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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마음에 고향은 동심이다”라는 옛 월간지(샘터) 표지에 짤막하게 쓰여진 문구가 생각난다. 연륜이 쌓일수록 고향땅이 그립고 부보형제가 보고파진다고 한다. 더욱이 이웃사촌과 동심친구들과 쌓았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생각난다고 한다. 아마도 인간의 귀소본능작용이 아닐까 싶다.
철도인의 아들로 태어나 순천철도관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서양화가 이성완씨는 자신의 고향집에서 ‘귀향보고 전시회’를 갖고 있다. 지난 10월 26일부터 오는 12월 31일까지 철도문화마을 레지던스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회는 동심에서 우러나온 조소를 비롯해 다양한 서양화를 선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화가는 자신의 성장과정을 되새기면서 순천철도관사에 얽힌 애환과 철도인들의 삶을 그리려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자신의 고향집을 재구성 하는 한편 정원과 어울리는 전시장을 만들고 다양한 작품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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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순천철도관사의 역사를 살펴보자. 1930년대 일제에 의해 조성된 조곡동 집단 철도관사는 그 위상이나 규모면에서 전국 다른 지역의 철도관사보다 월등하다. 건축학적으로도 그 의미는 깊다. 하지만 일제식민지의 잔재라는 이유만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제 강점기인 1936년에 철도종사원의 주거와 복지를 위해 건축된 집단 거주지다. 당시 철도는 근대를 상징하는 고급 교통수단이었고, 철도에 종사하는 직원 역시 일반 주민에 비해 철도에 관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가진 엘리트들이었다. 이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건축된 철도관사 역시 그들의 경제력을 반영시킨 최고최신의 주택이었다.
1930년대 이후에는 철도관사가 현재의 순천역 인근에 들어서면서 순천은 단일 도심에서 부도심이 추가된 두 개의 도시영역을 형성케 됐다. 즉, 신도시가 기존도심에 이격돼 만들어 졌던 것이다.
전기, 수도 등 근대 건축설비의 도입과 부자재의 규격화에 따른 형태의 단순화가 반영되면서 기존의 한옥과는 다른 근대건축물이다. 다시 말해 순천에서 일제강점기 주거건축의 도시화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곳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당시 선정된 부지는 북쪽의 봉화산을 등지고 남쪽의 순천역을 바라보는 조곡동에 위치했다. 그 이유는 철도관사의 중요성을 인식한 나머지, 수해로 인한 침수피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남북으로 약 20m의 높이차를 두고 부지가 조성됐던 것이다.
특히 조곡동 철도관사는 순천에서 처음으로 단지계획의 조성수법이 구사됐었다. 철도관사 단지는 새롭게 구축 계획된 배수로와 인접해 형성된 삽자(+)형 도로를 중심축으로 4등분된 형상이다.
이곳은 단순히 주택만 조성된 곳이 아니다. 운동장, 병원(진료소), 구락부(동호회), 목욕장, 수영장 등의 복지시설이 함께 조성돼 당시로서는 고급주택단지로 기존시가지와는 별도로 신시가지로 구축됐었다.
조곡동의 등급별 철도관사는 지형 또는 기능을 고려하여 상급관사와 하급관사가 위계를 갖춰 건축됐었다. 일제 강점기의 등급 기준에 따라 4등 관사에서 8등 관사로 분류되어, 총 77동(독립관사 2동) 152세대로 구성됐었다.
순천철도관사는 참으로 애환이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어쩌면 일제강점기에 철도종사자들의 집성촌이라 생각되어 질수도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의 근현대문화가 싹튼 발상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성완 화가는 “마을전체가 역사의 흔적이 묻어있는 삶터이자 박물관이다.”며 “자신은 이곳에서 태어나 뼈와 정신이 자랐다는 뿌듯함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또 그는 자신의 작업소재로써 철도관사역사와 철도인들의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자신의 신념을 토로했다.
이성완 작가의 고향집인 철도관사마을 67-2호는 부친의 유물로 현재까지도 옛 정원과 함께 원형의 건축물이 존재하고 있다. 그는 철도관사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서양화가로 성장해 서울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다가 최근 다시 고향인 순천철도관사마을로 돌아왔다.
그의 집 마당을 전시공간으로 만들어 개방한 것도 “과거를 돌아보면 옛날사람들은 인심이 참 좋았던 것 같고, 이웃 간에 정도 두터웠다.”면서 “바라건 데 울타리가 없는 사회, 그런 우리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소망을 전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두뇌를 가진 황소”라는 작품을 통해 귀소본능을 연상케 하고 있다. 즉, 철도관사의 애환과 동심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추억담을 그리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는 철도관사문화마을은 “3대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놀이 공간 개념의 쉼터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한 아담한 수변시설을 만들어 작은 조형물이나 벽화, 변화무쌍한 분수 등을 설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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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0 07:11 송고
2019-12-12 05:28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