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편집국장
새봄이 오는 소리가 다소곳하다. 도란도란 흐르는 계곡물소리와 평사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소리가 새봄을 맞이하는 봄바람을 타고 있다. 더욱이 고동산에서 발원한 목촌 천의 맑은 물은 수정마을과 목촌, 평사마을용소를 지나 상사호로 흘러드는 일급수다.
예부터 물 맑고 공기 좋은 심심산천이었던 이곳은 지금도 여전하다. 특히 계족산 장군봉을 중심으로 뻗어 내린 고동산의 전설과 산철쭉은 이지역의 일미이고 알아두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왜곡된 우리의 지명역사를 바로잡아야 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古同山(고동산)지명은 鼓動山으로 북소리를 울리면서 하늘로 올라가는 용마차의 비상을 의미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그 氣(기)가 너무도 크고 웅장하다며 옛 古(고)자로 바꿔서 표기했다고 한다. 어쩌면 평사마을의 군악과 농악 등은 그 북소리와 일맥상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범죄 없는 마을 평사마을은 예나 지금이나 군악과 농악의 이미지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낙안군의 군악은 평사마을에서부터 시작됐었다. 낙안읍성군악은 낙안 평사농악 상쇠 김종대를 중심으로 계승됐다. 낙안 읍성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임경업 장군을 모시는 제만을 지낸다. 낙안 군수였던 임경업 장군을 지켜준다는 믿음이 있어 임장군 비각에서 제를 모시고 당산 굿을 치고, 벅구놀음을 한다. 이후 마당밟이와 판 굿을 친다. 판 굿은 칠채 길 굿으로 시작하여 반입 굿, 바락 굿(풍류굿),변형 날 당산 굿, 진 굿, 도둑잽이 굿, 어허 굿, 노래 굿, 배나리 굿, 등지기 굿, 뜀뛰기 굿 등으로 구성된다. 쇠잽이를 따라다니는‘농부’의 춤과 벅구놀음이 특색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친 동안 한반도의 문화는 시도 때도 없이 훼손되었고 지명까지도 폄하절하 됐었다. 한반도의 맥을 끊고 혈을 끊어서 일본의 속국을 만들기 위한 수단과 방법은 잔악무도했었다.
심지어는 중국인과 조선인, 러시아인 등의 포로를 생체실험대상으로 삼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731부대는 육군관동군 소속의 세균전 연구개발 기관으로 일제가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 주둔시켰던 비밀부대다. 1936년 일제의 만주침공 때 설립됐고 1945년까지 생체해부실험과 냉동실험 등 치명적인 생체실험을 자행하며 생물화학무기개발에 주력했다.
'통나무'란 뜻으로 생체실험대상자를 가리키는 말인 '마루타'는 한국인, 중국인, 만주인, 몽고인, 러시아인 등 전쟁포로와 그 외 구속된 사람들이었고 3000명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들에겐 '이름'도 없이 번호가 부여돼 '사람'이 아닌 '생체실험의 재료'로 취급됐었다.
이 외에도 일본의 잔악무도한 짓은 부지기다. 특히 민간인을 비롯한 아녀자들에게 저질렀던 비인간적인 행위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국치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일을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분류의 사람들 때문이라도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듯 우리의 역사를 잃어버리고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지난겨울은 몹시도 춥고 길었다. 동파와 함께 폭설의 피해가 엄청나다. 하지만 그런 환경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버티며 새봄을 맞이하고 있다. 즐겁고 편안한 땅, 낙안평사 반려나무 숲에서 군악과 농악 등 지난 역사를 더듬고 있다.
무엇보다도 반려나무 숲은 순천만국가정원의 일환책으로 삶의 여백을 갖게 한다. 전남 순천시 낙안면 평사리 평사마을은 주민들의 소원이나 이야기 등을 담은 반려나무 숲을 지난해에 아름다운 쉼터로 조성했었다. 마을회관 창고 뒤 잡풀로 우거진 공한지를 정리해 산책로를 만들고 수 십 년간 마을을 지켜온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홍매화, 왕벚나무, 팽나무, 회양목, 철쭉 등 2천 여 그루의 나무를 식재하고 나무그네도 설치했다.처음에는 수 십 년간 자라온 은행나무를 베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으나 주민들이 여러 차례 회의를 통해 마을을 지켜온 은행나무를 보존하자는데 의견을 모았고, 작은 돌로 둘레를 쌓고 주변에 회양목을 식재해 멋과 운치를 더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반려나무 숲은 마을 어르신들의 살아온 이야기와 소원 등을 담은 반려나무 이름표가 부착됐으며 주민들의 이야기도 담아내어 소통과 함께 화합하는 쉼터가 되고 있다. 아마도 삶의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는 성 싶다.
당시 정유진 낙안면장은 “202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생활 속 정원을 조성, 도시 전체가 정원이 되고 정원이 시민의 삶과 문화, 경제가 되는 대한민국 제1호 정원도시를 만들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면서 “잡풀로 우거진 공한지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정리하고 나무를 식재해 아름다운 정원으로 탈바꿈시킨 것이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의 시작”이라고 전했다.
필자도 지난 21일 평사 용정이골 왕벗나무 곁에 어머니를 모셨다. 아버지 산소아래 양지바른 곳, 영원한 쉼터가 되리라 믿는다. 이 세상 굴곡진 애환을 떨치며 홀연하게 떠난 어머니를 생각할 때 한편으로는 슬픔이 앞섰다. 그러나 94세의 천수를 누리면서 32명의 후손을 건강하게 키워내고 별세한 어머니를 생각할 때는 작은 행복감도 함께 느꼈다.
아무튼 낙안평사의 지명은 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휴식공간의 장소로 잊을 수 없는 지명이 아닐까 싶다. 평사낙안도 좋고, 낙안평사라 해도 좋다. 여백과 여유를 갖고 쉼터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가꾸었으면 좋겠다.
그 누구도 붙잡지 못하고
어느 누구도 따라 갈 수 없는
어머니의 하늘 길은
미리네 흐르는 영혼의 길이옵소서
파란별 빛나고
미리네 속삭이는
아득하고 아련한 먼먼 길
그 길 위로 못다 한 이야기 꽃
새롭게 피어나고 새 동무 반기옵소서
육신으로 짊어진 무거운 짐
훌훌 벗어버리고
정신으로 다져진 버거운 정
훨훨 날려버리고
아리따운 꽃나비로 날으옵소서
열일곱 꽃망울 소녀로
진주정씨 가문 규수로
김해김씨 가문 아내로
다복가정 현모양처로
94세의 천수를 누리며
32명의 후손을 두고서
홀연히 떠난 정 어머니
어제시간은 별빛으로
오늘시간은 달빛으로
내일시간은 햇빛으로
일곱빛깔 무지개빛으로
영롱하게 비추옵소서
(필자의 “어머니의 하늘 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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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7 06:46 송고
2023-02-27 06:47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