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_cf_2c_CF_16zhl_Bc7u_2897_3
불일암에 가면 법정은 없고
법정의 의자만 남아 있다
중이 되지 않았으면 목수가 되었을 것이라는
자부심으로 만들어진 의자는
땔감직전에 구조되어 의자가 되었다
스님이 출타하고 나면
의자는 심심했던 것이다
적막과 고요는 이력이 났지만
무엇으로든 한 가지라도 공덕을 쌓고 싶어
다람쥐 산토끼들이 찾아오면 박대하지 않고
같이 놀아주다가
산그늘이 내려오면 너도 좀 쉬어가거라 하고
자리를 내주었을 것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구름이 산마루에서 다리쉼을 하듯이
무거운 짐 부려놓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을
의자는 알고 있었을까
많은 사람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쉬어가게 하면
그게 공덕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의자는 스님처럼 비우고 버리는
수행자의 삶을 살아왔다
스님은 가고 없지만
묵언정진으로 일관하고 있는 의자는
그 자리를 지키는 것 만으로도
하나의 종교가 되고 있다
(2013. 12. 12.)
<시작노트> '스님의 의자'라는 제목의 다큐를 보고 가슴을 치는 그 무엇이 있었다.
스님의 입적은 한때 나를 공황상태에까지 이르게 했다. 내 문학의 자양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스님의 신간을 기다리면서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러한 기대마저 저버려야하는 현실이 슬프기만 할 뿐이다.
용수야, 또 한 해가 저물었구나. 어찌 감회가 깊지 않을 수 있겠는가.항시 강건하고
새해를 잘 설계하는 년말이 되기를 바란다.
(2013. 12 12. 송 준 용 씀)
<저작권자©참살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3-12-13 10:4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