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화광주시교육위원장
우중충한 하늘이다. 파란번개불이 예리한 칼날처럼 번뜩거린다. 우르르 쾅쾅! 하늘이 깨질 것 같은 천둥소리가 요란하다. 아마도 한줄기 소나기가 쏟아지려나 싶다.
마침내 굵은 장대비가 쏟아진다. 산에서 소 깔(풀)을 뜯기는 아이들은 소를 몰아 내리기에 급급하다. 소와 아이들은 쏟아지는 빗줄기를 온몸으로 맞으면서 멱을 감고 있는 듯 했다.
“야아! 인화야! 큰비가 온께 집에 가자. 소들도 우리들도 소나기에 멱을 감고, 소 깔도 뜯길 만 큼 뜯겼은께 집으로 돌아가자. 무서와서 죽겄다잉”
공포증에 사로잡힌 아이들은 새까만 먹구름 속에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다가 집으로 돌아갈 것을 강요했다. 한 아이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자꾸만 졸라댔다.
하지만 나는 친구의 다급한 말과 그 모습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소가 마음껏 깔을 뜯어 먹으며, 멱을 감는 그 모습에 빠져 있었다.
문득 깔에 대한 상념이 뇌리를 스쳤다. 도대체 깔이 무엇이길래 소가 깔을 뜯어 먹고 살수 있단 말인가? 깔에는 무엇이 들어 있길래, 소들이 저리도 좋아하고 언제나 깔을 그리워하는지, 궁금증은 꼬리와 꼬리를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은 없었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깔에 대한 상념이 짙어 갈수록 어린나의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고 머리는 뒤숭숭해졌다. 과연 깔(풀)은 무엇이냐? 깔에는 무슨 영양분이 있을까? 깔에는 어떠한 성분이 있어서 소를 살찌게 하고 키우는 걸까? 깔은 아프지도 않을까? 깔은 자신의 몸을 뜯기면서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며 초심을 잃지 않는 까닭은 무얼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순간 복잡한 머리를 식혀주는 낱말이 떠올랐다. 그것은 다름 아닌 희생이었다. 깔은 희생정신이 투철했다. 즉,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모두를 살찌게 하고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원동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소나기가 지나간 하늘은 금 새 밝아졌다. 아이들과 나는 소 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소나기에 멱을 감은 소들은 붉은 털이 달라붙은 채로 깔을 뜯어 먹고 있었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깔 밭에 오줌을 싼 후 그 깔을 뜯어 손수건에 싸서 소의 콧등으로 가져갔다. 소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코를 벌렁이며 입을 씰룩씰룩 웃었다. 나도 덩달아 웃었다.
“참! 웃기는 일이다. 소가 다 웃을 줄 안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서는 소의 웃는 모습에서 천진함과 순수함을 느꼈다.
나는 그날 이후부터 소 깔 뜯기러 가면 꼭 소와 깔 사이의 다리역할을 했으며, 소를 웃기는 아이가 되었다. 그래서 내 별명은 소를 웃기는 “깔”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렇다. 소와 깔 그리고 철부지 깔 아이는 초심을 잃지 않는다. 언제나 깔은 멍석을 펴고서 희생정신을 앞세워 웃을 수 있는 소의 삶을 배우고 지킬 것이다.
자유롭게 깔을 뜯는 소의 모습에서 듬직하고 변함이 없는 소걸음을 걷는 우리의 교육사가 엮어지기를 기대하면서 나의 교육단상을 그려본다.
잠시 김용수 시인의 “깔” 이라는 시를 음미해 본다
"워메! 소 깔뜯기러 가자"
"아따! 소 멱감기러 가자"
널브러진 깔 밭에는 동심이 있다
풋풋한 냄새 콧속으로 스며들고
짙푸른 색채 눈속으로 빠져드는
소를 웃긴 “깔”
멍석을 펴고 있다
앞산에서도
뒷들에서도
제 땀과 오짐이 묻은 깔을
소 콧등으로 가져다 대면
코는 벌렁이고
눈은 게슴츠레
입은 씰룩씰룩 웃는다
훌쩍 커버린 세월 저편에는
울안에 갇혀 있는 소를
배고파 울음 우는 소를
정에 굶주려 휑한 소를
깔 밭으로 옮겨가면서
소를 웃긴 깔은
깔 담이 아닌 큰 일꾼으로
어린 깔 밭이 되고
싱싱 깔 밥이 되어
젖샘으로
힐링으로
浩然之氣 삭히고 있다
* 깔 / 방언으로 풀 또는 꼴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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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5 09:52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