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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수 편집국장
하얗게 희푸르게
피어나는 배꽃은
달님도 시샘하는지
푸르스름한 달빛마저
배꽃을 찾아들고
밤잠을 설치는
여인네들 옷차림은
보름달을 닮고 닮아
아리따운 곡선미를
자랑삼아 선보이고 있다
배꽃 피는 깊은 밤
푸른 달빛 머금은 배꽃 아래서
알몸으로 만나자던 팔팔청춘들
익어가는 몸매상상조차 했을까
두어라! 배꽃마냥 싱그러운 사람을
보아라! 배꽃마냥 새하얀 그 사람을
잡아라! 배꽃 닮은 희푸른 사랑 빛을
봄기운 맞이하는 종달새마저
배꽃 찾아든 달빛을 쪼아 물고
정겨운 님 소식도 물어 나르는
새하얀 배꽃 길
그 길에는 추억별이 뜨고 있다
(필자의‘배꽃 길’전문)
배꽃 피어나는 밤이면 배꽃 길을 거닐고 싶다던 여인네들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들은 하얗게 피어나는 배꽃과 푸르스름한 달빛을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립고 그리운 사람, 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달빛 찾아든 배나무 밭에는 무수한 생명체가 태동한다고 한다. 하나의 생명체가 태동할 때 발산하는 에너지의 양은 엄청 크다고 한다. 아마도 사랑의 에너지가 아닐까 싶다. 특히 여성들에게 알맞은 음성 호르몬이 축약돼 있을 뿐 아니라 이성을 그리워하는 촉매제도 있는 성 싶다.
이런 맥락에서 낙안이곡의“배꽃 길 뚤레뚤레 걷기”를 상기해 본다. 낙안면민들이 주최가 되어 진행하고 있는 이 행사는 참으로 특이한 행사가 아닐 수 없다. 대자연의 오묘함을 통해 인문학을 느끼게 하는 아주 소중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도 역사공부와 천문지리를 통해 인간애는 물론‘호연지기’의 철학을 배우는 체험학습이다. 남녀노소 누구를 막론하고 참여하는 사람에게 중식과 선물을 순천교육청이 제공한다. 어쩌면 배꽃 길을 뚤레뚤레 바라보면서 걷는다는 것은 즐거움을 떠나 행복의 도가니가 아닐 수 없다.
어느 시인의 이야기다. 고요한 시골의 지붕 위를 지나가는 밝고 얼음보다 차가운 빛이 집안에 스며들면 방문을 열고 달을 바라보았다. 그 처연하듯 차가운 달빛은 봄을 향하여 가는 봄바람 같은 것이었다. 봄이 되어 봄바람에 쌓이고 섞여 배꽃을 더욱 하얗게 밝혀준다는 이조년의 평시조,‘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를 읊조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다. 배꽃과 달빛의 관계마냥 우리들의 감정도 오르락내리락하며 살아갈 것이다. 달빛이 배꽃을 타고 흘러내리듯 우리네 삶도 대자연의 한 자락에서 숨 쉬고 있을 것이다. 더욱이 배꽃 피는 과수원의 시골생활에서 느끼는 감정은 남다를 것이다. 뽀얗게 일으키는 먼지마냥 지난 이야기들이 움츠리고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가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는 날은 추억의 골짜기를 헤매고 있을 것이다. 추억은 아름답게 새록새록 피어날 것이다.
벌써 20여 년 전이 지난 일이다. 배꽃이 한창일 때다. 필자도 배꽃에 반해 이곡 용능 마을 선배님 집에서 김남태 아우와 함께 폭주를 했었다. 사람내음 나는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서 배꽃과 달빛이 어울리듯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웠었다. 게다가 아내가 운전하는 승용차 안에서‘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은 삼경인제’라는 이조년의 시조까지 읊은 적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곡마을에 처음으로 배나무를 심었던 안호영씨는 독립지사였다. 그는 1919년 천도교에서 포교활동을 했다. 손병희 선생의 밀령을 받아 향리에 내려와 독립선언서와 각종 밀서를 전달, 낙안 3.1만세 운동을 일으켰었다. 현재도 그의 가옥은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배꽃 길 뚤뚤레 걷기 행사코스를 살펴보자. 제1지점(형설서점) 제2지점(배꽃 피는 마을) 제3지점(배꽃 피는 길) 제4지점(아이스 크림) 제5지점(포토존) 제6지점(노암 큰샘) 제7지점(반환점) 제8지점(신기 우사각) 제9지점(정자) 제10지점(샛길)이다.
“나들이는 순천으로”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봄나들이부터 겨울나들이까지 사시사철 순천은 푸른빛으로 하얀 빛을 잃지 않고 있다. 도시정원에서 가정정원에 이르기까지 순천의 정원은 끝이 없다. 보이는 그대로가 정원이다. 대자연을 간직한 순천은 자연의 축소판이 아닐 수 없다. 순천에 오면 낙안이곡 배꽃 길도 걸어 보기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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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7 22:26 송고
2023-04-07 22:27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