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 기사제보 | 즐겨찾기 추가
새 배너 / 순천시의회 새 배너 순천시청
전체기사 포토영상 오피니언 들길산책 인물동정 지역광장
최종편집시각 : 2025.01.06 (월요일) 11:24
전체기사
ㆍ전체기사
기사제보
광고문의

가장많이 본 기사
이메일 프린트 퍼가기 글자크기 원래대로 글자크기 크게 글자크기 작게
송순섭 명창 순천에 둥지를 틀었다 / 김용수
2015-11-05 오후 2:49:06 참살이 mail yongsu530@hanmail.net




    참으로 기쁘다. 지난주에 썼던 “순천가”는 판소리고장을 방증 한다는 필자의 칼럼이 회자되면서 판소리에 관한 자료들이 속속 모아지고 있다. 특히 순천지역에서 판소리를 배우고 익혔던 송순섭('적벽가' 인간문화재) 명창에 대한 자료와 이야기들이 수집되고 있다. 아니 몇 권의 책을 엮어도 좋을 국악자료들이 수북하게 쌓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순천의 판소리문화를 더듬어 볼까 한다. 무엇보다도 순천대사습놀이와 관련된 환선정과 벽소 이영민 선생 그리고 박봉술 송만갑 송순섭 명창으로 이어지는 순천의 판소리 맥을 짚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까운 예로 국내 판소리 다섯마당 중에 우리 지역에 남아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의 예능보유자인 운산(雲山) 송순섭 명창을 중심으로 순천의 판소리문화를 추적해 본다.


    현재 송 명창은 순천시 조비골 304번지에 둥지를 틀었다. 그는 이곳에 터를 잡고 소리의 명맥을 잇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즉, 순천시 연향동에 있는 전남기업진흥원 내에 “송순섭 전수관 추진위원회”을 발족, 추진하고 있는가 하면 순천의 판소리문화를 집대성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일까? 이 행사를 추진한 전남기업진흥원장인 탁인석 고문을 비롯한 박광호(전 순천시의회의장)추진위원장, 순천시의회 문화경제위원회 위원인 박계수의원, 정철균의원, 순천판소리국악협회장 등은 송 명창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 동참의사를 밝혔다고 전하고 있다.


    항시 송 명창은 “순천지역은 예로부터 문화자원이 다양하고 풍부하여 예술을 즐기는 사람이 많거나 예술가를 많이 배출한 고을로 ‘예향(藝鄕)’의 도시라고 칭했다” 며 “전주·광주 등과 함께 예향으로 불리며 남도 문화의 중심지로 평가받았었다”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예술인으로는 전남공예협동조합과 전남예총(국악·미술·사진·음악·연극·연예예술·문인·무용협회 등 8개 회원단체로 구성) 산하 순천예총 회원과 공예부문 회원으로 활동한 소속 회원만 500명이 넘고,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아마추어 작가(4,500여 명)까지 포함하면 그 인원이 약5,000명이 넘을 것이다.


    상기해 보자. 순천에서의 판소리는 그 무엇보다도 문화적 가치가 높고 중요한 문화자산이다. 판소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고 낙안읍성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하려면 판소리문화를 바탕으로 한 낙안읍성의 문화가 접목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 순천의 판소리역사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 수 있는 사람은 송순섭 명창이다. 그는 순천에서 판소리를 배웠고 순천에서 판소리를 익혀 득음까지 했다. 또 그는 생존해 있는 국악인 중에 순천을 대표할 수 있는

    유일한 문화재다.


    그런 연유에서 그의 행적은 유난히도 빛나고 순천을 떠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순천의 환선정에서 순천대사습놀이를 했었던 당시의 상황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 무렵 자신도 무대에 서서 적벽가를 불렀었고 여러 명

    창들의 소리를 들었었던 장본인이다. 그는 방봉술 명창의 제자로 젊은 날의 험난했던 소리꾼의 이야기를 서슴없이 술회하기도 한다.


    가끔 그는 하늘의 명에 순응하는 고장, 順天, 그 순천을 잊을 수 없다며 순천을 노래한 순천가(順天歌)를 되 뇌이기도 하고 허술하게 쳐박혀 있는 환선정(喚仙亭)을 남몰래 찾기도 한다.


    하지만 순천을 노래한 일제하 소작쟁의의 선봉에 섰고 항일운동에 청장년을 바친 벽소 선생과 송만갑, 박봉술 선생을 잊으려야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82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항일운동을 했던 벽소(碧笑) 이영민(李榮珉 1881~1962)선생의 정신적 지주는 순천의 정신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처럼 순천의 판소리문화는 예나 지금이나 맥을 잇고 있으며, 후세까지도 그 전통을 계승 발전해야 하는 사명감을 지니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송순섭 전수관’이 들어서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작권자©참살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5-11-05 14:49 송고
    송순섭 명창 순천에 둥지를 틀었다 / 김용수
    최근기사
    새 배너 뉴스앵키
    참살이소개 | 광고/제휴 안내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방침
    참살이뉴스 사업자등록번호 : 416-14-38538 / 등록번호 : 전남 아 00078 / 발행일 : 2008년 6월 1일
    전남 순천시 연향동 장자보3길 28 T : 061) 746-3223 / 운영 : 김옥수 / 발행 ·편집 : 김용수 / 청소년보호책임 : 김영문
    yongsu530@hanmail.net yongsu530@naver.com Make by thesc.kr(scn.kr)
    Copyright 참살이뉴스. All Right R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