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케
12월이다.
곳곳마다 송년모임이 한창이고 음주가무가 뒤따른다.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되돌아보는 시간위로 때로는 서운하고 즐거웠던 시간들이, 때로는 생각조차하기 싫은 고난에 시간들이 아롱대며 연말분위기에 편승한다.
어쩌면 연말연시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뭔가 모르는 아쉬움을 남기게 하는 재주를 지녔는지도 모른다. 서로가 그리워하고 보고파하는 사람끼리 꼭 만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듯 12월 모임은 부지기다.
그래서일까? 12월에 접어들면서부터 이름난 음식점들은 예약손님이 밀려서 연말모임자리 구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특히 순천만정원을 도심에 둔 순천음식점들은 남도음식문화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어 많은 관광객이나 외지인들의 예약손님이 늘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그 연유는 자연환경에서 비롯된 영향이 아닐까 싶다.
옛말에“여행을 가더라도 누구하고 가는가에 따라 즐거움이 다르듯, 음식을 먹더라도 자연환경과 분위기에 따라 맛이 다르다”고 했다.
산과 강 그리고 바다가 어우러져 수려한 경관 속에서‘개미’내지는‘그늘’로 만들어진 순천음식은 남도음식의 진미라 아니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백반에서부터 짱둥어탕에 이르기까지 모든 식탁에 오르는 음식들은 시김새(삭힘새)와 왱병문화가 곁들여 있다.
게다가 그늘 있는 소리, 그늘 있는 시, 그늘 있는 그림, 그늘 있는 판소리, 그늘 있는 사람(품새가 넉넉한 사람) 등이 음식문화로 이어지고 있는 순천음식은 외지인들에게 큰 인기다.
여기서 송수권 시인의 시에서 우러나온 남도음식문화를 접해보자, 왱병은 전라도 사투리(앵병)로 부뚜막 위에 놓인 가전 식초병을 말한다. 옛날에는 촛병의 초눈(초산박테리아)과 이궁지의 불씨를 죽이면 그 집 며느리는 쫓겨났다는 속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캄캄한 대숲 오래된 집 부뚜막엔 언제나 왱병 한 개가 놓여 있습지요. 왱병속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가전비법으로 전해져 오는 식초 눈이 살아있어 들척지근* 혀끝이 오그라 붙기도 하지요. 남도 사람들은 이 맛을 두고 왱병이 운다고 합니다. 봄바람 불어 한 번, 가을바람 불어 또 한 번, 그래서 앵병을 아예 왱병이라고 고쳐 부르는데 그 병 모가지만 보아도 눈이 절로 감겨오고, 황새목처럼 목이 쩔룩거려옵니다.
봄은 주꾸미 철이고 가을은 전어 철입지요. 부뚜막 왱병이 한자리 얌전히 있지 못하고, 오도방정 떠는 통에 구들장 들썩거려, 빙초산 초파리들처럼 잠 못 이루는 밤이 시어집니다. 앞대 개포, 주꾸미 배 들었나, 전어 배들었나, 한겨울 밤에도 허리가 쑤시고 아린 가슴 늙은이는 잠 못 듭니다. 죽을 때도 허공에 마지막 깍지손 얹고, 왱병 모가지 잡는 시늉하며 손 무덤 짓습니다.
그래서 남도 사람 소리는 왱병 모가지 비트는 소리로 통성도 되고, 수리성이 됩니다. 또 이것을 시김새 소리라고도 합지요. 시김새 붙은 소리는 왱병 속에서 왔기에 소리 중에서도 땅을 밟는 뱃소리, 하다못해 한바탕 바가지로 설움을 떠내는 큰 소리꾼도 되고 명창도 되는 것입지요.// 「왱병」전문
첫눈 오는 밤이었다.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순천만정원길목에서 ‘왱병’이라는 시를 읊조리는 시인을 만났다. 그는 순천만정원을 탐방한 후, 순천음식을 맛보기 위해 모 음식점에 들려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왱병’이라는 싯귀를 떠올렸다고 한다.
또 그는 갈대그림을 잘 그리는 손준호 화백의 갈대그림을 보노라면 바람의 움직임을 통해 바람의 성질을 알 수 있듯이, 순천음식을 통해 시와 그림 그리고 낭만이 깃든 순천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고 했다.
아무튼 순천음식은 시와 그림 그리고 낭만이 깃든 음식으로써 남도음식문화를 계승할 뿐 아니라 어머니와 누이가 삭힌 情문화가 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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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1 21:02 송고
2014-12-17 08:29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