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수 편집국장
얼음 향 머금은 선암매화는
육백년 거스른 풋 소녀입술이다
풋풋한 입술 가지마다 매달고
동자승 놀려대듯 깔깔 거린다
원통전 각황전을 따라
운수암으로 오르는 돌담길에
선암으로 살아온 세월만큼
이야기보따리 쌓이고 쌓였다
울퉁불퉁한 몸통 아량 곳 않고
쭉 뻗은 가시 망 추위 내쫓으며
선비 향 풍기는 꽃신으로
꽃망울 맺을 때
꽃잎 활짝 필 때
꽃잎 휘날릴 때
세 번의 웃음을 위해
지조를 지켰고
절개를 지켰다
온갖 근심은 누구보다도 먼저 걱정하고
온갖 즐거움은 누구보다도 뒤에 즐거워한다는
중국북송 때 범중엄의 ‘악양루기’처럼
그 향기
그 빛깔
그 기개
오늘에 이르렀다
조계산 장군봉 정기를 내리받은
선암매는 동갑내기 와송을 지나
호젓한 흙돌담 양옆에 늘어서서
붉은 웃음
하얀 웃음
푸른 웃음
가지마다 매달아 봄바람 찾는다
소리 없는 웃음
살포시 터뜨린 선암매
은은한 달 별빛 받아 삼키고
찬물도 씻어먹는 백학소리 듣는다
(필자의“선암매”전문)
매화가 한창이다. 붉디붉은 홍매화를 비롯해 하얀빛과 푸르스름한 빛으로 피어나는 백매, 청매화가 순천정원을 물들이고 있다. 꽃의 아름다움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향기 또한 그윽해 상춘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낙안읍성에서 선암사로 이어지는 도로주변에는 납월홍매화산지로 길거리가 화사하다. 이른 봄을 서두르는 사람들의 마음은 벌써부터 금전산 금둔사에 와 있다. 붉게 핀 납월홍매화를 보기위해서다. 아마도 납월홍매화는 낙안상송마을이 산지인성 싶다. 이곳에서 뿌리를 내린 납월홍매일대손이 금전사로 옮겨가서 현재의 금둔사 홍매화로 자라고 있는 것이다.
예부터 선인들은 매화를 좋아했다. 그런 연유에서 친구가 보내온 월송 문헌을 상기해 본다. ‘매화 피어 천하가 봄이로다.’그래서일까? 탐매를 하기 위해 봄나들이를 한다. 매화의 梅(매)자를 한자어로 풀어보자. 木(목)+人(인)+母(모)의 세 글자가 결합된 회의자다. 나무 중에서 어머니와 같은 나무라는 뜻이다.
월송은 그런 까닭에서 나무 중에서 매화처럼 사람에게 많은 이로움을 주고 사랑을 듬뿍 받는 나무도 흔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겨울나기를 하면서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트려 봄소식을 전해준다. 또 눈 속에서 꽃을 피워도 마치 온화한 날씨인양 그윽하고 은은한 향기를 발산 한다고 했다. 차가운 밤 얼음이 얼어도 꽃 모양은 싱싱하고 색상은 선명하다고 했다.
게다가 매화는 세 가지 덕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제1덕은 엄동설한을 이겨 낸 인고의 덕이다. 제2덕은 이른 봄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트려 봄소식을 알려주는 덕이다. 제3덕은 우리 몸에 이로운 열매를 맺어 기여함의 덕이다.
삼천리금수강산 대처에서 피고 있는 매화 중에 산청3매, 호남6매, 도산매, 율곡매,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호남매에 속한 선암매를 비롯해 납월홍매는 순천낙안이 산지다.
무엇보다도 선암사 내 천연기념물인 매화나무‘선암매(仙巖梅)’에서 딴 매실로 담근 장 종류는 맛의 근원이며 으뜸이 아닐 수 없다. 선암매로 생산된 간장, 된장, 고추장으로 요리를 하면 곰삭은 향기와 함께 깊은 맛이 있다. 들기름과 함께 비벼 먹으면 일미가 아닐 수 없다.
천연기념물 제488호 선암매는 원통전부터 각황전까지 50주가 담을 따라 자라고 있다. 원통전 뒤뜰 선암매는 백매화를 피우고, 각황전 입구 선암매는 홍매화를 피운다. 약 600여 년 전 심었다고 전하는데 매년 봄이면 아름드리 선암매를 보기 위해 수많은 탐매 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지난주였다. 낙안읍성주차장주변에서부터 성안 곳곳에 피어있는 홍매화를 촬영하기 위해 사진작가들의 움직임이 부산했다. 그들은 홍매화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아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확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홍매화의 색조와 빛깔 그리고 피고 지는 일상 등을 관찰하면서 우리인생과의 연관성을 찾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참으로 운치 있는 홍매화 길이 있다. 낙안가정마을에서 금산마을입구까지 홍매화 길이 열렸다. 언제 심었는지는 자세하게 알 수 없으나 도로가로 심어진 홍매화 길은 일품이다. 붉으스레한 홍매화가 아기자기하게 피어나고 있다. 천주교 쉼터에서부터 휴식을 취하는 수녀들의 산책길로 안성맞춤이다. 홍매화의 아름다움과 그 향기를 맡으며 활보하는 시간이야말로 명상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
월송의 문헌을 다시 한 번 상기 하면서 선암매, 낙안매를 비롯해 모든 매화를 사랑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온 천지가 매화로 뒤덮인 호남지방은 오늘도 탐매 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매화는 나이가 들수록 품위가 더해지는데 우리네 인생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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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05:04 송고
2023-03-13 05:05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