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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외할머니 댁에 가면 언제든지 반가워 해 주시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셨다. 우리 세 자매는 할머니 댁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 할아버지께 웃으며 인사를 드린 뒤, 곧바로 쇼파로 달려가 텔레비전을 켜고, 함께 보았었다. 엄마 아빠께서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같이 보시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신다.
그러나 할아버지께 ‘담관암’이라는 병환이 생긴 뒤로는 좀 달라졌다. 외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와 병원에서 함께 주무시고, 뒷바라지를 해 주시는 등 아예 그곳에서 생활하셨다. 우리는 가끔 할아버지가 괜찮으신지 뵈러 가곤 했다. 그런데 뵈러 갈 때마다 할아버지께서는 더 수척해지시고 힘이 없어지신 것 같았다. 가끔씩이긴 했지만 계속적으로 할아버지 병문안을 가다가, 시험 기간이 겹치거나 가기가 싫은 날에는 엄마 아빠께 떼를 써서라도 가지 않으려고 꼬리를 뺐다. 엄마 아빠께서는 병원을 갔다 오신 뒤 할아버지께서 우리 얼굴을 보고 싶어 하셨다고 전해 주셨다. 그 말을 들을 때는 약한 모습으로 누워 계신 할아버지가 생각나 조금 슬프고 ‘같이 갔다 올 걸.’하고 후회도 되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할아버지께서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화순에 있는 병원으로 가고 난 뒤, 몇 시간 뒤 친할머니께서 우리 집으로 오셨다. 친할머니께서 전화도 없이 갑자기 왜 오셨나 싶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신음소리를 내셨다. 그 때 나는 퍼뜩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까?’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를 진정시켜 거실에 앉혀드리고 난 뒤, 할머니께 텔레비전을 켜서 보게 해 드리고 각자 할 일을 했다. 할머니가 오신지 몇 시간 뒤 엄마께 전화가 왔다. 예상했던 바와 같이 우리들은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슬픈 소식을 들어야 했다. 동생들과 할머니가 계셔서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 머리를 감을 때 나 혼자서 많이 울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 때 난 정말 미친 것 같았어.’ 라고 생각할 정도로 샴푸를 머리에 벅벅 문지르며 끄윽끄윽 울었었다.
마지막으로 외할아버지 얼굴을 본 적이 언제였을까, 생각도 나지 않는다. 얼른 집에 가고 싶어서 엄마한테 조르던 날이었을까. 병원 앞 벤치에서 가족들과 함께 족발을 먹던 날이었을까. 다른 일을 한다고 병원을 가지 않았던 일이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난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멍청하고 바보 같은 짓이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시고 난 지금은 ‘할아버지를 조금 더 자주 뵙고 잘 해 드릴 걸.’ 하며 자책이 된다.
할아버지를 잃었다는 슬픔에 잠겨 장례식이 끝나고 영구차가 우리를 싣고 장례식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화장터에 도착하여, 할아버지의 시신이 시뻘건 불 속에 들어간 뒤, 엄마와 함께 우리 가족들은 엄청나게 울었다. 마치 내 살이 타고 있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외할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많은 사랑이 머리에 스쳐 가고 무뚝뚝하시긴 하셨지만 키도 크시고 멋진 우리 할아버지의 모습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린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할머니께서는 지금 완도에서 홀로 살고 계신다.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가 안 계시니까 혼자서 쓸쓸히 식사를 하시고, 늘 두 분이서 정답게 다니셨던 장터에도 혼자서 가신다.
미래에 우리 아빠가 돌아가시면 우리 엄마께서도 이렇게 쓸쓸히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까 할머니의 쓸쓸한 모습에 뜨거운 눈물이 차 올랐다.
나는 할아버지께 해 드린 것이 별로 없어서 지금에 와서 후회스럽다. 유행가 가사에 나오는 ‘있을 때 잘 해.’ 라는 말이 내 마음에 확 들어와 내 가슴을 후벼 판다. 외할아버지는 비록 돌아가셨지만 외할머니를 비롯해 엄마 아빠, 친할머니께서 살아계실 때 더 잘 해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되겠다. 영원히 함께 살고 싶은 부모지만 그럴 수는 없고 또 외할아버지께 하지 못한 효도를 남아 계신 어른들께라도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에서이다.
마음이 급해진다. 겨울방학이 빨리 되어서, 홀로 완도에 쓸쓸히 계시는 외할머니께 하루빨리 달려가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찹쌀떡도 사다드리고, 할머니께서 구워서 호호 불어주시던 달콤하고 속이 샛노란 고구마도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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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1 06:4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