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변환_2011년11월%2030일%20082

2월은 무척 바쁜 달이다. 3학년은 학교를 떠나고 1,2학년은 한 해를 마무리 짓고 진급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나무에 나이테가 있고 마디가 있듯 학교도 하나의 획을 긋고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되는 시점이다. 학년을 올라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더라도 떠밀려 올라갈 수밖에 없다. 우리네 인생이란 것이 원래 다 그런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 것은 별로 없다. 주위 여건에 의해 피동적으로 이리 밀리고 저리 부대끼는 신세다. 그렇다고 매사를 운명에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곧 졸업식에 이어 종업식이 있을 것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행사지만 느끼는 바는 매년 다르다. 아이들이 점점 더 어려보이는 것은 그 만큼 내가 늙어간다는 증거일 것이다. 학생들의 절대연령은 변함이 없는데 내가 느끼는 상대적 나이 차이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식장 분위기도 옛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달라졌다. 정중하고 엄숙하며 차분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앞쪽에서 진행되고 있는 의식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네들끼리 자유분방하게 떠들며 희희낙락하기 일쑤다.

목이 메어 송사(送辭)를 읽어 내려가지 못하는 재학생도 없고 눈물이 앞을 가려 답사(答辭)를 계속하지 못하는 졸업생도 찾아보기 어렵다. 미리 제작된 영상물을 중심으로 축제를 벌이듯 웃고 즐기는 졸업식으로 변했다. 3년간의 학교생활을 압축한 내용들이 담겨 있어 때로는 긴장하게 만들고 때로는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기도 한다. 시대가 바뀌고 풍속도 달라졌다. 사고방식 또한 혁명적인 변화를 거쳤으니 지극히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학교도 전체 사회의 한 부분이니 바뀌지 않을 수 없다.

학교를 떠나는 그들에게 인생의 좌우명이 될 만한 멋진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도 여의치 못하다. 시선을 모으고 주의를 끌 수 있는 재주가 모자라기도 하겠지만 정신을 집중해서 끈기 있게 들을 줄 모른다. 유감스럽게도 훈련을 시키지 못했다. 질서교육과 정신훈련을 강조하고 사회성 교육을 강도 높게 실시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훈육이 대세다.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며 어렵고 힘들어도 인내심으로 견뎌내는 정신력이 현저하게 약화되어 손을 쓰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선생님들의 말씀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따르기를 바라지 않는다. 존경은커녕 정면으로 도전하는 아이들이 교실을 점령하고 있으니 그 분들의 어깨가 축 처지고 말씨와 발걸음에 힘이 실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날 학교는 혼돈스럽고 불안하며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위기상황에 내몰려있다. 휘몰아치는 광풍의 한 가운데에 갇혀 방향을 잃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교육이라는 멍에 때문에 항변(抗辯)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무자비하게 두들겨 맞아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었다.

폭력이나 자살 문제만 해도 그렇다. 많아야 둘인 아이를 그 부모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판국에 많게는 천 명이 훨씬 넘는 아이들을 맡아 관리하는 학교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인권이니 자율이니 하는 한가한 주장들이 판을 치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고분고분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참으로 안이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어찌 학교가 온전하길 바랄 수 있을까.

몇 년 전 자매결연기관 방문 차 중국 연변지역을 돌아볼 때였다. 민족의 성지 백두산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머나먼 길을 소형버스에 몸을 싣고 달리던 중이었다. 차창 밖 저 멀리서 눈에 확 빨려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허름한 단층 시골학교 지붕 위에 ‘尊師愛生’이라고 큼지막하게 써놓았다. 무릎을 쳤다. 교육의 핵심을 압축한 명언 중의 명언이 아닌가. 학생은 선생님을 존경하고 선생님은 학생을 사랑한다면 학교현장에 무슨 문제가 있으랴. 존경과 사랑이 넘치는 학교, 그건 이룰 수 없는 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