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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철도관사역사와 철도이야기  / 김용수 편집국장
2019-05-27 오전 6:30:32 참살이 mail yongsu530@hanmail.net


    김용수 편집국장



    창밖으로 단비가 내리고 있다. 빠아~앙! 빵! 기적소리와 함께 만남과 이별을 동시에 맞이하는  그곳, 우리나라 철도역사와 교통역사를 알려주는 그곳, 순천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고 있는 그곳, 순천철도관사 이야기는 끊일 줄 모른다.


    봉화산줄기 따라 조곡동에 자리한 철도관사는 일제강점기에 철도직원들을 위해 조성된 마을이다. 어쩌면 근대기의 순천최초계획도시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일본사람들에 의해 조성됐다는 서글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집터로써는 최적지로 알려진 곳이다.


    풍수지리를 따지더라도 집터로써는 손색이 없는 양택으로, 후세까지도 발복한다는 아주 좋은 철도관사마을일 뿐 아니라 전국에서도 제일 큰 규모로 조성됐으며, 철도사람들이야기에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일제강점기를 살아온 우리민족의 아픈 사연을 오롯이 간직한 삶의 터전으로, 우리의 철도역사와 교통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지금도 잊혀 질수 없고 지워지지 않는 철도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담고 있는 것이다. 


    철도사람들은 오로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주어진 업무에 충실했으며 꿋꿋하게 철도를 지켜왔다. 더욱이 그들은 우리나라 산업동맥인 수송업무와 교통 업무를 담당하는 새로운 역사를 쓴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순천철도관사마을을 현재까지 지키고 살아온 철도퇴직자들은 상당수다. 또 그들의 삶 속에는 희비애환이 서려 있다. 철도관사마을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보따리를 지니고 있는 살아있는 철도역사이기도 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철도사람으로 불리는 강수련씨의 예를 들어보자. 그는 46년의 철도근무를 마치고 현재까지도 철도관사마을에 그 명패가 자리하고 있다. 아마도 대한민국 철도역사와 교통역사를 누구보다도 깊이 있게 인식하고 사명감을 지닌 철도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20여 년 동안 타국(일본)살이를 했다. 1921년 순천 매곡동에서 태어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일곱 살의 나이로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초등학교를 나와 엿 장사와 넝마 장사를 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고물을 사서 팔았다. 쓰레기장을 뒤지며 구리나 고철을 수집해서 팔기도 했다. 참으로 비참한 일본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는 추호도 일본사람들에게 굽히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저는 4학년 때부터 우등생이 돼 가지고 고등과 일학년 때는 급장도 하고, 고등과 2학년 말기에 철도시험도 어려웠는데 합격했어요. 우리학교 졸업반 중에서 세 명이 합격했다고 교장선생님께서 조회시간에 근래에 없는 경사다고 자랑스레 말한 것이 생각납니다.“


    그는 유난히 총명하고 성실한 성격 탓에 일본국민학교(8년제로 7,8년 학생은 고등과 생이라 함.) 고등과 시절에는 급장으로 학생회 활동도 활발히 하는 등 주위로부터 많은 신임을 받았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열일곱의 나이로 동경철도국 직원 신규채용 시험에 합격해 철도에 입사하게 된다. 


    스물네 살에는 일본철도 근무 7년 만에 판임관(우리나라 사무관)이 되어 제모와 제복을 입고 금색 판임관 마크를 달았다. 또 그는 동경철도국에서 주최했던 투탄경기(증기기관차에 불을 때기 위해 석탄을 정확하게 던지는 경기)대회를 했는데, 전국 28개 기관차사무소에서 선출된 80여명의 선수 중에서 2등을 차지해서 축하환영회도 받았다.


    특히 그는 새로운 직급에 발령을 받아 자기소개를 할 때는 ‘나는 여러분과 환경이 다른 조선 사람이다.’라고 뚜렷이 국적을 밝히기도 해 일본사람들로부터 힐책을 당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우리가 물러간 철도는 바로 끝장이 날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했던 일본인에게 우리 철도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이를 악물고 일했다고 한다. 그 증표는 퇴직당시 받은 대통령녹조훈장이다.


    그의 자서전 앞부분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역사는 아득한 옛날부터 이 시대에 흐르고, 이 시대는 또 미래의 시대에 그 많은 사연을 어김없이 전해 줄 것이다. 나도 이 시대의 한 사람으로써, 내가 겪었던 조그마한 사연들이 우리 후손들에게 무엇인가 보탬이 될까 하여 이글을 한자 한자 정성들여 자필로 써 본다.”라고 말이다.


    현재는 순천시에서 관리하고 있는 철도박물관을 비롯해 잘 보존된 철도관사 2~3채를 기적소리 펜션으로 개조해 당시의 철도사람들의 이야기와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이외에도 철도관사마을은 우리나라 철도역사와 교통역사를 말해주는 증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교통의 중심지인 서울, 대전, 부산, 순천, 영주 등 5개 지방철도청을 두었는데, 그중에서도 순천지방철도청이 있는 철도관사마을은 양택지로써 제일 크게 조성되었을 뿐 아니라 현존하는 건물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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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참살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9-05-27 06:28 송고 2019-05-27 06:30 편집
    순천철도관사역사와 철도이야기 / 김용수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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