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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1월1일은 우리 민족 최대의 대 명절이다. 순천의 집집마다에서는 조상숭배와 효(孝)사상을 뿌리내리고 있다. 생사를 가리지 않고 부모님을 내 몸같이 섬기는 종신지효(終身之孝)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다.
‘섣달 그믐날이면 나갔던 빗자루도 집 찾아온다.’는 옛말이 있다. 객지에 나갔던 가족들이 하나둘 대문을 들어선 순천의 설날은 섣달 그믐날부터 시작된다. 섣달 그믐날, 저녁식사를 마친 순천사람들은 무조건 동네 한 바퀴를 돈다. 동네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일 년 간 잘 지내셨습니까?, 새해맞이 잘 하십시오.’라는 묵은세배를 깍듯하게 한다. 낮에는 가까운 조상의 산소에 찾아가서 ‘한 해 동안 보살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하고 절을 한다.
순천에서는 새벽닭이 울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밤 세우기를 하고 있다. 섣달 그믐날 잠을 자면 영원히 잠을 자는 죽음과 같다고 가르쳐준 조상님들의 뜻을 따르고 있어서이다. 또한 다가올 새날과 가고 있는 헌 날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과 섣달 그믐날 잠을 자면 묵은 날을 연결하여 새 날을 맞이할 수 없다는 풍속 때문이다.
특히 순천의 농촌에서는 밤에 전등을 켜지 않는다. 예전에는 흰 사기접시에다 실을 여러 겹 꼬아 심지를 만들고 기름을 부어 등잔불을 켰다. 하지만 지금 순천사람들은 등잔불 대신 촛불을 켜 놓는다. 방과 마루, 부엌과 다락 등에도 촛불을 켜 놓는다. 외양간과 화장실까지 환하게 불을 켜 놓는다. 집안 곳곳에 밤새 불을 밝혀두면 밝고 환한 빛이 비쳐서 복이 들어오고 잡귀를 쫓는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순천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도 설날에는 전등을 켜지 않고 거실과 부엌, 방안에 촛불을 켜놓고 송구영신을 준비한다. 한해가 시작되는 첫발을 조심스럽게 내딛으면서 지난 일 년을 반성하고 새해도 설계한다. 섣달 그믐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하여 아이들조차 잠을 재우지 않고 있다. 만약 아이들이 잠을 자면 눈썹에 하얀 밀가루를 칠해 눈썹이 세었다고 놀리며 한바탕 웃음꽃을 피운다. ‘복사시오, 복사요’하고 외치는 복조리와 복 소쿠리 장사가 새벽을 깨우면 날이 밝는다. 복이 소쿠리와 조리 가득 들어오라고 그것들을 사서 기둥이나 보기 좋은 곳에 매달아 둔다.
순천에서는 특히 음식이 풍성하다. 설날이 돌아오기 며칠 전부터 쑥떡, 콩떡, 시루떡 조청을 만들고, 콩유과, 쌀유과, 강밥을 만든다. 과실, 생강, 연근, 인삼 등을 꿀에 졸여 만들고, 고사리, 도라지나물과 고구마, 토란 줄거리 등으로 나물을 만든다. 식혜와 수정과를 만들고, 도토리와 메밀로 묵을 만들고, 콩으로 두부를 만든다. 동태전, 조기전, 버섯전 등을 만들고, 누룩과 쌀을 담아 동동주를 만든다. 생선은 조기, 서대, 명태, 문어 등을 준비하고 과실은 배, 사과, 대추, 곳감 등을 준비한다. 무를 채 썰어 마늘 생강 식초와 가추가루를 넣고 새콤달콤하게 무친 가오리 회는 꼭 준비한다.
순천의 설날 아침은 분주하다. 집집마다 세찬과 세주를 마련하여 조상님께 차례를 지낸다. 차례를 지낼 때는 기제사를 지낼 때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맨 윗줄에는 밥 대신 떡국을 조상수대로 4대까지 놓고, 둘째 줄에는 탕을 놓고, 셋째 줄에는 어물과 떡을 놓는다. 넷째 줄에는 과일 종류를 진설한다. 날이 채 밝기 전인 아침 다섯 시나 여섯시쯤 남자 어른들은 흰 두루마기를 입고 몸을 정갈하게 한다. 상 앞에서 축문을 읽으며, 절을 올리고 차례를 지낸다. 축을 읽고 난 뒤에는 소지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덕을 물려받았다는 의미로 음복을 한다.
제사를 마치고 나면 나이가 많은 어른 순서대로 세배를 드린다. 형제자매끼리도 예의를 갖추어 상호세배를 한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올해는 순산해라, 건강해라, 소원성취해라 는 등으로,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건강하시고, 000하세요. 등을 소원하는 일로 서로의 행복을 빌고 축복해 주는 "덕담"을 주고받는다. 새해 첫날부터 서로에게 복을 빌어주고 좋은 말만 한다. 또한 아이들에게는 설빔과 함께 복주머니를 하나씩 달아준다. 아이가 복을 많이 받고 수명장수 하기를 빌며 나쁜 액을 막기 위해서 세뱃돈도 넣어준다.
차례를 지낸 후에는 곧장 산소로 향한다. 밥과 국 나물 과일과 술 등을 간단하게 챙겨서 가지고 간다. 아이들에게는 조상의 산소 위치를 알려주고 예의범절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함께 데리고 간다. 산소를 다녀온 후에는 일가친척을 찾아간다. 큰집이나 작은 집 등 친척을 찾을 때는 세찬으로 준비한 음식을 갖다 주기도 하고, 가져오기도 한다.
순천에서는 어느 집을 막론하고 하루 종일 집안에 손님이 끊어질 시간이 없다. 그래서 세배를 갈 때나, 집에 손님이 올 때나 여자들의 손에는 물이 마를 시간이 없다. 세배는 보통 정월보름까지 찾아뵈어야 예의에 어긋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어, 순천여자들은 어른을 섬기는 일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다.
특히 순천에서는 설날이면 어려운 이웃부터 챙기는 미풍양속이 있다. 환경미화원 전남용씨는 수년전부터 여러 어려운 이웃에게. 주암면 월평리에서 농사를 짓는 김수철씨도 수 십 년 동안 여러 어려운 학생들에게 후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특히 순천의 성광교회, 광천교회 등에서도 결손가정과 무의탁 독거노인 등에게 떡국과 내복을 전달하며 희망을 연례행사로 하고 있다.
풍광이 아름다운 순천에는 마음씨가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고 인심 좋은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는 순천에서는 설날에도, 효(孝)사상을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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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5 07:2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