고 우대할 대상이 아닌 약하고 귀찮은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한 때 노인 공경을 잘 지켜오던 우리 민족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이러한 나의 안타까움을 자아낸 것은 위의 할머니의 말씀 때문이기도 하다. ‘자식들은 보러 오지도 않았다.’, ‘나라도 와서 다행이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애처롭고 그렇게 된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께 손녀와 같은 존재가 된다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실 것 같아 병원에서 할머니께 봉사하면서 손녀와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며 웃기도 했다. 또한 복도에 계시는 할머니들과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할머니들과 많이 친숙해 졌다.
 내가 봉사를 다 마치고 갈 시간이 되자, 간호사께서는 수고했다며 주스를 주셨고 할머니들께서는 다음에 또 와야 한다고 꼭 다시 온다는 약속까지 하고 할머니들과 헤어졌다. 비록 처음에는 당황스러운 일이 많아서 땀이 삐질 났지만 지금은 할머니들께서 많이 예뻐해 주시고 먹을 것도 많이 주셔서 이번 봉사가 얼마나 뿌듯했는지 보람찬 하루가 되었다. 또한 전에는 할머니의 특유의 냄새가 나서 가까이 가기를 꺼려했는데, 지금은 할머니들과 가깝게 있으면서 어느 정도 그 냄새에 익숙해 졌고 할머니에게서 은근히 풍기는 비누냄새까지도 좋아졌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문득 우리 할머니가 생각나서 전화를 드렸다. 추석 때 뵙지 못했던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께 못 찾아뵈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이제까지 할머니와 못했던 얘기들을 나누게 되었다. 전에 봤을 때는 생생하신 것 같았는데, 오늘 들어본 할머니의 목소리는 많이 얇아지신 듯 했다. 옛날에는 내가 처음에 태어난 애라고 예뻐해 주셨는데, 지금은 머리가 조금 컸다고 할머니를 많이 찾아뵙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께서 지금 어떠하신지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이제부터라도 시간이 되는대로 찾아뵈고 그러기 힘들다면 안부인사라도 드릴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번 봉사를 다녀오면서 단순히 봉사 시간을 위해서 봉사 했던 내 자신을 반성하고 이제는 ‘진정 어르신을 위해서, 마음으로 공경하는 태도로 봉사해야겠다.’고 나의 봉사 정신을 고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이 나이가 들어 약하고 보호받아야할 존재이지만 나보다 경험이 풍부하고 그로 인해 얻은 지혜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가치를 지닌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귀찮은 존재로 봐서는 안 되었다. 오히려 그들이 가진 것을 높게 평가하여 공경하고 우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 있었던 일은 나에게 큰 의미가 부여됐다. 노인들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 삭막한 현실을 알게 되었고 이로 인해 나에게 경로사상을 다시금 상기시키고 고무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층 더 내가 더 성숙했음을 느끼는 지금. 할머니께서 주신 사탕 맛을 다시 생각하며 중간고사 끝나고 다시 찾아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