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1
가을이 저문다. 하얗게 널브러진 갈대꽃을 보기위해 먼 곳을 마다않고 달려온 탐방객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가을바람에 흔들대는 갈대의 춤은 왠지 처량하다. 차가운 겨울을 재촉해서인지, 인생의 가을을 연상해서인지, 그저 쓸쓸하고 서글프다.
사르륵사르륵 서걱서걱 갈대 부딪는 소리는 가을타는 사람들은 물론 이방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때론 가슴을 저미는 그 뭔가에 휘둘려 무작정 가을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아니 인생의 희 노 애 락을 엿볼 수 있는 바다와 갯벌 그리고 갈대꽃이 흐드러진 순천만정원 갈대밭을 찾는지도 모른다.
가을이 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잠시잠깐이라도 복잡한 세상사를 떠나 대자연의 품에 안겨 심신을 달래려 한다. 그 중에서도 갈대꽃 흐드러진 순천만정원을 선호하는 까닭은 어떤 연유일까? 매우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나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연의 섭리와 이치를 터득하고픈 심정에서 갈대밭을 많이도 찾는다고 한다.
갈대가 사람에게 주는 심상, 그 이미지를 그려볼까 한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은 다르겠지만 그래도 가을을 연상케 하는 초화류로써는 갈대가 아닐까 싶다.
다수의 사람들은 말한다. 바닷물과 민물이 합류되는 지점, 그 어느 곳에서라도 자신의 몸매를 자랑하듯 쭉쭉 뻗어서 하얀 꽃을 피워내며 가을 춤을 추는 그 모습은 가관이라고 말이다.
게다가 봄이면 청 갈대로 오순도순 자라나는 연두 빛 푸르름을 보여주고, 여름이면 왕성한 신록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며, 겨울이면 하얀 눈발에 휘날리는 갈대꽃의 향연은 갈대만이 지닐 수 있는 특성이 아닐까 싶다.
갈대화가로 널리 알려진 손준호 화백은 자신의 갈대그림을 그리기 위해 원형이미지를 찾아 나선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갈대꽃 흐드러진 순천만정원에서 날밤을 새며 갈대와 바람 그리고 갯벌과의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그 원형을 파고들면 별의별 가지와 줄기가 무성하겠지만 뿌리는 하나다. 즉, 주술성의 언어와 그림이다.
다시 말해 주술성은 영매작용 즉 영혼을 불러내는 소리로 이루진다는 뜻이다. 시각 이미지는 길들여진 언어지만 청각 즉 소리 이미지는 영매를 수반한다. 샤니에서 몽골의 버(수무당)나 허크(암무당)는 소리 즉 주술의 언어(呪文)로서 혼을 부른다. 영이 맑은 시절에 인디언들은 백리 밖에서 우는 늑대 울음소리를 듣고 냄새를 구별했다고 한다. 즉 허멍(영매를 부르는 소리)으로 영을 불러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길들여진 언어는 시와 그림에서도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 넣지 못하고 답보상태다.
시에서 말하는 록 언어와 발라드 언어 중 주술을 부르는 것은 록 언어가 아니라 발라드 댄스의 언어에서 나온다. 그 언어는 한밤중 반딧불처럼 떠서 흐르고 동굴 속의 박쥐 울음처럼 자연의 소리에서 온다. 색깔로 보면 원색으로 타오르는 색깔이고 이 색깔 속에서 영매자의 춤과 울음으로 온다. 시와 그림도 마찬가지다. 원형 이미지를 형성하고 카타르시스를 주는 최상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원형이미지를 주는 것이 갈대가 아닐까 싶다.
과학적으로도 갈대가 우리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다. 갈대의 뿌리는 장장 2미터로 매우 길다고 한다. 그 뿌리를 갯벌에다 내리면서 미생물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터전을 조성하는가 하면 온갖 불순물을 빨아들여 정화조 역할까지도 한다. 요즘에는 갈대에서 축출한 액기스로 커피와 효소 등 많은 상품들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필자역시 무용수처럼 가을바람에 흔들대는 갈대를 바라보노라면 온갖 시름이 오간데 없고 그저 젊은 날의 로맨스와 잊지 못할 추억만이 그려질 뿐이다.
시간이 주어진다면 갈대꽃 흐드러진 순천만정원에서 추억을 더듬으며 심신을 달래고 내일의 에너지를 축적하는 시간을 가져봄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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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4 08:4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