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11월%2030일%20001

나에게는 할머니가 한분 계신다. 친할아버지, 친할머니께서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셔서 얼굴한번 보지 못한 분들이시고, 외할아버지께서도 작년에 돌아가셔서 조부모님이 한분밖에 안 계신다. 그래서인지 외할머니는 나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이시다. 어렸을 때 꽤 오랫동안 같이 살면서 유치원에 갔다 온 나를 반겨주시기도 하셨고, 간식을 사먹으라며 손에 동전 몇 개씩을 쥐어주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내가 중학생이 된 지금도 여전히 할머니 댁에 갈 때면 할머니께서 가지고 계신 것들을 하나라도 더 쥐어주시려고 하신다. 내가 초등학생 이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놀고 있었는데, 옆에 앉아계신 할머니께서 작은 크기의 흑백사진을 가지고 보고 계셨다. 할머니께서 종종 가방에서 그 사진을 꺼내놓고 한참동안 바라보고 계시던 것을 자주 보았다. 무슨 사진이길래 그렇게 자주 꺼내보시나 궁금해서 할머니 옆에 앉아서 같이 사진을 보았다. 사진에는  할머니 한분이 계셨는데, “할머니, 사진 속에 계신분이 누구에요?”하며 물어보자 할머니의 엄마, 즉 나의 증조할머니라고 하셨다. 그때 처음으로 나에게도 지금의 엄마가 있는 것처럼, 할머니께도 엄마가 계셨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항상 나와 언니를 돌봐주시고, 엄마를 키워주셨다는 생각만 해서 할머니께도 엄마가 있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할머니께서는 그 사진이 딱 한 장 남은 엄마사진이라고 하시면서 소중히 하셨다. 하지만 사진이 오래 돼서 그런지 액자가 없으면 쉽게 찢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문구점에서 작은 액자 하나를 사서 액자에 사진을 넣어드리자, 할머니께서 정말 좋아하셨다. 그 일이 나에게는 할머니께 해드린 작은 일이었는데, 할머니께는 정말 의미 있는 일이었나 보다. 할머니께서 몸이 안 좋으셔서 요양원에 계셨을 때 부모님을 따라서 할머니가 계신 요양원에 간 적이 있다. 병실에는 우리 할머니 말고도 많은 할머니 들이 계셨는데, 그곳에서 할머니께서 손녀가 왔다고 자랑하시면서, 뿌듯해 하셨다. 할머니 식사를 도와드리는데 옆에 계신 다른 할머니께서,“ 손녀가 참 착하네”하시면서 칭찬하시자, 할머니께서 “얘가 참 정이 많아~”하시며 내가 초등학교 때 증조할머니 사진을 액자에 끼워드린 일을 말씀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내 자식들 아무도 안 해준 걸, 이것이 해줬어”하시면서 말이다.
 그때 병실에서 할머니께서 흘리신 눈물을 보면서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효도는 어려운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할머니께 드린 작은 액자가 할머니께 큰 의미가 된 것처럼 말이다.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온 사랑이라면, 효도를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나 싶다. 엄마께서 할머니댁에 가자고 할 때 가끔 싫을 때도 있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효도는 별게 아니야. 할머니랑 밥 한 끼 같이 먹고 얼굴한번 보는 게, 그게 효도야” 라고 하신다. 그럴 때면 항상 드는 생각에 금방 마음이 바뀐다.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셨을 때 내가 할아버지께 내 마음을 표현한 적이 있었나, 쑥스러움에 한번이라고 꼭 안아드린 적이 있었나. 지금 내가 아무리 후회해봤자, 이제는 할아버지의 손과, 사랑을 느낄 수는 없다. 먼 훗날 할머니께서 내 곁에 계시지 않을 때, 할머니께 못해드린 것에 대한 후회가 떠오르지 않게 세상에서 딱 한 분인 사랑하는 할머니께 자주 찾아뵙고 사랑을 표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