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낙비는 아스팔트를 후려치고 / 괴성의 몸부림은 밤 도시를 껴안는다 / 빗살에 기대어 무작정 걷는 수탉 / 현란한 불빛에 젖어 / 반기지 않는 카페로 숨어든다 / 한 잔 / 두 잔 / 음악은 기어들고 / 온갖 시름 깊어질 때 / 무심한 파수꾼 / 떠날 시간 알린다 (필자의 밤비 전문)
밤비가 내린다. 세찬 소낙비가 내리다가 가랑비로 바뀐다. 있어달라는 이슬비 일까? 떠나가라는 가랑비 일까?
당을 떠날 수도, 있을 수도 없는 정치노름에서 긴 한숨만을 내 쉬고 있는 유승민 위정자의 속내가 타고, 또 타들어 간다. 잘못도 없으면서 여당의 원내대표를 사퇴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정치노름의 희생자가 아닐 수 없다.
종잡을 수 없는 정치판이다. 정치가뭄으로 타들어가는 현실정치에서 한줄기 소낙비가 쏟아졌다. 하지만 아스팔트만 후려치고 변죽만 적셨을 뿐, 정치가뭄은 해소치 못했다. 그것도 유승민이라는 견고한 성품의 위정자가 있었기 때문에 국민들의 마음 밭을 조금이나마 적셨지 않았나 싶다.
국민들의 목마름이나 마음 밭이 타들어가고 있는 것을 위정자들은 왜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일까?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는 것인지, 정말 모르는 것인지, 도통 속내를 알 수 없다.
어쩌면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인내해야 한다. 옳은 것도 그릇된 것도 없다. 싫은 것도 좋은 것도 없다. 자신의 생각이 다른 위정자와 다소 차이가 있을 뿐, 대동소이하다는 정치론으로 귀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치행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비틀대며 걸어가면서도 기회를 노리며 최후의 일인자가 될 때까지, 권력암투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내일의 리더이고, 오늘에 정치인인지도 모를 일이다.
일례로 유승민 위정자가 직접 썼다는 '사퇴의 변'을 상기해 보자. 약 1000자 분량으로, 극히 짧았다. 그러나 그 표출된 속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청와대와 친박계를 향한 송곳 같은 단어들이 비수처럼 번뜩거렸다.
“저는 오늘 새누리당 의원총회의 뜻을 받들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납니다.”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정치는 현실에 발을 딛고 열린 가슴으로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진흙에서 연꽃을 피우듯 아무리 욕을 먹어도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라는 신념 하나로 저는 정치를 해 왔습니다. 더 이상 원내대표가 아니어도 더 절실한 마음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을 계속 가겠습니다.”
절제된 “사퇴의 변”에서 그의 '따뜻한 보수'를 향한 정치의 길은 그만둘 생각이 없음을 강하게 내비쳤다. 16년 간 날마다 정치에 대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던 그가, 또 다시 정치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물었을 때는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당장이라도 오늘에 정치현실을 비판하고 떠나려 했지만, 결코 이 시점에서는 비켜서지 않겠다는 강인한 모습을 보였다.
잠시 생각해 볼 일이다. 투표로 뽑힌 여당의 원내대표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숙청당하는 것을 보고 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민주주의의 근본을 따지기 전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대통령에게 일언반구도 못하고 그저 벙어리 냉가슴 앓듯 가슴만 치고 있다. 오직 다음 총선을 겨냥한 정치노름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내년 총선에서 다수 석을 확보하려는 여당의 계산된 정략에서 비롯된 아부성릴 것이다.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는 박근혜대통령의 비위를 맞추는 위정자들이 줄을 서고 있는 정치판에서 어느 누구도 반기를 드는 위정자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 곧 정치노름이고 최후의 정치일인자다.
그러나 어쩌랴! 최후의 일인자도 시간이 흐르면 떠나야 한다. 무심한 파수꾼이 떠날 시간 알리기 전에 떠나야 할 준비를 해야 한다. 어둔 밤 도시를 껴안고 빗살에 기대어 무작정 걷는 수탉처럼 반기지 않는 카페를 찾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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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9 11:24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