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끝에 明太를 말린다
明太는 꽁꽁 얼었다
明太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明太다
門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백석(1912∼1996 )'멧새 소리' 전문

이 시가 발표된 때는 1938년. 이 시를 쓸 무렵 백석은 함경남도 함흥에 살았다. 함흥에 살면서 동해(東海)에선 날미역 냄새가 난다고 썼고, 관북 지방에서 잡히는 가자미와 가무락조개에 대해 썼다.(그는 동해의 조개가 되고 싶다고 썼고, 가자미는 흰밥과 빨간 고추장과 함께 가난하고 쓸쓸한 밥상에 한 끼도 빠지지 않고 올라오던, 먹어도 물리지 않는 생선이라고 썼다!)
이 시의 온몸에는 한기가 들어 있다. 민가 처마에 겨울 명태가 매달려 있다. 추운 세상에 명태에 고드름까지 달렸으니 더 여위고 기다랗고 두 눈은 퀭해보였을 터. 그 명태의 궁색을 화자의 처지에 겹쳐 놓았다. 객지에 사는 이의 외로움과 쓸쓸함의 높이 같은 것. 그런데 왜 제목이 '멧새 소리'인가. 멧새 소리는 뭍과 숲과 고향의 소리이니 바다와는 한참 멀다. 바다에서 잡혀온 명태나 고향을 떠나온 화자나 다를 바 없다. 처마 끝 꽁꽁 언 명태를 바라보는 이의 객수가 시린 뼛속에 더욱 사무쳤으리.
/ 문태준 | 시인
이 시의 '제목'과 '내용'이 아이러니하다. 제목은 '멧새 소리'지만 상반되는 내용의 '명태'를 상정하고 있다. 멧새는 산새로서 자유로운 날갯짓과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고, 명태는 바다에서 포획된 물고기로서 주검 이후에도 혹독한 겨울을 견디는 외로운 존재다. 전반부의 명태는 춥고 냉혹한 시간에 노출되어 말라가다가 얼어붙은 상태에서 고드름이 달린다고 진술한다. 그러나 후반부의 명태는 "門턱에 꽁꽁 얼어서/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라고 화자의 신체로 전치시킨다.
이것은 시인이 처한 현실의 부당함을 반어적으로 상징화시켜 놓은 시적 전략이다. 현실의 시인은 무의식에 내재된 억압의 커튼을 젖히고 부조리한 현실을 폭로할 수 없는 상태다. 따라서 명태를 통해 '통제'와 '구속'이라는 '증세'를 만들어 내고, 갈등을 조장하며 무의식을 의식화시킴으로써 자아 영역 밖으로 감정을 표출시킨다. 시인은 '멧새'처럼 자유로운 소리를 내야 하지만 반대로 '현실'은 입을 다문 '명태'처럼 얼어붙어 있다는 것이다. 즉 북한에서의 실상을 '멧새'와 '명태'라는 대상과 전치시킨 등가물로 억압된 감정을 드러낸다. / 권성훈(시인·고려대 연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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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4 09:0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