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과 무관함
하향길에
송수권 시인의 서재에 들린 적이 있다
시인의 서재는
어느 농사꾼이 쓰다버린 폐가여서
덕지덕지 기운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마루 밑에 세든 고양이 몇 마리
남의 눈치보는 일 없이 살아가고 있었고
마당귀엔 주인잃은 절구통과
맷돌짝과 물항아리 입을 벌린 채
묵언정진 중이었다
어디선가 굴절되어 건너와
한낮의 적요를 깨우던 뻐꾸기 소리
그 울음소리가 어찌나 깊은 지
시인의 말처럼
지리산 봉우리를 다 울리고 나서
오래남은 추스름 끝에
소리없는 강 하나가 열릴 것 같았다
밤이 되자 시인의 집에는
편지함에 우편물이 배달되듯이
어둠이 배달되어
시인의 서재를 먹물 속에 가라앉히고
처마끝에
푸르스름한 달덩이 하나 지등처럼 내걸려
문리터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 곡조 읊을 만 했다
시인은 세금도 내지않고 무상으로
몇 만평의 하늘과
몇 만평의 평야와
골짜기의 물과 나무와 새들을
자기 것인양 서재에 들여놓고
고독해지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심심하면 이불처럼 덮고 자기도 했다
시를 쓰겠다고
변산으로 제주도로 절간으로 여관방으로
주유천하하면서 살아온 반백 년
정처없는 인생을
더 정처없게 만드는 그의 기행을
늙은 소설가 한 사람이 찾아와 노래한
어초장주 송영감타령이 증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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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4 06:2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