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은 부처님 팔촌만도 못하다’는 속담이 있다. ‘사돈지간은 워낙 어려운 사이라서 먼 이웃만도 못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두 사돈이 만난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깍듯한 예의범절, 나눔과 섬김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처음 알았다. 잃어버린 정을 되찾아주는 일이 얼마나 눈물겨운지도 알 수 있었다. 어른으로서의 도량(度量)이 무엇인지를 몸소 가르쳐준 살붙이, 피붙이들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달은 것도 순간이었다.
“ 어르신 함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 예, 저도 사돈어른 덕분에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음에는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안 녕히 가십시오.”
사돈네 팔촌끼리 점심을 먹고 난 후 헤어질 때 나눈 대화 내용이다. 식당에서부터 그들의 대화는 8월의 폭염보다 더 뜨겁게 나를 감동시켰다.
“ 처음 만났지만, 사돈어른을 뵈니까 든든합니다. 자주 찾아오셔서 우리 사돈 좀 도와주 십시오.”
“ 오히려 제가 부탁을 드려야지요. 사돈어른께서 우리 갱애 좀 도와주십시오.”
“ 둘이 지금 무슨 말을 허는 거여! 밥이나 묵읍시다. 이~”
“ 사돈어른, 우리 갱애는 세상물정을 잘 모릅니다. 지 몸은 돌보지 않고 교육을 한답시고 가정도 뒷전으로 미루고 수십 년 고집불통으로 살고 있네요. 우리 이모와 이모부가 다 돌 아 가셔서 정 붙일 데가 없이 살아가는 것 보면 짠해서 똑 죽겠어요.”
“ 저도 갱애 씨가 얼마나 귀하게 컸는지 학교 다닐 때부터 잘 압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 닐 때 갓 시집 온 우리 작은 어머니 집에 많이 놀러 갔습니다. 작은어머니 시어머니 되는 우리 할머니도 경애씨 집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 다녔습니다. 그때 사돈처녀는 참 곱고 예 뻤지요. 지금도 그때 모습과 다름이 없지만요”
“ 이모 집은 부자여서 우리 갱애는 고생이라고는 몰랐어요.”
“ 글쎄요. 저도 시집가서 잘 사는 줄만 알았지, 밤잠을 설쳐가며 고생하고 있는 줄은 정 말로 몰랐습니다.”
“ 그러니까 사돈어른, 꼭 좀 돌봐주십시오”
“ 그럽시다. 우리가 무슨 교육을 알겠습니까? 경애 씨가 하시는 일이 잘되기를 마음으로 나마 함께 응원합시다.”
그랬다. 한 사람은 형부의 조카로 나보다 두 살 연하인 사돈이었다. 또 한 사람은 나와는 동갑네기로 막내 이모의 딸이었다. 둘은 점심시간 내내 자신들의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직 교육이라는 한길만을 고집하며 어리석게 살아가는 나의 앞날에 대해서만 걱정을 했다.
이모 딸인 성자와 나는 나이가 같은 동갑내기였다. 하지만 성자는 어머니 역할을 도맡아 왔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고추장, 된장, 김치를 담아다 주는 일을 했다. 그것들을 소리 소문 없이 경비실에 맡겨놓았을 뿐, 단 한 번도 베푸는 일을 생색내지 않았다. 황당한 일은 나는 물건을 받으면 고맙다는 뒷말을 할 줄 몰랐다. 다만 이모 딸인 성자가 간절하게 생각이 나면 병아리 눈물보다 작게 눈물 한 방울 찔끔거릴 뿐이었다. 이심전심 마음이 통한 날이면 성자는 전화 저쪽에서
“ 별일 없냐?, 별일 없으면 됐어, 잘 있어라!”
달팽이처럼 목을 내밀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두 세 마디로 휘휘 둘러보고는 짧게 생사를 확인하면 그뿐이었다.
형부의 조카는 고향에서 만난 수십 년 후, 얼마 전 병원에서 만났다. 간 이식 수술을 한 형부를 문병하러 가러 간 그날이었다.
“경애 씨!,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살아있으니 만나는 날도 있네요.”
하며 깜짝 반가워했다. 반세기의 세월이 말해 주듯이 나의 모습도, 그의 모습도 봄처럼 싱그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알지 못할 그 옛날의 정겨움이 가슴 한복판에서 물씬 솟아오른 것은 훈김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불어주었던 '경애‘라는 이름을 불러준 사람이, 이모 딸인 성자 말고 이 세상에서 또 한 사람 있어서, 울컥 감정이 복 받쳤다.
그는 자신의 일상생활을 모두 제쳐두고 울산에서 서울 아산병원 응급실로 촌각을 다투며 실려 온 작은 아버지의 생사문제에 25시간을 바치고 있었다. 간병을 하는 작은 어머니의 건강까지 챙기며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병문안을 간 사돈인 나에게도 인정을 쏟았다. 서울의 정서에 익숙해진 나는, 보기 드문 그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손 한 번 들고 발 한 번 옮긴다는 뜻으로, 크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를 이르는 말)을 지켜보며 잠시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그가 종가 집 종손이라는 것을 알고 난 뒤 공감을 했다. 종가 집 종손은 누구나,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었다.
‘어려운 일에서 구해주면 반드시 보답이 따른다.’는 뜻의 ‘절영지연(絶纓之宴)은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의 장왕 때 생겨난 고사성어다. 왕은 신하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모두 취기가 올랐을 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 등불이 꺼졌다. 그때 어둠을 틈탄 신하가 장왕을 모시는 여인의 옷고름을 끌어당겨 기지를 발휘했다. 여인은 상대방의 갓끈을 끊어버린 뒤 왕에게 고했다.
“방금 소첩의 옷자락을 당긴 이가 있었습니다. 갓끈을 끊어 제가 갖고 있으니 불을 켜서 그 자를 찾아내옵소서!”
잠시 망설인 왕은 곧바로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오늘은 과인과 함께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기는 날이니 모두 갓끈을 끊도록 하여라. 만 약 명을 어기는 자는 이 자리가 즐겁지 않다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수백 명의 신하들은 어둠 속에서 각자의 갓끈을 끊었다. 불이 밝혀진 뒤의 여흥은 더 무르익었다.
그로부터 3년 후, 초나라와 진나라 사이에 전쟁이 시작되었다. 선두에 선 장수의 활약은 종횡무진 극에 달했다.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분투한 덕분에 전쟁은 매번 승전고를 울렸다. 장왕은 그 장수를 불러
“내가 너에게 특별히 잘 해준 것도 없는데 어찌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았느냐?”
“저는 3년 전, 연회 때 술에 취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왕은 범인을 색출하지 않고 갓끈 을 끊게 하여 잔치를 무르익게 했습니다. 왕께서 용서해 준 은혜에 보답했을 뿐입니다.”
지금은 디지털시대이다. 생활은 편리하다 못해 적응하기에 복잡한 환경으로 치닫고 있다. 안방을 차지했던 바보상자 TV가 인터넷으로 연결되면서 스마트상자인 스마트 TV로 바뀌었다. 스마트워킹(Smart working)으로 재택근무까지 도맡고 있다. 목소리만을 주고받았던 유선전화에서 데이터는 물론이고 동영상까지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는 스마트폰까지 등장했다. 디지털기기의 혜택으로 인간 본연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하지만 기기 간의 무분별한 소통은 휴머니즘(인간주의 ·인문주의, 인본주의라고도 하며 ‘인간다움’을 존중하는 넓은 범위의 사상적, 정신적 태도와 세계관)의 갈등을 해소시키지 못하고 있다.
인재가 없다는 말을 교육현장에서 자주 듣는다. 어른은 어른이기를 포기하고, 학자는 학자답게 살지 못하고 있다. 소인배들의 얄팍한 처세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만불성설(語不成說-말이 이치에 도무지 맞지 않는다)의 쏙대기 판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오늘이지만 도량을 지닌 인물의 모습은 어떠한지 몸소 가르쳐준 사돈과 이모 딸 성자가 곁에 있어서 행복하다. 갓끈을 끊게 한 슬기로운 왕과 은혜를 갚은 신하의 섬김 정신을 간접적으로나마 배울 수 있어 또한 행복하다. 우리나라의 언어교육에 일조를 하고 있어서 더 행복하다.
20년이 훨씬 넘게 우리나라의 말하기와 글쓰기 교육이 뿌리내리기를 간절하게 바라며 오직 한 길을 걸어온 나의 길은 아직도 어두운 밤이다. 인재를 키워주고 도량을 베푸는 사람의 도리를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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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1 07:10 송고
2011-08-30 10:22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