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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오면 / 송준용 시인
2015-11-30 오전 9:42:36 참살이 mail yongsu530@hanmail.net




     
      며칠 전 강원도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눈 쌓인 강원도 산간지방은 백색의 세상으로 변해 있었다. 그것을 본 나의 가슴은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숨소리마저 가빠지는 것 같았다. 세수가 연장되면 감성도 그에 따르는 것일까. 희수를 넘긴 나이에 이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것은 아닌 것 같다. 늙어도 마음만은 청춘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중반의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동은 거의 폐허나 다름이 없었다. 전쟁으로 인한 폐허가 아니라 미개발로 인한 자연 그대로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수색동에 있는 ‘철도청보급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퇴근 무렵이면 직원들과 함께 꼭 들르는 곳이 있었다. 이름 하여 수색동 달래 집, 그때만 해도 숫한 세상이어서 그 곳에 가면 많지 않은 술값을 지불하고도 기분을 낼 수가 있었다.
      어느 해 눈 오는 날 밤이었다. 그날은 연말이었기 때문에 다른 때보다 많은 직원들이 참석한 것 같았다. 달래 집 문을 열자 주인보다도 종업원 아가씨가 반색을 하며 반겼다. 이미 몇 차례의 술자리 경험을 한 터라 그 아가씨는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이었다. 소주, 맥주, 양주… 그 집에 있는 술이란 술은 다 내놓았다. 안주도 마찬가지였다. 치킨, 꼼장어, 골뱅이… 끝이 없이 나왔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이 났다. 참석인원이 많다보니 그리 되었으리라. 어느 정도 술기가 오르자 즉석 노래방에서 몇 곡의 노래도 부르지 않았나 싶다. 한참을 놀다가 주위를 살펴보니 후배 한 사람과 나, 두 사람만 달랑 남아있는 것이었다.
      “야! 모두들 어디 갔지?”
      “집에 갔겠지요.”
      “뭐 집에 가? 의리도 없이…”
      순간 나는 발끈했지만 녀석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은 벌써 자정을 넘어 2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후배와 나는 그 집에서 나왔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때 갑자기 등 뒤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방범대원들이었다. 우리들은 도망갈 수도 없어 붙잡히고 말았는데 문제가 복잡해지고 말았다. 통금위반으로 즉결심판에 넘겨져 다음 날 벌금을 물고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날은 왜 그렇게 통금을 위반한 취객들이 많았던지 파출소 유치장이 비좁을 정도였다. 모두가 노숙자들처럼 보였다. 쑥대밭이 된 머리칼이며 꾀죄죄한 얼굴이며 남루한 옷차림이며… 갈데없는 구제불능의 인간들이었다. 그들의 구린내 나는 입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육두문자가 끝없이 쏟아졌다. 국가와 사회에 대한 불만이었다. 저물어가는 그해 연말에 보았던 유치장 속의 풍경이 오래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당시는 국가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일 차 경제개발과 이 차 경제개발이 끝난 시점이었지만 국민소득은 바닥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 내가 세 들어 살던 집은 역시 은평구 수색동에 있는 단독주택이었는데 사고는 바로 그 집에서 발생했다.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아침이었다. 내가 살던 방과 인접해 있는 방에 세 모녀가 살고 있었는데 세 사람이 모두 시체로 발견된 것이 아닌가. 연탄가소 중독 사고였다.
      곧이어 달려온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들은 회생하지 못했다. 임종의 시간도 잃은 채 무고한 생명을 앗겨버린 것이다. 가난한 것 밖에는 죄가 없었던 사람들. 나는 밤마다 그들의 환상이 눈에 밟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결국 다른 곳으로 옮기고 말았다. 그것만이 그들의 기억을 지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눈과 관련된 나의 추억(?)은 이렇게도 지난하다.

      천국으로 떠난 자들의 소식을 안고
      풍요와 빈곤의 벽을 허물며
      원망과 울분의 말들을 지우며
      십 리 지나 천 리 밖 만 리 밖에서
      치마폭 펄럭이며 오시는 이여

      필자의 제 2시집에 실려 있는 ‘첫눈’이라는 작품의 일절이다. 그처럼 지난한 세월을 관통한 사람의 작품이 어찌 밝고 건강할 수 있겠는가? 마치 흑백영화의 화면처럼 행간마다 어둠이 깔려 있지만 나는 아직도 그 어둠을 지워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그게 아닌 모양이다. 눈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대단한 것 같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고, 첫눈이 오면 연인들에게 혹은 친구들에게 들뜬 마음으로 버튼을 누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야! 너 지금 어디 있니?”
      “집에 있지.”
      “뭐하고 있는데?”
      “뭐하긴 그냥 집에 있는 거지.”
      “이 맹추야, 창밖을 좀 봐라. 이런 날도 방콕이냐?”
      마치 첫눈 오는 날 집에 있는 착실(?)한 녀석은 덜 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거리로 나와 눈을 맞으며 보헤미안이 되어야 하는가 보다. 이러한 풍조도 요즘 젊은이들이 만든 문화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나는 요즘 즐겨 듣고 있는 노래가 있다. 바로 ‘안동역에서’라는 노래이다.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오지 않은 사람아

      이 얼마나 애절한 가락인가. 모르긴 해도 요즘 젊은이들처럼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연인들이 있었나 보다.
      그런데 그 사랑이라는 게 어디 쉽기만 하던가. 해피엔딩은 이미 사랑이 아닌 것이다. 갈등이 있고 굴곡이 있고 불협화음이 있어야 사랑인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공식도 없지만  정답도 없는 게 아닐까. 이 노래 속의 연인들은 정답이 없는 사랑을 하다가 결국은 만나지 못하게 게 된다는 것이 노래의 줄거리 이다.
      첫눈이 와도 약속한 사람은 오지 않듯이 가버린 나의 청춘도 다시 오지 않는다. 안동역의 사랑이여! 돌아오지 않은 나의 청춘이여! (-)

    <저작권자©참살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5-11-30 09:42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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