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아침 산책길에서였다. 나는 비둘기들이 고가도로 밑에서 비를 피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비에 젖어 후줄근하게 떨고 있는 모습이 처량하게 보였다. 마치 어디선가 쫓겨난 듯한 난민들처럼 보였다.
새들도 사람처럼 집을 짓고 살지만 그러지 않은 새들도 있다. 비둘기, 올빼미, 수리부엉이 등이다. 이들은 뚫린 나무구멍이나 벼랑의 바위틈, 땅굴 등으로 힘들이지 않고 몸을 의탁해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까치들이 집 다툼을 하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하였다. 까치들은 집을 점유당하거나 집을 짓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적들이 나타나면 가차 없이 퇴치해 버린다. 가족의 힘으로 여의치 않으면 집단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까치나 까마귀의 집 근처에는 여느 새들이 아예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새들과 관련된 추억이 많이 있다.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참새들은 이른 아침부터 재잘거린다. 주로 곡물을 먹이로 하기 때문에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참새가 없었다면 적막하지 않았을까 싶다. 참새는 우리 주변에 살면서 정이 들대로 든 텃새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리고 삼 월 삼짇날이면 어김없이 제비 손님들이 찾아왔다. 녀석들이 찾아오면 반가 왔다.
집을 짓는 순간부터 그 뒤치다꺼리가 여간 번거롭지 않았지만 흘대하는 법이 않았다. 예의를 다해 받아주곤 했으니 전통적인 관습에서랄까.
제비들이 빨래줄에 앉아 재잘거릴 때면 집안에 활기가 돌았다. 제 새끼들을 보살피는 과정에서 사람의 그것을 상회하고도 남는 가르침을 주기도 했다.
유년 시절 나는 제비들이 하늘을 나는 모습에서 얼마나 많은 희망과 동경의 세계를 펼치면서 살아왔던가? 창공을 차오르던 제비들이 산을 넘고 구름너머로 사라질 때면 나의 상상력은 무한해 졌다. 그곳엔 필시 내가 동경한 세계가 펼쳐져 있을 것 같았다.
우리들의 유년은 가난이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무엇이든지 어른들을 도와 일을 해야만 했다. 농번기철이면 일손이 모자라 집안의 강아지나 고양이까지도 일손을 보태야만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살았던 복순이도 학교가 파하면 곧장 산으로 갔다. 나무를 하거나 나물을 캐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골이 덜 찬 복순이에게는 그게 가장 적당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나는 산에서 돌아오는 복순이와 마주쳤다. 이웃집에 살았기에 흔하게 있는 일이었지만 그날은 여느 때와는 달랐다. 나물바구니에 쑥, 달래, 곰취 등이 가득 차 있었지만 그보다도 더 많은 것은 싱그런 참꽃이었다. 갓 피어난 참꽃은 나물바구니를 한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복순아, 웬 꽃이 이렇게 많으니?”
“산에는 나물보다 꽃이 더 많이 피었더라.”
하면서 나에게 한 묶음의 꽃을 내미는 것이었다.
“복순아, 왜 이걸 나에게 주니?”
“으응, 너에게 마땅히 줄게 없어서…”
그러면서 복순이는 꽃바구니를 머리에 인 채 자기 집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런 복순이를 보는 순간 짚히는 데가 있었다. 학교에서 숙제를 내줄 때면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숙제하는데 도움이 되는 ‘전과지도서’ 라는 책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럴 때마다 괘념치 않고 빌려주었다. 복순이는 그 보답으로 한 묶음의 꽃을 내민 것이었다.
나는 복순이가 왜 부모가 없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살아왔는지 모른다. 마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복순이 아버지 어머니는 없고 사생아로 태어난 복순이를 슬하에 혈육이 없어 쓸쓸한 노부부가 수양딸로 데려와 키운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의 뜻을 당시엔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없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원초적인 의문에 머물러 있었다.
이렇듯 탄생설이 시원치 않았던 복순이는 자신의 운명을 감지하고 있었을까? 어렸을 적부터 아이들 사이에서 울보로 통했다. ‘꽃실동네 울보’ 하면 모르는 아이들이 없었다. 그런 복순이는 항시 노래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 곡목은 오빠생각, 옹달샘, 작은 별, 등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더 잘 부르는 노래가 있었다. 지금도 그 출처가 미상인 채로 남아있는 동요로서 그 전문은 이렇다.
새야 오늘밤 어디서 자려나
나무 수풀 깃들 일 곳은 젖어버렸다.
빗방울이 나슬나슬 떨어지므로
나무 수풀 깃들 일 곳은 젖어버렸다.
복순이는 이 노래를 부르고 나면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떨 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날도 복순이는 말없이 먼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한 줄기 소나기가 지나가고 난 다음의 하늘엔 무지개가 선명하게 돋아나 있었다.
그런 복순이가 죽은 것은 그해 여름 끝자락이었다. 약골로 태어난 복순이는 결핵을 앓고 있었는데 때로 각혈을 하기도 했다. 복순이 할아버지는 의원에서 약을 지어오고 살모사, 독사, 구렁이 등 결핵에 좋다는 뱀들을 고와 먹였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해 여름 막바지에 이르러 백지장처럼 창백해진 얼굴의 복순이는 기어이 눈을 감고 말았다.
나는 복순이의 마지막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 강보에 싸인 채 늙은 할아버지 지게에 얹혀 산을 넘던 기억이 생생하다.
생각할수록 불쌍한 복순이, 그렇게 갈 줄 알았다면 나도 복순이에게 한 묶음의 꽃을 건넸어야 하는 건데…. 이러한 후회가 따랐지만 소용이 없었다. 복순이는 가난과 슬픔과 병을 신의 선물로 받고 탄생한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약하고 여린 한 마리의 새로 살다가 이승의 하늘에서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비오는 날 아침 산책길에서 보았던 고가다리 밑 비둘기들을 보면서 떠오르는 복순이 생각에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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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2 21:04 송고