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행의 바른길"이라는 글짓기대회가 열려 그 입상 작품들을 참살이뉴스 탐방편에 올린다. 효와 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미풍양속이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참고할 만한 자료이기에 날마다 1편씩 게재코자 하오니 애독자분들의 휴식처가 됐음한다 (편집자 주)
초등부 글짓기
크기변환_2011년11월%2030일%20235
아빠 없이 엄마와 고생하며 산다고 유난히 우리 자매를 사랑해 주시고 챙겨 주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병상에 계시던 앙상한 할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푸른 바다처럼 손발이 차갑고, 모든 몸이 굳어진 채 심장만 뛰고 있는 것 같았던 우리 할머니. 그걸 본 나는 곧 할머니가 우리 곁을 떠난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때마침 여름방학이라 내가 병간호를 하던 중, 마지막으로 할머니께 해드리고 싶은 것을 몇 가지 정해 실천하기로 결심했었다.
첫째는 할머니 발 닦아드리기, 둘째는 할머니 머리 감겨드리기, 셋째는 할머니와 많은 대화 나누기, 넷째는 할머니와 나와의 약속 정하기, 다섯 번째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드리기, 여섯 번째는 할머니와 같이 여행가기, 일곱 번째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우리 가족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기로 마음을 먹은 뒤, 낮이면 직장에 나가셔야 하는 엄마를 대신하여 나는 며칠 째,할머니를 밤새 간호했었다.
커튼 사이로 아침의 첫 햇살이 들어오더니 곧 이어 병실 안에 햇볕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분 뒤, 할머니께서 일어나시자 나는 어제 내가 결심한 일 중 할머니 발을 닦아드리는 것을 실천하기로 했다. 수건을 따뜻한 물에 적셔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주름 사이에 누런 발톱이 몇 개나 자리 잡고 있는 할머니의 여윈 발을 정성껏 닦아 드렸다.
그러고 나자, 아침밥이 나왔고 병실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하나 둘 씩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할머니는 식사하기를 거부하셨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마음이 아팠고, 힘이 없어 보이는 할머니를 바라보기만 할 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오후 3시 쯤 할머니와 나는 우리 가족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를 하면서 할머니는 그간 있었던 일을 말씀하시는데 말을 듣고 있던 내 눈에서는 언제부턴가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술만 마시면 가족들을 괴롭힌 우리 아빠, 그리고 아빠 때문에 우리 가족이 사는 집에 불이 났던 일, 부모님들이 이혼하게 된 일 등을 말씀하시는 할머니께서도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셨다. 할머니는 말없이 힘없는 손으로 내 얼굴을 만지시며 가냘픈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시는데 듣고 있는 나는 이야기를 들을수록 더 크게 울음이 나왔다.
얼마 동안 할머니 곁에서 운 나는 할머니와 약속을 했다. 만약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할머니께서는 하늘나라에서라도 나를 잘 보살펴 주고 나를 응원하면서 내 분신처럼 옆에 있어주시겠다고 하셨고, 나는 할머니께 더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고 더 씩씩하고 밝고 활기찬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새벽 2시쯤 소란스러운 소리에 눈을 떠 보니 엄마가 곁에서 울고 계셨다. 왜 우시냐고 엄마께 여쭈어 보았더니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었을 땐 터져 나오는 내 눈물을 숨길 수 없어 통곡을 하였고 할머니께는 침대 위 하얀 이불 아래에 싸늘한 시체가 되어 누워 계셨다.
할머니를 장례식장으로 옮긴 우리 가족들은, 관절이나 허리가 안 좋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 친구 분들이 오시자, 한 분 한 분씩 상으로 모셔서 극진히 대접해 드렸다. 그리고 아빠 엄마를 위로 하러 오신 사람들로 복잡한 날을 보냈다.
다음 날 할머니를 유달 공원묘지에다 모시고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와 약속했던 것 중 해드리지 못한 것이 몇 가지 있어서 아쉽고 좀 빨리 실천하지 못한 게 후회가 되었다. 지금 할머니가 살아계신다면 할머니께 해드리지 못한 것들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다.
‘효도’는 ‘부모님을 정성껏 잘 섬기는 도리’이다. 더 이상 할머니는 우리의 곁에 안 계시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고 내가 어리광을 부려도 화 한 번 안 내시는 나의 하나 뿐인 친할머니로 간직되어 있다. 할머니는 내게 부모나 마찬가지인 존재여서 할머니께 효도를 잘 하지 못한 것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오늘도 하늘나라에서 변함없이 나를 지켜보고 계실 할머니! 비록 여행가기, 사진 찍기는 못했지만, 할머니께 세상 위에 우뚝 선 자랑스런 손녀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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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9 09:14 송고
2011-12-29 09:16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