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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것들은 다 소리를 낸다
오양심/건국대 통합논술교수
2011-07-11 오전 10:14:11 참살이 mail yongsu530@hanmail.net

     

    오교수

     

      삶 속에 뛰어들어 바쁘게 살아온 시간뿐이었다. 신명과 한통속이 되기 위해 용산극장에서 ‘들소리’라는 국악 토털 공연으로 역사의 안과 밖을 감상하고 있다. 피리, 대금, 해금, 장구, 북 등의 삼현육각이 총 동원되었다. 징, 꽹과리의 사물놀이도 곁들어진다. 토탈 공연 연주장은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큰 것, 중간 것, 작은 것 등이 종류에 따라서 선을 보이며 선반, 앉은 반의 연주를 흥겹다.

      우리나라는 삼천리반도가 금수강산이다. 봄은 금강산, 한라산, 소백산, 지리산 등의 산꼭대기에서부터 내려오기 시작했다. 놀기 좋은 지리산에 봄이 돌아오면 구례군 간전면 흥대리에서 태어난 어머니는 자식들을 데리고 지리산으로 화전놀이를 갔다. 처녀시절로 돌아가 머리에 진달래꽃을 꽂고 늴리리야 풀 향기를 날리며 봄 타령을 불렀다.
     

      6월이 되면 농번기가 시작되었다. 산에서부터 신명에 취한 어머니는 들판으로 내려와 보리와 밀 타작을 했다. 꿍따쿵, 꿍따쿵 북이 못 방귀를 뀌면 부지깽이 하나도 쉬게 하지 않았다. 찰랑찰랑 물이 찬 논두렁에 못줄이 쳐지고 푸른 모가 한 배미 두 배미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 아니다. 어머니의 마음에 거머리처럼 찰싹 앵겨 붙은 북이 소리를 맺어주고, 소리를 달아주고, 소리를 풀어주면 어머니는 흥에 겨워

      아침 해 두둥실 동산에 걸어놓고/ 이앙기 몰아가니 신바람 절로 나네/ 에헤야 상사나듸야 이 논판도 단 숨이라/ 또 한 배미 넘어가세 스리나 슬쩍 넘어가세/ 앞벌도 들썽들썽 뒤 벌도 들썽들썽/ 만석 벌 그 어데나 더덩실 춤이로다/ 에헤야 상사나듸야 못 방구 익어간다/ 또 한 배미 넘어가세 스리나 슬쩍 넘어가세/

    오늘은 녹파 만경 내일은 금파만경/ 모내는 마음에는 푸른 파도 넘실넘실/ 에헤야 상사나듸야/ 노래 싣고 기쁨 싣고/ 또 한 배미 넘어가세 스리나 슬쩍 넘어가세// ‘또 한 배미 넘어가세’ 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소리바람을 일으켰다.

      갈대가 무성해지면 아버지는 처갓집에도 다녀올 겸 섬진강변으로 갈대청을 따러갔다. 청을 따서 대나무로 만든 젓대의 청공에 갈대청을 입히고 손가락으로 은신하는 지공을 파고, 소리를 조절하는 칠성공도 팠다. 취구(나팔, 피리 등에서 입김을 불어 넣는 구멍)가 열리고 대 바람이 젓대 안에 가득해지면 아버지는 입술을 살며시 포개 소리를 밀어냈다. 젓대를 어깨위에 치켜들고 양손으로 지공을 막는 듯 열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저취로 맛을 내며, 평취로 대 바람을 가르다가 역취로 ‘청성곡’을 부를 때는 가슴이 먹먹했다.

      아버지는 육, 이오 참전용사였다. 육군 상사로 전후의 시체를 넘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몸을 바쳤다. 6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기다려 준 것은 폐허와 앞길이 막막한 가난뿐이었다. 살아갈 일을 안에서 찾지 못한 아버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우여곡절을 겪은 후 고향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힘이 들 때마다 대금을 옆구리에 끼고 살았다. 가난하고 막막한 시대를 살아내기 위한 아버지가 부르는 대금소리는 한숨소리, 신음소리, 칼바람소리였다. 아예 달빛에서 속으로 조용히 울기도 했다.

      피리는 바람잡이다. 약방의 감초처럼 거문고 가야금연주까지 꼽사리를 끼지 않은 데가 없다. 국악토털공연장의 무대 위에서 불어대는 피리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거슬러 올라가면 막내 동생 창섭이가 마음에 걸린다. 동생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꽃상여를 탄 어머니가 동구 밖으로 사라지자 가출을 해버렸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추스르지도 못한 식구들은 또 한 번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혼비백산이 되어 동생을 찾는데 혈안이 되었지만 동생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막내 동생과의 상봉은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워주지는 못했다. 그 자리를 대신 해 준 것은 느닷없는 피리였다. 막내 동생 손에 닿는 것은 모두 피리가 되었다. 풀잎을 따서 불면 풀피리가 되고, 꽃잎을 따서 불면 꽃 피리가 되었다. 보릿대를 따서 불면 보리피기가 되고, 복숭아 나뭇가지를 꺾어 불면 도피피리가 되고, 버들가지를 따서 불면 버들피리가 되었다. 어머니의 사랑을 유독 많이 받고 자란 막내는 피리를 불면서 그리움을 삭혔던 것이다.

      장고는 ‘들소리’축제 공연장을 지 맘대로 주물렀다 폈다가 한다. 하얀 박꽃같이 어여쁜 얼굴로 얇은 모시적삼을 입고 쪽머리에 옥비녀를 꽂고, 물고기같이 미끈한 허리에 비스듬히 둘러맨 장고춤은 좌중을 부채질하며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신끼가 붙었는지 삼현육각 풍물패와 함께 가락을 녹여낸다. 궁채와 열채를 든 손으로 덩쿵따 덩쿵따 춤을 만들어내다가 ‘땅도 땅도 내 땅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다’라고 하는 구음으로 야무지게 쐐기를 박아놓고, 천상천하유아독존(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제 세상을 만들어 간다.

      나팔꽃같이 생긴 동팔랑이 하늘을 향해 새끼를 오일장에 내보낸 소처럼 목을 놓고 운다.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세상이 울고 있다. 국악토탈공연장에 자리를 메운 사람들이 눈물을 찍어낸다. 태평소가 목이 매이면 우는 것이 아니라 웃는 것이다. 슬플수록 흥겨운 신명이 나는 것이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이순신 장군’의 애간장을 끓어오르게 한 것이 바로 태평소인 호가소리이다. 왜구의 노략질이 남의 애를 끊는다고 말한 장군의 안타까운 모습이 눈앞에 삼삼한 것은 무대 위에서 가슴에 불을 지르는 태평소 때문이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부터 우리문화인 국악은 갈 길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 그리고 내 동생, 이순신 장군은 가슴에 한이 깊을수록 소리의 빛을 이어왔다. 기뻐도 슬퍼도 우리의 국악을 사랑했다. 소리판이 살판이라는 희망을, 아픈 것들은 다 소리를 낸다는 삶의 이치를 깨닫게 해주었다. 용산극장에서 ‘들소리’라는 국악 토털 공연으로 역사의 안과 밖을 감상할 수 있어서 천만 다행이다.

    <저작권자©참살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07-11 10:14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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