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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을 맞이하는 낙안민속마을/ 김용수
2021-03-23 오전 7:48:59 참살이 mail yongsu530@hanmail.net


    김용수  편집국장




    홍매화가 피고 살구꽃이 피는 낙안읍성민속마을에 새봄이 왔다. 각종 새소리가 끊이지 않고 봄꽃들이 앞 다투어 피고 있다. 동문과 남문 그리고 서문에 이르기까지 봄꽃이 피기시작하면서 환경정리도 함께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관광객이 뜸했던 낙안읍성민속마을의 새봄은 어느 때보다도 분주하다. 특히 3월은 나무를 심기에 적합한 기후이기에 낙안읍성민속마을에 어울리는 수종을 식재하고 있다. 동헌 앞과 객사 뜰에는 홍매화를 옮겨 심고 연못가에는 능수버들을 심었다. 아마도 3월부터 4월까지는 나무를 심으며, 환경정리를 하는 계획을 세웠는지도 모른다. 관아건물과 민가의 낡은 부분도 섬세하게 살펴보면서 보수작업도 하고 있다.

    김해중 낙안읍성장은 주어진 자신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소탈하면서도 근면, 성실한 그의 성격상 게으름은 없다. 주민과의 소통을 중시하면서 낙안읍성을 가꾸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시간이 멈추는 동네, 낙안읍성민속마을의 특성을 살리고, 미풍양속을 지키려는데 촌음을 아끼고 있다.

    그는 낙안읍성장에 부임하면서 주민과 읍성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고 한다. 그 결과 주민간의 갈등을 해소하면서 주민과 소통해야 한다는 것과 낙안읍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키 위한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을 유념했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전통문화계승은 물론 효를 중시한 예의범절의 예법을 살리려는데 중점을 두었다. 틈나는 대로 현장을 둘러보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오늘의 할 일과 내일의 할 일 그리고 장기적으로 할 일들을 점검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서일까? 직원들 역시 한결같다. 직원모두가 소통하면서 합심하고 맡은바 소임을 다하고 있다. 더욱이 친절을 앞세운 상냥한 말씨로 민원인을 맞이해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분위기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주민과 소통하면서 일을 찾아서 하는 낙안읍성으로 안착되고 있다.     
    낙안민속마을의 봄은 초가와 돌담에서 오는가 싶다. 노르스름한 초가지붕과 황토색 돌담은 보기에도 온화하다. 게다가 지형적으로 금전산을 비롯해 오봉산, 제석산, 존재산, 백이산 고동산 등 불교적 이름을 지닌 산들이 감싸 안은 분지에 똬리를 튼 아담한마을이다. 때문에 드라마 촬영장으로도 으뜸이 되고 있으며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는 곳이다.

    어쩌면 낙안읍성은 수백 년을 거스르는 시간여행하기 좋은 장소로 안성맞춤이 아닐까 싶다. 낙안읍성은 조선중기에 만들어진 석성내부로 행정구역상 3개의 마을, 100여 세대 사람들이 모여살고 있다.

    사적 제302호인 낙안읍성(樂安邑城)은 고려후기부터 왜구가 자주 침입하자 1397년(태조 6년)에 낙안 출신의 김빈길(金贇吉)장군이 흙으로 성곽을 쌓았다.
    이후, 조선중기 북벌운동으로 유명한 임경업(林慶業)이 군수로 부임해 석성으로 개축했다. 현재까지도 허술한 담장하나 보이지 않는 석성은 1.4㎞를 이어가며 마을을 감싸고 있다.

    토성에서 석성으로 쌓는 작업은 1450년경에 거의 마무리됐다. 당시, 성벽의 둘레는 2,865척이고, 높이는 평지에서 9.5척이지만, 높은 곳은 8.5척이었으며, 성벽 위에 낮게 쌓은 여장(女墻)이 420개로 높이가 2.5척이었다고 한다.

    또 성문은 3곳이었는데 옹성을 두지 않았고 옹성과 성문을 지키기 위해 성문 옆에 쌓은 네모난 적대(敵臺)는 12개를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4개만 설치했다고 전한다. 성 안에는 우물 2곳과 연못 2곳이 있다. 성 밖에 성벽을 둘러 판 해자(垓子)는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옹성은 그 뒤에 설치됐고, 여장도 무너진 것을 다시 고쳐 쌓았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무너져 없어진 상태다. 현재 남아 있는 읍성의 모습은 성벽의 축조나 적대의 존재 등에서 조선 초기 성곽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동문은 낙풍루(樂豐樓), 남문은 쌍청루(雙淸樓, 鎭南樓), 서문은 낙추문(樂秋門) 등으로 불렸는데 터만 남아 있을 뿐이다. 옹성은 남문 터와 서문 터에서만 흔적을 볼 수 있다. 적대는 전하는 기록대로 동문 터 좌우와 동북쪽·동남쪽 모서리에 각각 하나씩 있다. 성벽의 둘레는 1.385㎞이다. 동문 터의 남쪽 부분이 가장 잘 남았는데, 높이는 4.2m이고, 위쪽 너비와 아래쪽 너비는 각각 3∼4m, 7∼8m이다. 아래쪽에 커다란 깬 돌을 이용해 쌓아 올리면서 틈마다 작은 돌을 쐐기 박음 했으며, 위쪽으로 갈수록 석재의 크기를 줄였다.

    특히 성 안의 마을은 전통적인 면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래서일까? 살아 숨 쉬는 민속촌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 유일하게도 성 안에 사람이 살고 있는 민속촌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진입로 중앙부분에 김빈길 장군을 기리기 위한 동상을 세웠다.

    4백년의 풍상을 지닌 은행나무가 유주를 달고 있는 낙안읍성의 새봄은 여느 때와 다르다. 코로나19를 잊고 새롭게 단장하는 분위기다. 홍매화처럼 붉게 피어나고 있다. 홍매화 옮겨 심은 곳과 은행나무유주가 솟아나는 장소에는 사진촬영장소도 시설한다고 한다. 낙안읍성 볼거리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    

    홍매화 피는 길에
    세찬봄비가 내린다

    요란한 빗소리 따라
    꽃잎 찢기고
    방긋 웃음도 떨쳐버린
    비 젖은 홍매화는
    봄의 여인인가
    비의 남자인가
    금둔사 휘돌아
    오금재 오르는
    사람 사람들아

    홍매화 웃음 보려는가
    세찬 봄비소리 들으려는가

    홍매화 시샘하는
    봄비소리보다도
    새소리 불러오는
    홍매화길이 붉다
    (필자의 졸시“홍매화 길”전문)

    <저작권자©참살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21-03-23 07:48 송고 2021-03-23 07:48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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