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철이다. 이맘때면 가을을 만끽하려는 등산객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단풍객들이 뜸하다. 우리나라 오색단풍의 절정은 설악산일 것이다. 한반도북쪽에서부터 물들어오는 단풍이 남쪽까지 올쯤에는 겨울로 접어든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가을의 끝자락에 접어들면 남쪽사람들은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명산과 사찰을 찾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 중에서도 황악산 줄기의 김천의 직지사와 조계산 줄기의 순천의 송광사는 유서 깊은 사찰로 닮은꼴이다.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 등 유명세를 띠고 있을 뿐 아니라 단풍까지도 아름답게 물드는 계곡을 끼고 있어 단풍객들이 즐겨 찾고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도 순천 송광사와 김천의 직지사는 호국의 성지나 다름없다. 16국사를 배출한 송광사는 3대사찰의 하나이고, 직지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과 사명대사의 활동무대로 호국성지였다. 그러한 까닭인지, 김천의 직지사와 순천의 송광사는 호국의 유명사찰로써도 널리 알려져 있다.
호남정맥에 우뚝 솟은 순천의 조계산은 승보사찰인 송광사와 태고총림의 선암사를 동쪽과 서쪽에 품고 있다. 특히 두 사찰을 이어주는 옛길과 굴목이재는 단풍 길로도 유명하다. 도보로 4시간쯤 소요되며, 초등학교이상이면 가능한 등산로다. 옛길과 굴목이재를 걷고, 보리밥집의 보리밥을 먹어보면 조계산의 진미를 알 것이다.
게다가 황악산에 자리하고 있는 김천 직지사는 백두대간의 큰 고개 추풍령을 넘는다. 추풍령은 조선시대에도 한반도 중앙과 영남을 잇는 고개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이다.
따라서 황악산 동쪽 기슭에 터를 잡고 있는 직지사는 직지천이 흐르고 있다. 봄이면 봄꽃으로, 여름이면 푸른 숲으로, 가을이면 단풍으로, 겨울이면 설화로 사시사철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경관을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을단풍은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마음까지도 사로잡는다.
직지사는 418년(눌지왕2년) 신라의 아도 화상이 창건했다. 임진왜란 때 거의 다 불에 탄 후 400년 가까이 허름하게 남아 있다가 1970년대 이후 일으킨 불사 덕에 일약 대가람으로 변모했다. 아도 화상이 손가락으로 절터를 가리켜 절을 짓게 해서 직지사가 되었다거나 능여대사가 절을 확장하면서 손으로 측량한 데서 절집 이름이 유래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직지사의 ‘직지(直指)’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 즉 ‘사람이 갖고 있는 참된 마음을 똑바로 가리켜 밝게 되면 부처가 된다.’는 뜻이다. 마음속의 부처를 갈고 닦으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아마도 직지사처럼 역사적 사연을 많이 지니고 있는 사찰도 없을 것이다. 즉, 팔공산 전투에서 고려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에게 포위되었다가 신숭겸의 도움으로 탈출해 이곳으로 피신했던 곳이다. 또 임진왜란의 위대한 승장인 사명대사(泗溟, 1544~1610년)가 이곳서 출가한 사연도 있다.
이뿐 아니다. 천 개의 불상이 조성돼 있다고 해서 천불전(千佛殿)으로도 불리는 비로전(毘盧殿)은 임진왜란 당시 화마를 피한 유일한 건물이다. 고려 초기 경잠대사가 경주 남산의 옥돌로 16년간 빚었다는 천불전 불상들은 모두 표정이 다르다. 불상 중에는 알몸인 불상이 하나 있는데, ‘법당에 들어서자마자 이 불상을 발견하면 반드시 아들을 낳는다.’는 재미있는 속설이 전해온다. 경내엔 석조약사여래좌상(보물 제319호) 등 여러 점의 보물이 있다.
비로전 용마루 너머로 보이는 황악산(黃岳山, 1111m)은 산림청이 선정한 ‘한국의 100명산’에 속할 정도로 숲이 빼어난 산이다. 직지사는 운수봉, 백운봉, 비로봉, 형제봉, 신선봉, 5개의 봉우리에서 흘러내린 물이 하나로 모인 계곡 너른 터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일까? 황악산 등산로는 직지사를 기점으로 자연스레 연결된다. 가장 인기 있는 직지사~백련암~운수암~백운봉~비로봉(정상)~형제봉~직지사 회귀 코스가 약 5시간 정도 걸린다.
필자는 이번 직지사에서 얻은 글귀가 있다. 오유지족(吾 唯 知 足)이다. 한자어 네 글자 모두 입口자가 공통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이를 중심에 두고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상하좌우의 각 방향에 한 글자씩 배치한 글귀가 있었다. 그것은 곧 “나는 오직 만족함을 알 뿐이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맑은 물 한 잔으로 마른 목을 축이고 마음까지 넉넉히 채워가라’는 글귀였다. 만사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긍정적인 사고와 낙천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건강은 물론 대중건강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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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7 06:5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